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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마사코의 치매

기자명 김정빈

“남편분이시잖아요?”“아마 그럴지도 모르죠!”

마사코, 일본 하루토 작가의 부인 
치매 점점 심해지더니 침대 소변
결국 남편도 몰라봐 병원에 입원
삶 참다운들 마지막은 무로 끝나
생전 진선미 새겨 삶 의미 조명을  

그림=육순호
그림=육순호

일본 작가 하루토(1906~1988)는 마사코라는 여인과 결혼했는데, 두 사람 사이에 아이는 없었다. 꽤 오랜 시간이 흘러 하루토 부부는 ‘노인’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마사코에게서 세상 사람들이 ‘치매’라 부르는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치매는 알츠하이머와 혈관성 뇌병변으로 생기는 경우가 많고, 수십 가지의 원인에 의해 생기기도 한다. 통계에 따르면 이 매우 곤란한 병은 65세 이상 노인의 4~6퍼센트, 85세 이상 노인의 25퍼센트가 앓게 된다.

치매는 3기에 걸쳐 진행되는데, ‘건망기’라고도 불리는 초기에는 기억 장애(정신 장애)가 발생하고, ‘혼란기’라고 불리는 중기에는 방향 감각 장애(행동 장애)가 발생하며, ‘자리 보전기’라고 불리는 말기에는 실금, 음식을 못 삼킴 등의 행동 장애가 발생한다.

어느 날 마사코는 집을 수리한 목수에게 청구된 요금 외 과도하게 많은 금액을 얹어 지불했다. 얼마 후에는 마사코가 만드는 음식의 맛이 전과 달라졌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는 그것을 놓아두고 집에 오곤 했다. 그 후부터 하루토는 아내 대신 장을 보았다. 아내에 대해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많았던 하루토는 변해가는 아내에 대해 최대한 이해하고 배려하는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사태는 점점 더 악화만 되어갔다. 어느 날 마사코가 냄비를 태웠고, 그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되었다. 그때마다 마사코는 그을린 냄비를 버리고 새 냄비를 샀는데, 전에 것을 버리지 않고 싱크대 수납장에 차곡차곡 보관했다. 하루토는 탄 냄비를 보기가 싫어 내다 버렸다.

다른 날, 집안에 타는 냄새가 퍼져 부엌에 나가보니 냄비가 또다시 타고 있었다.

“뭐 하는 거요? 빨리 가스불 꺼요!”

하지만 마사코는 당황하기는커녕 생글생글 웃기만 했다. 하루토는 서둘러 불을 끈 다음 아내를 나무랐다. “대체 몇 번이나 냄비를 태워먹을 작정이오?” 남편의 나무람에 아내는 “미안해요”라고, 온화하게 말했는데 눈동자의 초점은 흐려져 무얼 바라보고 있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의사들이 관찰한 보고서에 따르면 치매를 앓는 환자들은 자신이 겪은 일을 이지적으로는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감정적으로는 기억이 축적된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잘못 행동한 일에 대해 꾸지람을 받으면 자신의 행동과 꾸지람에 대해서는 기억하지 못하고, 그 꾸지람을 받을 때 느꼈던 자기 비하감이나 모멸감은 축적되어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실수를 할 때마다 꾸지람을 받아 오던 마사코가 어느 날 낮은 탁자 앞에 몸을 숙이고 무연히 앉아 있었다. 남편이 왜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느냐고 묻자 마사코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라고 절망적으로 말하더니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하루토는 이런저런 말로 그녀를 위로해주었다. 그러자 마사코는 자신의 이마를 손으로 탁 치며 탄식했다…. “아, 무슨 말인가 하고 싶은데… 뭐라고 말해야 하는지 생각이 안 나요.”

어느 날 한밤중에 마사코가 잠에서 깨더니 주방에 나가 가스불을 켰다. 그러더니 잠시 후 잠자는 남편을 깨우고는 “식사 준비 다 됐어요. 일어나세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마사코는 거실 창문까지 다 열어 놓았고, 그 때문에 방에는 찬 공기가 가득했다.

하루토는 얼른 거실로 나가보았다. 주전자가 시뻘겋게 달아 있었다. 하루토는 화가 치밀어 올랐고, 얼른 가스불을 끈 다음 아내의 얼굴을 손으로 치고 말았다. 마사코는 얼굴색이 변하더니 떨리는 소리로 “부모님한테도 맞아 본 적이 없어요!”라고 말하더니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하루토는 얼른 사과를 했지만 마음은 불편했다. 그는 아내를 달래 잠자리에 누인 다음 이런저런 생각으로 그날 밤을 꼬박세웠다. 헤아려보니 그때 두사람의 나이는 여든을 넘어서고 있었다.

병이 더 깊어지자 마사코는 집을 나가서는 돌아오지 못하곤 했다. 조금 뒤부터는 침대에 소변을 보곤 했다. 하루토는 작은 웅덩이를 이루고 있는 방바닥의 소변을 걸레로 닦아내며 ‘이 작은 실개천이 나를 위해 50년을 노력해 준 아내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몸을 못 이기는 아내의 몸을 허리부터 발끝까지 닦아 주었고, 마사코는 ‘내가 당신에게 이런 일까지…’하고 중얼거렸다.

마침내 하루토는 마사코를 노인복지시설에 입원시켰다. 그런 지 얼마 후, 이번에는 하루토에게서 문제가 생겼다. 입안에 암이 발생한 것이다. 말을 하지도, 먹을 것을 씹지도 못하는 지독한 병에 걸린 그를 복지시설에 있던 아내가 휠체어를 타고 방문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분이 누구예요?”라고 간호사가 물었지만 마사코는 대답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간호사가 다시 “남편분이시잖아요?”라고 말하자 마사코는 “그럴지도 모르죠!”라고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치매에 걸리지 않더라도 누구에게나 기억은 지워져가게 마련이고, 누구나 마침내는 죽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기억이 지워지면,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이 평생에 걸쳐 쌓아온 행위들은 그대로 무화되어버리고 마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삶은 무의미한 것이다. 선하게 산 사람도 마지막은 무(無)이고, 악하게 산 사람도 마지막은 무이기 때문이다. 참다운들, 선한들, 아름다운들 마지막은 다 무가 되어버리는 삶. 부처님께서는 이런 ‘가치 허무주의’를 강력하게 반대하셨다.

삶이 허무해지지 않으려면 진, 선, 미가 서야 하고, 그를 위해서는 진, 선, 미한 행동들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진, 선, 미한 행위들이 살아생전에 다 보상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하루토와 마사코처럼. 그리하여 우리는 진, 선, 미한 행위들의 보상을 내생(다음 생)을 통해 실현하고 싶어 한다.

윤회는 진, 선, 미와 위, 악, 추가 포상, 처벌되지 못하는 데 대한 대안으로서의 사상적 장치이다. 이 장치가 ‘사실’임을 증명할 수는 없다. 그리하여 우리는 ‘믿음’을 통해 이 장치를 도입하게 된다. 그 관점에서 필자는 윤회를 더 적극화한 ‘공덕장(功德藏) 사상’을 제안하고 싶다.

필자가 제안하는 공덕장은 진, 선, 미한 행위들에 의해 형성된 공덕들이 저장되는 형이상학적인 공간이다. 미타 사상이 제안하는 극락세계를 그런 의미로 재해석할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극락세계는 그곳이 반드시 있어서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의미 구축을 위해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요청의 공간, 당위(當爲)의 공간인 것이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517호 / 2019년 12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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