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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에 불교 전한 마라난타 고향 간다라 아니다

기자명 법보
  • 기고
  • 입력 2019.12.11 14:50
  • 수정 2019.12.11 20:11
  • 호수 1517
  • 댓글 3

특별기고-이주형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해동고승전에 기록된 ‘축건’을
‘천축의 간다라’로 옮기며 비롯
홍명집 등 문헌엔 ‘축건=천축’
‘난랑비서’에도 ‘축건’은 인도

1990년대 “고향 확인” 주장은
학계로서 대단히 부끄러운 일
학술적 근거 없는 상상에 불과
지금이라도 오류 반복 말아야

이주형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가 12월10일 법보신문에 ‘마라난타가 간다라 출신이라는 것은 명백한 오류로 한문을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벌어진 해프닝’이라는 취지의 글을 보내왔다. 세계 최대 규모의 불교학술단체인 IABS(International Association of Buddhist Studies) 회장을 맡고 있는 이 교수는 1991년 미국 버클리대 대학원에서 간다라 불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세계적인 불교미술사 연구의 권위자로 평가받는다. 편집자

간다라의 메카산다 사원지 불탑. 부처님이 전생에 아낌없는 보시행을 했다는 곳이다.
간다라의 메카산다 사원지 불탑. 부처님이 전생에 아낌없는 보시행을 했다는 곳이다.

파키스탄 북부에 위치한 간다라는 불교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성지이다. 고대 인도의 북서쪽 끝에 자리 잡은 이곳에 멀리 남동쪽의 마가다와 코살라에서 활동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발길이 직접 미치지는 않았으나, 기원전 3세기경부터 천여 년에 걸쳐 인도 본토의 주요 불교 성지에 못지않게 불교가 크게 흥성했던 곳이다.

1990년대 이래 이곳에서는 서력기원 전후에 쓰여진 필사본 경전들이 다수 발견되어 불교문헌 연구사에서 획기적인 장이 열리게 되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뒤 구송(口誦)으로 전승되던 불교 경전들이 처음 글로 옮겨지기 시작한 것이 기원전 1세기경이니 바로 그 무렵의 경전들이다. 또한 이곳에서는 간다라미술이라 불리는 서양고전미술 양식이 반영된 불교미술이 크게 번성했으며 불상이 처음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대승불교 초기의 여러 중요한 경전들이 이곳에서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고 대승불교도들이 이곳에서 활발히 활동한 것도 잘 알려져 있다. 우리 불교계에서도 간다라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가져 왔고 최근에 그러한 관심이 더욱 고조되고 있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간다라와 우리 불교의 관련성에 대해 중대한 오해가 회자되고 있는 것은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백제에 불교를 전한 것으로 알려진 마라난타가 간다라 출신이라는 오해이다. 마라난타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해동고승전’, 이 세 가지 문헌에 나온다. ‘삼국사기’(1145년)는 호승(胡僧) 마라난타가 중국의 진(晉)나라에서 백제로 왔다고 기록하고 있고, 이것을 ‘삼국유사’(13세기 후반)도 인용하고 있다.

여기서 ‘호승’이라는 말은 ‘서역의 승려’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삼국유사’보다 수십 년 앞서 쓰여진 ‘해동고승전’(1215년)에서도 서두에서 마라난타를 호승이라 부르는데, 그 아래에서는 “축건(竺乾)으로부터 중국으로 들어왔다”고 쓰고 있다. 여기서 축건이라는 말을 ‘해동고승전’의 영문 번역(1969년)에서는 “인도 또는 간다라”라 번역했고(이 번역자는 간다라가 고대 인도의 한 부분이었다는 것을 몰랐다), 한글대장경에도 실린 자주 쓰이는 우리말 번역(1991년)에서는 “[천]축의 건[타라]”라 번역한 바 있다. ‘천축(天竺)’은 다들 아는 바와 같이 고대 중국에서 인도를 불렀던 이름이고, ‘건타라(乾陀羅)’는 간다라를 중국에서 한자로 음사한 것이다. 따라서 1991년의 우리말 번역에서는 ‘축건’을 ‘천축의 간다라’라 번역한 것이다. 마라난타가 간다라 출신이라는 오해는 바로 이 작은-그러나 결과적으로 매우 심각한-번역상의 실수들에서 비롯되었다. 한마디로 ‘축건’은 바로 ‘천축’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즉 ‘해동고승전’에는 실은 마라난타와 관련하여 간다라라는 말이 전혀 없는 것이다.

