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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한해 끝, 과정을 관조해야

2019년 한해가 진다. 지나가는 해의 끝은 스산하다. 바람에 휩쓸린 길거리 마른 잎사귀처럼 잘한 일보다는 못한 일이, 기쁨보다는 후회가 먼저 떠오른다. 이럴 때 떠오르는 선구가 운문문언(雲門文偃, 864~949)선사의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다. 

보름날 운문선사가 대중들을 모아놓고 물었다 “그대들에게 지나간 15일 전의 일에 대해서는 묻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15일 이후의 일에 대해서 한마디씩 해 보라.” 그리고는 대중들의 대답은 들어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다.” ‘벽암록’이라는 불멸의 선어록에 담긴 화두이니, 서투른 해설은 죄를 짓는 일이 될 터이다. 그럼에도 세간에서는 일일시호일을 “날마다 좋은날”로 해석한다. ‘날마다 좋은날’은 듣기만 해도 행복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모두 집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으니, 날마다 좋은 날이 뛸 듯이 기쁘거나 행복한 날은 아닐 것이다. 그럴까봐 선사들은 좋은날에 대해 번뇌 망상을 여읜 여여한 날이라고 친절하게 부연한다. 근심과 걱정을 덜어버린 깨달음의 나날, 즉 부처님의 일상이 그대로 날마다 좋은날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중생인 우리들의 좋은날은 어떤 날일까? 번뇌 망상을 여읜 여여한 날은 중생에게 요원한 일이니, 후회 없는 날 정도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

우리의 삶은 후회로 점철돼 있다. 한 해의 끝자락엔 후회가 더욱 막심하다. 후회는 결과의 산물이다. 이루지 못한 성과는 아득한 후회를 낳는다. 그러나 결과만이 성과일수는 없다. 과정이 바르고 최선을 다했다면 그 자체로 성공이다. 햇살이 좋으면 햇살이 좋은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태풍이 불면 태풍이 부는 대로, 그 자체가 날마다 좋은 날이다. 그래야 꽃도 피고 열매도 맺고 단풍도 물든다. 올 한해 다사다난했지만 참으로 열심히 살았다. 그래서 많은 날들이 좋은 날이었다. 아마도 다들 그러했을 것이다.

김형규 대표 kimh@beopbo.com

 

[1518 / 2019년 12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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