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 그리고 학술담론
원효, 그리고 학술담론
  • 김상영 교수
  • 승인 2019.12.09 11:29
  • 호수 1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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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이른바 ‘경허논쟁’이 심하게 불붙은 적이 있다. 학술회의장에서 발표된 한 연구자의 논문이 발단이 되어 유력한 불교계 잡지의 정간 사태까지 발생했던 사건이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사태는 수습되었지만, 이 일은 우리 불교계의 학술담론 필요성과 그 방향성에 대해 함께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최근 원효 스님을 둘러싼 논쟁이 교계 한 신문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진정한 의미의 학술 담론이 사라져버린 현실에서 논자는 이들 기사를 반가운 마음으로 읽어보았다. 불교학의 발전 없이 불교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고, 불교학의 발전을 위해 활발한 학술담론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진행된 두 가지 사례를 지켜보면서, 이들 논쟁은 그 방향성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는 아쉬움이 들기도 하였다. 

‘원효불교’는 8세기 이후 이 땅에서 활발하게 전승되지 못하였다. 8세기 후반 사신 자격으로 일본에 건너간 설중업(薛仲業)이 부끄러움을 느꼈을 정도로 원효를 추앙하는 분위기는 오히려 중국, 일본 등의 외국에서 지속되고 있었다. 이러한 원효불교의 단절 현상을 멋들어지게 극복한 인물이 대각국사 의천이었다. 의천은 한자문화권에서 편찬된 온갖 불교전적을 수집하여 새로운 교장(敎藏) 간행사업을 추진하였다. ‘신편제종교장총록’을 바탕으로 진행하였던 그의 교장 간행은 비록 완성되지는 못하였지만, 동아시아불교사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위상을 지닌 업적으로 오늘날까지 평가되고 있다. 

의천은 방대한 교장의 수집과정에서 원효를 지속적으로 만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펼치는 전적마다 원효의 저술이 인용되고 있음에 놀라고, 그 자구를 따라 음미해가면서 의천은 원효의 위대함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었다. 의천은 이러한 원효를 기리고자 분황사를 찾아 극진한 정성으로 제를 올렸다. ‘제분황사효성문’이라는 글에서 의천은 원효를 ‘성사(聖師)’로 불렀다. 더 나아가 그는 원효의 위상을 용수, 마명보살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것으로 찬탄하기도 하였다. 결국 의천은 자신의 형님이었던 숙종 왕에게 주청하여 원효를 ‘대성화쟁국사(大聖和諍國師)’로 추증하고 이를 온 세상에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의미로 ‘분황사화쟁국사비’의 건립을 성사시켰다. 고려 왕실은 1101년 원효를 국사와 성사의 반열에 올리는 공식 의례를 진행하였던 것이다. 이는 너무도 분명한 역사적 사실에 해당하는 일이다. 

역사적 위인들의 행적은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극화되고 부풀려지기 마련이다. 원효 역시 지금처럼 세인들의 입방아에 끊임없이 오르내리면서 역사적 실체와 어긋난 부분들이 더해지게 되었을 것이다. 유명한 해골물 이야기나 요석공주에 얽힌 이야기를 과연 원효불교의 실체라 할 수 있는가? 적지 않은 연구자들은 그 진실성과 사실 여부에 대해 아직까지 많은 의심을 남겨두고 있는 상태이다. 

12~13세기를 살다간 대문인 이규보는 원효와 관계된 짧은 찬시 한 편을 남겼다. “머리털을 깎아 맨 머리면 원효대사요, 머리털을 길러 관을 쓰면 소성거사로다”라는 그의 시구는 우리들의 무지몽매함을 일깨워주는 경책이 아닐 수 없다. 대롱으로 하늘을 보는 견해, 바닷물을 잔질하는 어리석음, 우물 속에 앉아서 바라보는 하늘이 전부인양 착각하고 살아가는 개구리의 좁은 소견, 혹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이러한 식견으로 원효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불교학의 발전을 위해서, 더 나아가 불교의 발전을 위해서도 학술담론은 반드시 필요하다. 활발한 학술담론은 불교 발전을 추동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담론 문화가 정착하기 위해 반드시 유념해야 할 사항이 하나 있다. 모든 담론은 반드시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야 한다는 점이다.

김상영 중앙승가대 교수 kimsea98@hanmail.net

 

[1516호 / 2019년 12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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