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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공양에 합당한 삶(끝)

기자명 고용석

섬김과 희생의 삶, 상호공생하는 삶

히틀러, 유태인 대량 학살 위해 
유대인 동물처럼 보이도록 노력
자연을 공경하고 사회에 베풀며
몸 다스리는 건 당연한 보은행

부처님은 말한다 ‘모든 존재는 폭력에 떤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삶을 사랑한다. 다른 존재 안에서 그대를 보라. 어떻게 누군가를 해칠 수 있겠는가’ 오늘날 공장식 사육은 인류 최대의 치부이자 지옥 자체다. 이 지옥을 바꾸기 위한 조치는 간단하다. 단지 볼 수 있는 권리와 힘이다. 만약 도살장이 유리벽으로 되어 있다면 누구도 감히 고기를 먹지 못할 것이다. 마트의 고기도 작은 부위로 잘린 채 말끔하게 포장됨으로 인해 살아있는 생명의 모습을 떠올리기가 어렵다. 눈으로 볼 수 없기에 어떠한 잔인함에 대한 인식이나 동정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역사를 통틀어 선각자들은 음식과 관련된 우리의 태도와 관습에 깊이 주의할 것을 강조해왔다. 고기를 먹는 것은 내면의 연민과 자비를 짓뭉개고 자신에게 해를 가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인간 간 폭력의 원초적 뿌리라고 생각했다. 또한 만물이 인간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고방식과 믿음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여겼는데 이는 오늘날 기후붕괴와 생물대멸종의 위기로부터 인류의 지속가능한 대전환을 여는 선견지명이 아닐 수 없다. 

소크라테스는 불과 몇 시간 전까지 하나의 생명체로 그들의 눈 속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보던 동물을 죽이는 육식습관을 현실적 측면에서 문답했다. 우리가 육식을 추구하고 또한 이웃이 비슷한 길을 따른다면 더 많은 목초지를 확보하기 위해 전쟁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며 육식습관이 공정한 사회를 건설하고 행복을 추구함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피타고라스는 심지어 탐욕스러운 배를 채우기 위해 동물의 살을 먹는 행위를 사악하다고 봤다. 만물은 유전하고 만물마다 영혼이 깃들어 있는데 육식이란 게 제 부모형제를 잡아먹고 인간의 피를 보려고 예행 연습하는 것과 뭐가 다르냐며 한탄했다.

미국의 문예부흥을 이끌고 환경과 시민운동의 개척자인 에머슨과 소로우도 ‘자연’ ‘월든’을 통해 생명체의 연민에 기초한 긍정적 혁명을 노래했다. 그들은 고기의 단점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상상력과 본성에 고기가 어울리지 않다고 보았다. 즉 고기를 멀리하는 것은 경험의 효과가 아니라 일종의 본능이라는 것이다. 특히 문학이나 예술, 시적 영감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려는 사람은 물론이고 인류가 성숙해질수록 육식을 삼가게 되는 것이 인류의 숙명이라고 확신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20세기 강력한 동물옹호자인 아이작 싱어는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아 홀로코스트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고 작품을 썼다. 그는 히틀러가 인간학살의 효율성을 높이려고 유대인을 인간이 아닌 동물처럼 보이도록 무던히 애썼으며 동물들과의 관계에서 모든 인간은 나치이고 세상은 영원한 유태인 대량학살 수용소와 다름없다고 증언했다.

‘바가바드 기타’에 따르면 인간은 태어날 때 몸·사회·우주라는 3가지 질서 속으로 존재하게 된다. 우리는 매일 이 질서들을 사용하여 그것을 훼손하고 더럽힌다. 고로 자연을 공경하고(야즈나) 사회에 베풀며(다나) 몸을 다스리는(타파스) 행동은 이타행이 아닌 마땅한 보은의 행위다. 우리가 이 의미를 이해하고 삶 속에서 순수한 행위로 본래 하나인 3가지 질서들을 일치시킬 때 삶 전체도 자유와 기쁨으로 빛나게 된다. 일상은 거룩해지고 분리는 사라진다. 이 우주적 공공성에 근거한 섬김과 자기희생의 삶의 방식이 간디의 아힘사 즉 비폭력이다.

불교의 밥을 뜻하는 공양이란 단어에는 섬김과 희생의 삶, 상호공생이란 만물의 존재원리 뿐 아니라 맑은 음식과 그 음식 속의 수많은 인연에 대한 감사, 낭비 없는 식사 그리고 모든 존재를 향한 연민까지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모든 가치가 오롯이 담겨있다. 부디 공양 잘 드시고 공양에 합당한 삶 사시길! 모든 존재여, 가피 받으소서! 평화롭고 행복하소서!

고용석 한국채식문화원 공동대표 directcontact@hanmail.net

 

[1518 / 2019년 12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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