22. 이산교연 선사의 발원
22. 이산교연 선사의 발원
  • 고명석
  • 승인 2019.12.03 13:24
  • 호수 1515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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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리는 이에게 쌀이, 아픈 이에게 약이 되리라”

백거이와 함께 당대 뛰어난 시승
길이 빛날 조사들 비문 탄생시켜
온 생명 구제하려는 보살도 염원
발원에 자비롭고 가없는 연민 담겨
교연선사의 연민은 우주의 모든 생명들에게로 확대되어 나아가며 허공 끝없이 전개된다. 한 여성이 양양 낙산사 해수관음 앞에 두 손 모아 앉아 간절히 발원하고 있다. 법보신문 자료사진.
교연선사의 연민은 우주의 모든 생명들에게로 확대되어 나아가며 허공 끝없이 전개된다. 한 여성이 양양 낙산사 해수관음 앞에 두 손 모아 앉아 간절히 발원하고 있다. 법보신문 자료사진.

많은 불자들이 이산교연 선사의 발원문에서 큰 감동을 받는다. 내 친구도 그의 발원문에서 깊은 종교적 신심을 느낀다. 당신도 그럴 것이다. 나옹선사의 행선축원과 더불어 가장 많이 애송되는 발원문이 교연선사의 발원문이다. 한때 ‘이산혜연선사 발원문’으로 알려진 그의 발원문은 오래전부터 우리말로 읽혀졌다. 아쉬운 것은 이산교연이 바로 이 발원문의 저자인지 아직 확실하지 않으며, 그의 생애와 사상이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단편적인 지식으로 이 글을 쓸 수밖에 없었음을 고백한다. 

이산교연(怡山皎然)은 720년경 태어나서 793~798년 사이에 입적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당나라 때의 선승이다. 선승이라 하지만 유불도(儒佛道)는 물론 불교의 여러 종파에도 걸림 없이 넘나들었다. 그의 성은 사(謝)씨이고 이름은 청주(清晝)다. 그는 사령운(謝靈運, 385~433)의 10세손으로 불린다. 사령운은 산수를 노래하는 시인이자 문장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문필가였다. 그는 속세를 등지고 여산혜원의 백련결사에 참여하려고 했지만, 너무 마음이 번잡하다 해서 결사대중으로 들어가지 못했던 사연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교연은 수행승으로서의 탈속과 검박함뿐만 아니라 백거이와 더불어 당대의 뛰어난 시승(詩僧)으로 불렸다. 여기에 하나 더, 그는 다도(茶道)에도 조예가 깊어 다성(茶聖)으로 불리는 육우(陸羽, 733~804)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곳은 절강성 호주(湖州) 장성(長城) 지방이다. 지금의 저장성(浙江省) 강흥(江興)지역이다. 그곳을 가보지 못해 아쉽기는 하지만 경치가 수려한 곳이라고 한다. 그는 유년시절부터 도(道)와 더불어 지낼 만큼 영특했다. 어린나이에 영은사(靈隱寺)로 출가하여 수직(守直)율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삭발염의했으며 계율 공부에 매진했다. 교연선사의 발원문에는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청정한 행을 갖추어야 한다는 그의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다. 운허 스님의 우리말 본으로 그 구절을 읽어본다. 

“바른 신심 굳게 세워 아이로서 출가하여/ 귀와 눈이 총명하고 말과 뜻이 진실하며 세상일에 물 안들고 청정범행 닦고 닦아/ 서리같이 엄한계율 털끝인들 범하리까.” 

지금에야 어린 나이에 출가하는 것이 낯설기까지 하지만, 청소년시절부터 인문학적 심성을 키우고 도덕심을 함양하는 일은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는 특히 시에 마음을 기울여 삶과 세상을 맑은 감성으로 노래하기 좋아했다. 문장이 뛰어나고 아름다워 당시 불가의 뛰어난 법기로 불릴 정도였다. 그래서 선종사에 길이 빛날 여러 조사들의 비문이 그의 언어를 빌어 탄생한다. 

