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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붓다의 열반 여정

기자명 김준희

삶의 마지막을 투영해 남긴 작품 그리고 가르침

열반 가까운 붓다의 교화 여정
고통에도 ‘자등명 법등명’ 설해
노년의 리스트가 남긴 작품들
‘피아노 독주회’ 탄생의 토대

부처님의 마지막 여로, 인도 아마라와띠고고박물관 소장.

붓다는 열반이 가까워져 오고 있음을 알고 고향 까삘라왓투를 향해 마지막 교화의 여정을 떠났다. 때는 6월, 낮 최고 기온이 섭씨 50도를 넘는 더운 날, 중생을 향한 자비심과 연민으로 교화를 결심했다. 붓다는 약해진 몸을 이끌고 뜨거운 뙤약볕 아래 북쪽으로 향했다.

헝가리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프란츠 리스트는 그 누구보다 체력과 정신력이 강했기 때문에 복잡한 삶의 흐름 속에서도 방대한 작품을 남길 수 있었다. 건강에 이상신호가 나타났던 시기에도 끝없이 연주여행과 작곡, 지휘를 강행했다. 그의 노년의 작품들은 청년기의 작품에 비해 어둡거나 비장한 느낌을 많이 담고 있다. ‘잠 못 이루는 밤, 질문과 대답(Schlaflos, Frage und Antwort)은 리스트의 후기 작품 중 독특한 분위기의 곡이다. 

첫 부분은 잠들지 못하는 밤의 형언할 수 없는 감정과 더불어 무언가에 대한 의문을 그대로 표현한 듯 거칠고 도전적이다. 그러나 짧은 숨표 뒤에 나오는 유니즌은 앞부분의 선율을 다소 메마른 느낌으로 고요하게 보여주며 간결하지만 또렷한 답을 제시해 주고 있는 것 같다. 이 서사적인 곡은 ‘질문과 답’이라는 일반적인 구조를 선명하게 보여주며, 노년의 리스트의 명상적이고도 철학적인 모습을 나타내 주고 있다. 

라자가하를 출발하여 첫 번째로 도착한 곳은 암바랏티까 동산이었다. 붓다는 “이것이 계율이다. 이것이 선정이고 지혜이다. 계를 실천했을 때 정(定)의 큰 이익과 과보가 있으며, 정을 실천했을 때 혜의 큰 이익과 과보가 있다”고 했다. 계정혜 삼학에 대한 말씀이었다. 붓다는 나란다, 빠딸리 마을, 갠지스 강, 꼬띠 마을, 나디까 마을을 거쳐 마지막으로 웨살리에 도착했다. 붓다는 이 여정 중에 사성제에 관하여 설하기도 했다. 붓다는 마지막 목적지였던 상업도시 웨살리에 도착하여 암바빨리의 망고동산에서 잠시 머물렀다. 유녀 암바빨리가 설법을 청하자 붓다는 그녀에게 여러 가르침을 설하여 격려하기도 했다.

피아노 앞의 리스트 (1886년).

리스트의 피아노 작품 중 ‘녹턴’이라는 부제를 가진 ‘즉흥곡 F#장조 Impromptu’는 사색에 잠긴 듯한 시작을 보여준다. 첫 부분은 슈베르트의 즉흥곡 Gb장조와 유사한 것 같지만 곧 리스트 특유의 화려한 화성의 전개와 교차되는 선율은 몽상적이다. 밤의 신비스러운 선율과 즉흥성이 동시에 느껴지는 조성의 움직임이 상당히 고차원적인데 그 방법은 매우 자연스럽고 한편으로는 교묘하다. F#장조에서 C단조로 이동하는 태연한 기법은 리스트의 마법과도 같다. 가장 먼 거리의 조성을 전혀 거리감 없이 넘나들며 완벽한 경지를 느끼게 한다.

