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섯 방향을 향해 공존하는 법 

기자명 박사

내게 아이를 좋아하는지 묻는다면, 좋아하지 않는 쪽에 가깝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서툰 걸음은 불안하고 느닷없이 비명을 지르곤 하는 넘치는 에너지가 부담스럽다. 시간과 장소를 개의치 않고 울거나 떼쓰는 걸 받아주고 쉽지 않다. 자는 아이는 천사 같지만, 자고 있지 않은 아이는 평화를 깨는 존재다. 하지만 그래서 아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이 세상은 나에게 그렇듯 아이에게도 활짝 열려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아이가 없기를 바랄 자격이 없다. 아이가 내가 없기를 바랄 자격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이 없는 세상을 선택하고 있다. 노키즈존이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 심상찮다. 얼마 전, 전체관람가인 애니메이션 상영관을 노키즈존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불거지면서 논쟁이 일어났다. 어른의 편안한 관람을 위해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애니메이션 상영관에 아이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하나? 노키즈존에 대한 인권위원회 대답은 “차별이니 시정해야 한다”이지만, 아이 소란으로 제대로 영화를 감상하지 못했다는 어른들의 불만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한쪽에서는 아이전용관을 만들면 되지 않느냐는 타협책을 제시하지만, 어찌되었건 경계를 긋고 서로의 영토를 확정하고 넘나들기를 금지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디가니까야’의 ‘시갈로와다’ 경에서 부처님은 여섯 방향의 비유를 들어 우리가 어떻게 타인과 관계 맺어야 하는지 가르친다. 동서남북위아래, 여섯 방향을 향해 합장하고 예배하는 젊은 남자 시갈라를 만난 부처님은 “거룩한 가르침에서는 여섯 방향은 그런 식으로 예배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진정한 예배의 의미를 알려준다. “여섯 방향은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한다. 부모는 동쪽이라고 알아야 한다. 스승은 남쪽, 아내와 아이들은 서쪽, 친구와 동료는 북쪽, 하인과 고용주는 아래쪽, 사문과 브라흐민은 위쪽이라고 알아야 한다.” 이어 부처님은 자식으로서, 부모로서, 제자로서, 친구로서, 주인이나 고용인으로서 갖춰야 할 자세를 하나하나 일러준다. 

방위에는 차별이 없다. 동쪽이 서쪽보다 더 나을 까닭이 없다. 남쪽과 북쪽도 마찬가지다. 여섯 방향의 비유에서 부처님이 말씀하고자 하는 진정한 의미는 사방팔방이 나와 관계 맺은 이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일 게다. 한 명의 사람은 만나는 이들이 바뀜에 따라 멀티아이덴티티를 적절히 운용하며 삶을 꾸려나간다.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타인들과 각각 적합한 방식으로 교류하며 원만하게 세상을 이룬다. 그들 중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면 나도 행복할 수 없다. 그러니, 타인들에게도 신에게 예배하는 태도로 진지하고 경건하게 대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동쪽을 없앨 것인가. 북쪽 없이 살 것인가. 어처구니없는 시도는 세계를 꾸깃꾸깃하게 만든다. 인간관계에 있어 편견과 이기심을 드러낼 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즉각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합계출산율이 0.9로 떨어지면서 ‘인구절벽이 심각’하다고 아우성이다. 아이와 약자를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버리려는 움직임은 인구절벽의 원인 중 하나다. 이 세상이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야 하는 곳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함께 소멸하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다. 인과는 이토록 엄격하다. 

교육방송에서 하는 아이 대상의 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미성년자에게 행한 폭력과 욕설이 문제가 되었다. ‘아이와 친구같이 지냈을 뿐이니 징계는 억울하다’는 가해자의 주장이 아무런 여과 없이 매체를 탔다. 아이들은 서쪽이고 친구는 북쪽이다. 경계를 긋고 나누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대상과 방향에 따라 적절한 관계를 맺는 방법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허공은 경계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섯 가지 방향으로 인간관계를 나누어 설명하신 부처님의 현명함을 떠올려본다. 공존은 그렇게나 어렵고, 그렇게나 쉽다. 

박사 북칼럼니스트 catwings@gmail.com

 

[1518 / 2019년 12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