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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금욕

금욕은 종교적 형태로 나타났지만 실질적 이유는 경제

종교, 내세 약속하며 금욕 정당화
감각적 욕망 자극하는 음악 규제
술 많이 소비하면 생존율도 저하
인간은 자기 위해 타인까지 착취

인류역사를 관통해 금욕과 요욕(樂慾 hedonism)이 경쟁을 해왔다. 금욕은 종교를 통해서 나타났다. 정결(chastity 성적 절제)·가난(poverty)·겸손(humility)의 형태로 나타났다. 감각적 쾌락에 대한 절제도 있다. 그런데 끝없이 금욕을 하려면 뭐 하러 태어났을까? 종교는 내세를 약속하며 금욕을 정당화한다. 심지어 사후에 낙원에서 마음껏 술과 여자를 즐기는 종교도 있다.

종교는 음악을 규제한다. 음악이 감각적 욕망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중세의 유럽 음악은 종교음악이 주를 이루었다. 유교도 음악은 주로 인간의 본성을 다스리는 용도로 썼다. 불교도 계율로 승려들이 음악을 즐기는 것을 금한다.

고대인들은 악(惡)의 문제를 해결할, 즉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다윈의 진화론을 통해서 상당히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예컨대, 젊은이들에게 ‘병 없이 살다 20살에 죽을 것인가’ 아니면 ‘병에 걸려 고통을 받더라도 80까지 살 것인가’를 물으면, 아마 절대다수가 후자를 택할 것이다. 그만큼 이미 태어난 사람들은 생명을 이어가기를 원한다. 비록 병에 걸리는 일이 있더라도. 다시 말해서 인간은 장수와 질병을 바꾼 셈이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혼자 살 것인가’ 아니면 ‘같이 살 것인가’에 대해 선택권을 주면 거의 모든 사람들은, 후자를 택할 것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어울림 속에서 기쁨을 얻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물질적으로도 도움을 받지만 정신적으로도 도움을 받는다. 거래를 통한 물자의 교환도 있고, 품앗이를 통한 협력도 있고, 힘을 모아 혼자는 할 수 없는 큰일을 할 수도 있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는 즐거움도 있다.

더 오래 살려면 신경계가 발달해야 한다. 신경이란 감각정보를 뇌에 전달하는 수단이다. 통증은 몸에 이상이 있다는 신호이다. 고통을 줌으로써, 통증에 상응하는 적절한 행동을 취하도록 한다. 통증은 일종의 경고·벌금과 같다. 그러므로 통증·고통은 오래 살기 위해서 지불하기로 한, (위 일화에 따르면) 인간이 지불하기로 동의한, 비용이다. 그 점에서, 비록 그런 선택 기회를 받은 적은 없지만, 기회가 주어지면 후자를 선택할 거라는 점에서, 실제적으로는 선택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개미를 통해 많은 걸 배운다. 안드로메다 고등 외계인의 눈에는 인간이 개미처럼 보일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의식이 발달한 생물로 칠지 모르지만, 고등 외계인의 눈에는 ‘의식이 거의 없는 생물’로 비칠 수가 있다. 인간이 떼를 지어 같은 인간을 죽이는 모습을 보면, 떼를 지어 다른 무리를 대학살하는 개미들이 떠오른다. 고등 외계인에게는 인간이 개미처럼 보일 것이다. 인간이 모여 사는 이유는, 타인은 지옥이지만, 더 천국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왜 그리 금욕을 강조했을까? 그 이유는 물자 부족 때문이었다. 개미 사회에서는 의식이 발달하지 않아 자신을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생각하지 못한다. 자신은 거대한 개미 무리의 일원일 뿐이다. 무리를 떠나서는 생존하지 못한다. (개미는 개체 의식이 없기 때문에 다른 개체들을 착취할 수 없다. 일부 종이 다른 종을 노예로 부리는 드문 예외가 있기는 하다.) 그런데 인간, 특히 의식이 발달한 인간은 자신을 개체로 여기고, 사회를 자기를 위해 이용하려고 한다. 심지어 혼자서도 생존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한다. 그래서 타인들을 착취하게 된다.

음악과 예술은 물자를 소모한다. 술과 음식이 따르기 때문이다. 감성에 휩쓸려 술과 음식을 만들어 물자를 소모하면 생존확률이 감소한다. 주기적으로 기아에 시달린 인류는 낭비를 경계할 수밖에 없다. 섹스도 경계할 수밖에 없다. 아이를 키우는 데는 물자가 든다. 브라질 열대우림의 야노마뫼족은 세 번째 아이는 살해한다. 이들은 자주 이동을 하는데, 갓난아이를 맡은 여인은 하나는 안고 하나는 업고 최대한 둘만 데리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클 때까지는 세 번째 아이는 태어나면 계속 살해당한다. 그러므로 성욕은 제어되어야 한다. 현대에 들어와 음악·미술이 대성황을 이루게 된 것은 그리고 성이 해방된 것은, 과학기술 발전으로 생산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인류가 풍요롭게 되었기 때문이다. 금욕은 종교적 형태로 나타났지만, 그 이유는 경제였다.

강병균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 bgkang@postech.ac.kr

 

[1517호 / 2019년 12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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