축건이 천축을 뜻한다는 것은 중국 불교문헌에 명시되어 있다. 일찍이 중국의 승우(僧祐)가 지은 ‘홍명집(弘明集)’(518년)에서는 도교의 주장을 반박한 ‘정무론(正誣論)’이라는 책을 인용하는데, 거기서는 도교 경전에 나오는 ‘축건’이라는 말에 대하여 “축건은 천축이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도교 경전에 나오는 같은 문장에 대해 현의(玄嶷)의 ‘견정론(甄正論)’(684~705년)에서는 축건의 ‘건(乾)’이 ‘천(天)’과 상통하는 것인데 착오로 ‘축’자를 ‘건’자 앞에 써서 천축이 축건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당나라 시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불교 문헌에서는 ‘축건’이라는 말이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에 불교 전통에서는 이 말이 별로 쓰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이 말을 중국의 도가들이 처음 쓰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조심스레 추측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차후에 상세한 논고에서 밝혀야 할듯하다.

‘해동고승전’에서도 축건이 천축을 의미한 것은 이 문헌에서 축건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또 하나의 부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해동고승전’의 찬자 각훈은 최치원이 쓴 ‘난랑비서(鸞郞碑序)’를 인용하는데, 거기에 “제악막작(諸惡莫作) 중선봉행(衆善奉行)은 축건 태자의 교화이다(竺乾太子之化也)”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서 ‘축건 태자’는 물론 석가모니 부처님을 뜻하고 그것을 문학적으로 바꾸어 쓴 말임을 알 수 있으며, ‘축건’을 ‘천축’이라는 뜻으로 썼음은 분명하다. 최치원의 난랑비서는 ‘해동고승전’보다 70년 앞서 쓰여진 ‘삼국사기’에도 인용된 것인데, 아마도 각훈은 비문을 직접 보았거나 ‘삼국사기’의 기사를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각훈도 축건이 천축을 의미한다는 것을 몰랐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처럼 불교 문헌에서 축건이 천축을 의미한다는 것은 상식과 다름없음에도 불구하고 ‘해동고승전’의 축건이 ‘천축의 간다라’로 잘못 번역되었고, 여기서 마라난타가 간다라 출신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오해가 생겨난 것이다. 사실 고려 시대의 불교도들에게 오래전에 불교가 번성했던 간다라라는 곳은 거의 잊혀져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는 간다라에 대한 지견이 있으므로 축건이라는 이름을 보며 천축의 간다라를 떠올리게 된 것이다. 우리 예불문에도 ‘서건동진 급아해동’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서쪽의 천축에서 동쪽의 진(중국)으로 그리고 해동에 이르기까지”라는 뜻이다. 여기서 ‘서건(西乾)’이라는 말은 ‘서천(西天)’, 즉 ‘서쪽의 천축’이라는 말이지만, 이 말도 간혹 ‘서쪽의 건타라(간다라)’와 같은 착각을 줄 수 있다. 서건이 ‘서쪽의 간다라’가 아닌 것처럼 축건도 ‘천축의 간다라’가 아니며, 이것은 역사적으로나 문헌학적으로나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다. 마라난타의 고향이 간다라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이 정설처럼 유행하는 것은 우리 불교계나 학계의 입장에서는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한술 더 떠서 마라난타의 출신지가 간다라라는 설이 처음 유포되기 시작한 1990년대 말에 마라난타의 실제 고향이 확인되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필자는 이 이야기를 처음부터 믿을 수가 없었다. 마라난타는 백제에 불교를 전한 사람으로, 한국에서 12~13세기에 쓰여진 세 가지 문헌을 통해서만 알려진 사람이다. 중국을 거쳐 한국에 간 어느 사람의 고향이 멀리 인도/파키스탄에서 천 몇백 년 뒤까지 기억된다는 것은 그 사람이 그곳에서 무언가 의미 있는 인물로 계속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경우에만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마라난타는 한국 불교의 맥락 외에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는 인물이다.