중년이 되자 그는 여러 선사들을 찾아다니며 배알하고 마음 법문을 깨달았다. 무구산의 원호(元浩), 회계의 영철(靈澈) 스님은 그와 도를 교류했던 대표적인 스님이다. 그가 호주(湖州) 태호(太湖)호수 자락에 있는 저산(杼山)의 묘희사(妙喜寺)에서 지낼 때 호주자사 안진경(顔眞卿, 709~785)을 비롯해 황보증(皇甫曾, ?~?)·유장경(劉長卿, 709~780)·유우석(劉禹錫, 772~842)·이단(李端, 737~784) 등 여러 명사이자 문학가와 어울려 지냈다. 이때 교연은 육우(陸羽, 733~804)와 만난다. 육우는 태어나자마자 호수 주변에 버려졌지만, 서탑사(西塔寺)의 지적(智積)선사가 핏덩이인 그를 발견하고 차 심부름 하는 다동(茶童)으로 키웠다. 그에게 자신의 속가 성인 육씨(陸氏)라는 성을 준 것도 지적선사였다. 그렇게 어린 육우는 그의 슬하에서 차와 인연을 맺고 자라난다.  

육우는 안록사의 전란을 피해 강남땅으로 와서 술과 벗하며 은자로 산다. 그러던 중 묘희사에서 14살 연상의 교연선사를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교연과 교류하면서 술 대신 차로 마음을 나누며 차와 시학에 대한 가르침을 받는다. 특히 교연이 차 밭을 가꾸는 것을 눈여겨보면서 차나무의 생육과 제조 과정에 대해 많이 배웠다. 그렇게 적지 않은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그들은 이후 40여년 동안 승속(僧俗)의 경계와 나이를 잊고 지내는 아름다운 친구가 되었다. 교연이 쓴 ‘다결(茶訣)’은 산실되었지만, 그의 시집 ‘교연집(皎然集)’(10권)은 지금도 세상에서 빛을 발한다. 이렇게 교연선사는 선과 시와 차에 조예가 밝았다, 그가 시론에 대해 쓴 ‘시식(詩式)’은 중국 고대시론에서 상당한 대우를 받았다. 

선사이자, 시인이며, 차를 사랑했던 그였지만 모든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그의 마음은 발원문에 속속히 스며있다. 그의 발원문 구조는 삼보에 대한 귀의, 무명의 물결 따라 지은 각종 죄업에 대한 참회, 불보살님의 가피로 불법 만나 좋은 세상에 살기를 바람, 청정 범행을 닦고, 불법을 배우고 수행하며, 온 생명을 구제하는 보살의 길로 가는 것으로 짜여 있다. 보살도를 행하는 발원의 주요 내용을 보자.

“내 모양을 보는 이나 내 이름을 듣는 이나/ 보리마음 모두 내어 윤회고를 벗어나되 화탕지옥 끓는 물은 감로수로 변해지고/ 검수도산 날 센 칼날 연꽃으로 화하여서 고통 받던 저 중생들 극락세계 왕생하며/ 나는 새와 기는 짐승 원수 맺고 빚진 이들 갖은 고통 벗어나서 좋은 복락 누려지다/ 모진질병 돌 적에는 약풀 되어 치료하고 흉년드는 세상에는 쌀이 되어 구제하되/ 여러 중생 이익한일 한가진들 빼오리까 천겁만겁 내려오던 원수거나 친한이나/ 이 세상 권속들도 누구누구 할 것 없이 얽히었던 애정 끊고 삼계고해 뛰어나서/ 시방세계 중생들이 모두 성불하사이다 허공 끝이 있아온들 이 내 소원 다하리까/ 유정들도 무정들도 일체종지 이루어지이다.”

교연의 자비로운 마음은 아프고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다가서서 그의 약이 되고 그의 쌀이 될 정도로 구체적이고 실천적이다. 게다가 이러한 연민의 마음은 사람들에게만 한정되어 있지 않고 우주의 모든 생명들에게로 확대되어 나아가며 허공 끝없이 전개된다. 그리하여 날아다니는 조류나 기어 다니는 짐승마저 그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그것은 다함없는 길이다.

그래서 그의 발원문은 중국 총림에서 아침 예불시 발원을 올리는 예불 발원문의 원형으로 자리 잡았으며, 선의 중요한 고전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나옹선사의 행선축원도 어찌 보면 이산교연 선사의 발원문에서 그 중요한 모티브를 따온 것으로 여겨진다. 아침에 일어나 교연선사의 발원문으로 하루를 여는 것은 오늘을 사는 구도자적 삶에 썩 잘 어울린다. 선으로 가는 길은 끝없는 자기 부정이다. 그 자기 부정은 어떠한 이류중생이나 낯선 타자도 껴안아 가면서 거기서 자기 자신을 보는 깨어남이다.  

고명석 불교사회연구소 연구원 kmss60@naver.com

 

[1515호 / 2019년 12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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