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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부처님의 평화로운 본보기

기자명 고용석

“우리 모두가 부처란 것 잊지말아야”

부처님은 손수 벼이삭 들고
일체 상호의존성 진리 남겨
부처연습, 부처됨 목적 아닌
‘내면의 장애’ 발견하는 과정

샌프란시스코 시온 산 병원의 리베트와 파인슈타인은 환자의 피부에 가해진 접촉자극이 두뇌에 전기적 신호로 전달되는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하고 있었다. 우선 환자에게 접촉자극이 느껴질 때 버튼을 누르도록 일렀다. 그들은 두뇌가 자극을 0.0001초 만에 감지했고 환자는 자극이 가해진 후 0.1초 만에 버튼을 누른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환자는 거의 0.5초 동안이나 자극도, 버튼을 누른 사실도 의식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결정은 무의식에서 내려지고 소위 안다는 것은 항하사의 모래 한 줌이다.

장자는 사람의 본분은 아는 바로써 모르는 바를 키우는 데 있고 지극한 경지에 가서야 사람이 하는 바도, 하늘이 하는 바도 알 수 있다고 했다. 아는 바만 안다면 자칫 자신만을 강화하고 생명이 복잡하고 궁극적으로 신비임을 알지 못한다. 모르는 바를 키우기에 스승도 만나고 수행도 가능한 법이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낮은 인간이 있다는 생각도 떨어져 나간다. 최소한 그때야 상호의존이나 평등을 말할 수 있지 그 전까지는 그냥 힘쓸 뿐이다.

부처님은 손수 벼 이삭을 들며 “이 벼 이삭을 볼 수 있다면 상호의존성과 그 기원도 알 것”이라 했다. 벼 이삭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햇빛과 비바람, 대지와 숱한 미생물, 농부의 땀 등등 수 많은 원인이 필요하고 이 하나하나의 원인들은 또 다른 원인들과의 조건들이 갖춰져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바라본다면 하나의 원인이라도 빼면 그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게 된다. 벼 이삭 하나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우주의 모든 것이 협력해야 하고 하나의 벼 이삭은 있는 그대로의 신비이자 경외다.

상호의존은 누구를 해치든지 그것은 곧 자신을 해함을 뜻한다. 공감 혹은 사랑도 상호의존의 다른 표현이며 이는 모든 윤리와 도덕의 바탕이다. 영적 전통과 종교가 ‘원하는 바를 상대에게 베풀라’ ‘나보다 당신’을 근간으로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가 열린 마음으로 이 상호의존을 수용할 수 있다면 삶 속에서 최고의 선물을 받은 것이다. 모든 관계의 치유제이자 숨겨진 삶의 온전성을 펼쳐가는 근본 토대이기 때문이다. 상호의존의 정견을 기반으로 팔정도는 서로 연관하며 서로를 강화하고 상호의존의 완성에 이르게 된다. 

우리는 모두 어린 부처다. 아직 왕국을 물려받을 왕자이고 강력한 왕이 되리란 걸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하지만 부모가 왕이다. 그 부모를 기억하듯 자신이 부처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일종의 부처연습이 요구된다. 명상과 함께하면 금상첨화겠지만 누구나 쉽게 부처처럼 먹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 흔히 새로운 생각을 하고 나야 새 삶이 가능하다고 안다. 아니다. 먼저 새 삶을 살게 되면 생각은 저절로 새로워진다. 우리는 밥상에서 자비롭고 중생과 지구를 살리는 부처의 삶을 연습할 수 있다. 우주적 생명의 그물망과 자비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거기에 맞는 생각도 일게 마련이다. 유유상종이다. 자비로운 밥상이 행복한 에너지를 부르고 그 행복은 더 많은 행복을 끌어당긴다. 이렇듯 부처의 삶을 살기 시작하면 명상은 물론, 부처의 눈으로 보고 행동함에도 탄력이 붙는다.

사실 부처 연습은 부처됨의 추구가 목적이 아니다. 단지 우리 내면에 부처 됨을 방해하는 스스로가 만들어온 온갖 장애물을 찾고 발견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모두 걸어 다니는 부처님의 평화로운 본보기다. 비건적 삶도 내적 관념과 문화적 미망으로부터 깨어나 생명을 생명으로 바라보는 부처연습의 하나일 뿐이다. 시성 타고르는 노래한다. 

“잇따른 슬픔 속에 가슴의 짓누름은 생명이 오는 발자국 / 기쁨의 눈부심은 생명의 발끝이 와닿는 황금빛 감촉 / 생명은 오십니다, 항상 오십니다, 이미 와 있습니다” 

고용석 한국채식문화원 공동대표 directcontact@hanmail.net

 

[1516호 / 2019년 12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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