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 훈수
뒷북 훈수
  • 심원 스님
  • 승인 2019.12.16 13:29
  • 호수 15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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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12월, 올해도 저물고 있다. 한 해의 끝머리에서 되돌아보니 2019년은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외교 면에서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선언’으로 인한 한일관계 악화, 법무장관 임명으로 야기된 ‘조국사태’, 최근에 불거진 ‘청와대의 울산시장 하명수사 의혹’에 이르기까지 국민적 관심과 파장을 불러일으킨 사건도 있었고, ‘버닝썬 게이트’ ‘강원도 산불’ ‘인천 붉은 수돗물 사건’ ‘다뉴브강 유람선 허블레아니호 침몰 사고’ ‘독도 구조헬기 추락’ ‘아프리카돼지열병 파동’ 등 예기치 못한 사건 사고도 끊임없이 발생했다. 

그런데 이런 사건이 발생한 후,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사건의 경위에 대해 설명하고 해석하는 것을 보면 묘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마치 그들은 그 사건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어떤 사건이 이미 결과를 드러낸 후에, 자기는 처음부터 그 일의 결과가 그렇게 나타날 것이라고 알고 있었던 것처럼 착각하는 것을 ‘후견지명(後見之明)’ 혹은 ‘사후확증편향(Hindsight Bias)'이라 한다. 

후견지명이란 글자 그대로 ‘나중에 아는 지혜’를 뜻하는 말로 앞을 내다보는 지혜인 ‘선견지명(先見之明)’에 대비하여 만든 말이고, 실제로 그 결과를 알기 이전에는 예측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후에 ‘나는 처음부터 그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고 확신하게 하는 심리적 기제라는 점에서 사후확증편향이라고 한 것이다. 이런 사후확증편향이 사람들에게서 어떻게 작동되는지 톨스토이는 소설 ‘전쟁과 평화’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아무도 그러한 승리를 예견하지 못했다. 다만 군대가 승리를 이끌어 냈을 때에야 비로소 사람들은 ‘이것이야말로 벌써부터 바랐던 일이다’, 자기들은 ‘벌써부터 그것을 예견하고 있었다’고 스스로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자신이 사건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믿고 싶어 하고, 또 남에게도 그런 능력가로 보이고자 하는 자기 과시욕이 있기 때문에 사후확증편향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사건에 대해 스스로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하고자 하는 욕구로 인해 확증편향은 강화된다. 

특히 이러한 편향은 전문가들에게 더 크게 작용하는데, 그들은 해당 분야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사건의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능력이 일반인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대형 화재, 건물 붕괴, 비행기 추락, 선박 침몰 등 급작스런 사고가 발생하면 으레 매스컴이나 신문지상에 전문가들이 등장하여 사태의 심각성을 논하며 ‘예견된 인재’였다고 관계자들의 대비 소홀을 문책하곤 한다. 사실, 이미 일어난 일을 아는 것은 그다지 특별하다 할 것도 없지만, 조목조목 인과관계를 따져 설명하고 해석할 때면 이들은 굉장한 능력가로 보인다. 

그런데 왠지 석연찮은 뒷맛이 남는다. 뭔가 거북하다. 그렇게 잘 알고 있었다면 피할 수 있도록 미리 조치하게끔 하지 이미 일이 벌어진 후에 잘난 척 하는가? 오히려 무책임하고 비겁해 보이기까지 한다. 게다가 이런 편향성은 때로 과거를 왜곡하고, 과거를 통한 미래 예측 능력을 과장하기도 하여, 과거로부터 정직하게 배우는 것을 방해하고, 미래를 잘못 예측하게 한다는 면에서 위험하기도 하다.

불교에서는 수행자가 성취한 뛰어난 능력을 삼명육통(三明六通)이라 칭한다. 이 가운데 굳이 배대해 보자면 숙명통이 후견지명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둘 다 과거 일을 안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차이점은 숙명통은 편향이 아니라는 점이다. 숙명통은 지난 일의 인과를 있는 그대로 꿰뚫어 보는 지혜이지, 자기 과시나 사후 해석을 위한 설득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사후약방문도 영 쓸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년에는 모든 이들이 좀 더 지혜로워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앞날을 내다보는 ‘천안통’이 열리고 ‘선견지명’의 안목이 트여 ‘내 그럴 줄 알았다’고 뒷북 훈수를 남발하는 일이 없기를 기원한다.

심원 스님 중앙승가대  전 강사 chsimwon@daum.net

 

[1517호 / 2019년 12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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