간다라의 미륵보살상-페샤와르박물관 소장.
간다라의 미륵보살상-페샤와르박물관 소장.

이 점을 의아하게 생각한 필자는 그러한 주장을 처음 편 모 교수에게 그 근거가 무엇인지 직접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그것이 어느 프랑스 문헌에 나온다고만 하며 정확한 해명을 회피했다. 2001년에 어느 불교계의 신문에서는 그 근거가 파키스탄 어느 교수의 고문헌선집에 실려 있다고 보도했다. 그 교수는 필자보다 몇 살 위인 파키스탄의 고고학자이다. 필자는 최근 그와 이 문제를 의논한 적이 있는데, 그는 그 이야기가 금시초문이라며 자신은 전혀 그런 근거를 제시한 적이 없고, 한국의 모 교수가 언제부턴가 그런 주장을 펴더라고 하며 자신도 황당했다고 한다. 아마 한국의 모 교수가 어떤 곳에서 현지인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니 무슨 이야기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그냥 그렇다고 답한 것 같다고 했다. 물론 그 고문헌선집이라는 것도 실제로 제시된 바가 없으며, 파키스탄의 그 교수도 그런 책을 펴낸 적이 없다. 만일 정말 그런 자료가 있다면 하루속히 제시되기를 바란다.

아무리 따져보아도 상상이 만들어냈다고밖에 볼 수 없는 마라난타의 고향이라는 곳에는 최근에 표지판도 세워지고 한국 불교계에서 간다라를 방문하는 인사들이 참배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은 잘못된 번역을 한 사람부터 그 타당성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된 사람, 학술적 근거 없이 상상이 빚은 주장을 되풀이하는 사람들에게 이르기까지 근본적으로 연구자들의 책임이다. 필자는 15년쯤 전에 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논문을 쓰기 시작했으나 그 마무리를 여태 미루어 결과적으로 우리 불교계의 많은 분들이 그러한 오해에 휩쓸리는 일을 좀 더 일찍 막지 못한 데 대해 연구자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최근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막된 가야전과 더불어 아유타국의 허황후가 실제로 인도에서 가야에 와서 불교를 전했는가도 새삼 논란이 되고 있다. 필자는 허황후의 불교 전래도 훨씬 후대에 꾸며진 전설이라는 견해에 공감한다. 그런데 허황후의 불교 전래는 전설이라 할지라도 최소한 ‘삼국유사’에 분명히 기록으로 쓰여 있다. 그러나 마라난타가 간다라에서 왔다는 것은 번역상 아주 작은 부분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실수에서 유래한 것으로 어디에도 근거가 없는 것이다. 마라난타의 고향이 실제 어느 장소에 알려져 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어이없는 해프닝이 계속되고 더욱 확산되는 것은 우리 불교계나 학계의 체통을 위해서도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한다는 점을 힘주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주형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이주형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필자는 누구 못지않게 파키스탄이라는 나라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다. 파키스탄은 필자가 인도 불교를 공부하며 인도아대륙에서 처음으로 발을 디뎠던 곳이며 필자의 이제까지 삶에서 많은 아름다운 기억들이 쌓여 있는 곳이다. 이곳은 마라난타의 고향이 아닐지라도 불교사에서 인도의 어느 주요 성지 못지않게 중요한 성지이며, 앞으로 더 많은 불자들이 방문하고 참배할 만한 곳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페르시아인, 그리스인, 인도인,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이 만난 문명 교류의 십자로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때 고대 인도 문명에서 또 하나의 중심임을 자랑했던 이곳을 더 많은 한국인들이 방문하고 여행하여 그 아름다운 산천과 유서 깊은 문화유산을 스스로 체험하기를 기대한다.

[1517호 / 2019년 12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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