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사이에 쌓아 둔 담은 경계선의 시작이다. 담을 쌓는 것은 서로가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서다. 내 것을 잃을 염려가 없다면 담이 필요 없게 될 것이다. 경계선은 마을과 마을 사이, 고장과 고장 사이에도 그어져 있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높은 담이 놓여 있다. 그것이 국경선이다. 국경선은 서로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그어진 것이다. 강이나 호수나 바다, 산맥 등이 국경선이 된다.
세계에서 가장 험악한 경계선이 나라를 두 동강으로 잘라 놓은 휴전선이다. 휴전선은 6·25라는 큰 전쟁이 만든 산물이다. 그 이전에는 3·8선이 있었다. 여기서 세계 최악의 전쟁이 터져, 우리 동포 수백만이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3·8선은 소련을 태평양 전쟁에 끌어들여, 불과 1주일 동안 참전시킨 데서 생겨났다. 그래서 시인들은 우리의 분단을 ‘20세기의 죄악’이라 이름 지어 놓고 분노하고 있다.
태평양 전쟁에서 소련의 1주일 참전이 없었다면 3·8선이 생길리가 없었을 것이며, 3·8선이 없었다면 6·25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했다면 지금, 우리 9천만 동포가 하나의 가족으로 오순도순 잘 살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분단은 피를 토할 만큼 억울한 것이었다. 동시 한 편을 살피면서 담이 없는 세상을 생각해보자.
담 없는 세상 / 이선영
아래윗집 사이에
담이 없다면
오순도순 정다운
한집 마당 되겠지.
이 동네 저 동네
긴 담 튼 자리.
모두가 쉬어가는
큰 공원 되고,
가슴 속 쌓인 담도
내가 먼저 허물어
돌아서서 손잡으면
정다워질 이웃들.
나라 사이 피 묻은 담
헐리는 그 날엔
모두가 살기 좋은
하늘나라 같을 걸.
이선영 점자 겸용 동시집 ‘아주 큰 부탁’(2018)
아래윗집 사이에 담이 없다면 오순도순 정다운 한집 마당이 될 것이라 했다. 담이라는 경계선이 있기 때문에 한집이 되지 못한 것이다. 담을 헐어버리면 그 자리가 공원이 될 것이며, 쉬어가는 자리가 될 것이라 하였다.
그래서 옛적부터 ‘선린(善隣)’이라는 말이 있었다. 이웃끼리 사이좋게 지내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웃 나라 끼리도 사이좋게 지내야 평화가 이어진다. 이러한 정책을 선린주의라 한다.
사람들 사이에도 담이 있다는 사실을 시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마음 속 담까지 허물어버리면, 서로 손을 잡게 될 것이며, 온 세상이 정다운 이웃 친구가 될 것이라 하였다. 피 묻은 담이란 나라 사이에 일어난 전쟁 때문에 그어진 국경선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우리 국토에 가로놓인 휴전선이다. 이런 경계선이 헐리는 날이면 지구촌이 바로 천국이 될 거라는 바람을 담은 동심의 시다.
시의 작자 이선영 시인은 안동 출신으로, ‘아동문학평론’지를 통해 문단에 나왔으며(1995), ‘꽃잎 속에 잠든 봄볕’(2002), ‘맞구나 맞다’(2012) 등 동시집을 내었다. 영남아동문학상(2011), 한정동아동문학상(2013) 등을 수상했다. 동시 ‘담 없는 세상’이 실린 점자 겸용 동시집 ‘아주 큰 부탁’(2018)은 일반 독자 외에 시각 장애인들까지 시집 지면에 박아 둔 점자를 손으로 더듬어서 시를 읽을 수 있게 만든 특별한 시집이다.
신현득 아동문학가·시인 shinhd7028@hanmail.net
[1515호 / 2019년 12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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