리스트는 ‘피아노의 파가니니’로 불려질 만큼 그의 피아노 작품들은 연주자의 기교를 돋보이게 하는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그의 작품 중 세련되고 고귀한 낭만성을 지닌 ‘순례의 해’와 그 이후의 작품들은 리스트의 비르투오소(virtouso)적인 면에 가려져있던 내면의 서정성과 진중한 음악적 서사를 발견할 수 있다. ‘즉흥곡 F#장조’에서도 아름답고 가슴 저미는 듯한 선율이 고조되었다가 진정되는 단정하기까지 한 모습은 한 차원 넘어선 격조를 보여준다. 

웨살리에서 붓다는 아난다에게 “아난다야, 내가 웨살리 마을을 보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하며 마지막 교화의 여정을 암시했다. 붓다는 웰루와 마을로 이동하여 우기가 시작될 무렵 여름안거를 시작했다. 안거 도중 붓다는 심한 병에 걸렸는데, 그 고통은 죽음에 이를 정도로 컸다. “내가 승가와 신자들에게 아무 말 없이 반열반(입적)에 드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 붓다는 정진력으로 고통을 감내했다. 붓다는 병을 이겨내고 아난다에게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을 설했다.

‘피아노 독주회’가 오늘날의 형식을 갖추게 된 것은 리스트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다. 이전까지는 음악회에 여러 명의 연주자가 출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리스트는 한 명의 연주자가 음악회 전체를 책임지는 독주회를 리사이틀(recital)이라는 이름으로 탄생시켰다. 그는 자신의 작품도 연주했지만, 바흐부터 쇼팽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대의 작품들을 프로그램에 넣었다. 오늘날의 음악회의 레퍼토리 선곡과 같은 구성이었다. 또한 뛰어난 암보력을 가졌던 리스트는 모든 곡을 악보 없이 연주했다.

1875년 개교한 리스트 아카데미 전경(부다페스트) 소재.

리스트가 그의 잘생긴 옆모습을 청중에게 보여주기 위해 피아노를 옆으로 놓았다고도 전해진다. 물론 피아노 뚜껑에 반사된 소리가 청중들을 향해 전달되도록 하기 위에 피아노의 위치를 정하고 피아니스트가 무대 옆쪽에서 등장하도록 연출했던 것이다. 그러나 연주자의 뒷모습만 보아야 했던 이전 시대의 음악회와는 달리, 리스트가 만든 오늘날의 독주회의 원형이 되는 음악회의 형식으로 연주자의 표정과 몸짓까지 더 잘 볼 수 있었기 때문에 청중들은 연주를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연주자들은 오늘날의 아이돌과 같은 인기를 누릴 수 있었다.

젊은 시절 리스트는 작곡과 연주활동으로 제자들을 키울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노년에 이르러서는 정기적인 레슨과 함께 마스터클래스(master class, 공개레슨)를 통하여 예술적인 표현과 그것을 전달하는 방법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노년의 리스트는 음악가로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목표가 ‘한계가 없는 미래 세계를 향해 창을 던지는 것’이라고 밝혔다. 

‘먹구름(Nuages gris)’은 후기 낭만주의와 다음 시대를 예견하는 작품의 면모를 보여준다. 건강이 악화된 후 쓴 이 곡은 감성적으로는 젊은 시절의 화려한 삶과는 정면으로 대치되는 새로운 차원의 자기 인식과 체념적인 정서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음악적으로는 20세기 혹은 인상주의적 모호한 텍스처와 화성을 예견한다. 뚜렷한 주제도 나타나지 않는다. 해결되지 않은 불협화음과 이리저리 떠다니는 듯한 음색, 그리고 종결의 느낌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종지 등 독특한 음악 어법으로 가득 차 있다.

“저마다 자신을 등불로 삼고 진리를 의지하라.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법의 등불을 밝혀 수행하라”는 붓다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리스트의 후기 작품들을 감상해 본다. 음악의 감동이 반드시 장대하거나 큰 음향, 또는 장식적인 화려함에서 오지 않는다는 노년의 리스트의 철학이 담긴 작품들은 또 다른 진지함을 가져다준다. 초절기교와 독보적인 행보와 업적을 남겼던 젊은 리스트. 뒤늦게 후학을 양성하고 그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해 나가며 미래를 바라보았던 모습에서 리스트의 후기 작품에서 붓다의 열반의 여정을 느껴본다.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515호 / 2019년 12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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