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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루촨의 ‘커커시리(可可西里)’

티베트 양과 산악순찰대가 보여주는 윤회의 고리

티베트의 대평원 ‘커커시리’에서
양 지키는 이들의 의로운 삶 다뤄
전문사냥꾼에 의한 살육 현장서
인간·양 동일시한 불교관 드러내

영화 ‘커커시리’는 대평원에서 티베트 양들을 전문사냥꾼으로부터 지키려는 산악순찰대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사진은 영화 스틸컷.

중국 감독인 루촨의 ‘커커시리(可可西里)’(2004)는 밀렵꾼으로부터 티베트의 양을 지키는 민간 산악순찰대원의 활동과 희생을 담은 영화다. 이 작품은 사실적인 기사를 토대로 다큐멘터리적 사실성을 살렸다. ‘커커시리’는 티베트의 대평원이며 이곳에서 서식하던 100만 마리의 티베트양이 1만 마리로 줄어든 상황에서 티베트양을 지키기 위한 산악순찰대원의 의기로운 활동을 담아낸 영화지만 동시에 티베트양과 인간은 모두 귀한 생명이며 양과 인간 또한 형제라는 불교적 윤회관이 배어있다. 첫 장면에서 산악순찰대원이 밀엽꾼들에게 끌려간다. 밀렵꾼들은 커커시리를 평화롭게 활보하고 있는 티베트 양떼들을 향해 총을 발사하고 양들은 초원에 하나 둘 쓰려져간다. 사냥꾼은 쓰러진 양을 향해 가까이서 총격을 가하고 억류한 순찰대원을 유사한 자세로 사살한다. 쓰러진 양과 순찰대원은 총을 맞고 쓰러진 유사한 모습이 몽타주되어 동일시된다. 이 장면은 산악순찰대 대장인 일태의 죽음을 예시하는 장면이면서 인간과 양은 윤희의 순환 궤도에서 한 가족이라는 일체감도 부각시킨다.  

‘커커시리’는 티베트어로 ‘아름다운 강산과 아름다운 소녀’를 의미한다. 이 아름다운 곳이 양의 모피를 구하기 위해 몰려든 기업화된 전문 사냥꾼들에 의해 살육의 현장으로 변모된다. 커커시리는 아름다운 풍경 아래 밀렵하려는 기업가와 양을 보호하려는 민간 산악대원간의 목숨을 건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이다. 

루촨은 해발 4700미터의 고산지대에서 4개월 간 촬영하였으며 그곳의 현지인을 출연시켜 장족의 언어로 녹음하여 다큐멘터리적 사실성을 가미하였다. 주인공인 기자의 시선과 카메라의 시선 등 객관적 거리에서 커커시리의 밀렵과 이를 저지하려는 산악순찰대의 활동을 극영화의 추적 서사로 담아냈다. 일태와 산악순찰대는 정부의 지원없이 돈과 사람 그리고 총 등 모든 것을 자체 조달하면서 커커시리를 지켜나간다. 그는 사냥꾼인 마길림과 그의 가족을 체포하지만 방면한다. 마길림은 그의 가족들과 도보로 죽음의 장소를 탈출하려고 대장정에 나선다. 산악순찰대원도 죽음의 함정이 도사린 커커시리에서 밀렵꾼의 우두머리를 찾는 여정에 오른다. 

마길림 가족의 탈출이 한 축을 이루고 다른 한 축은 산악순찰대원이 밀렵군의 우두머리 사장을 찾아서 처단하려는 행보가 교차된다. 그들은 생사를 넘나들면서 길을 가고 결국 일태 일행은 밀렵꾼들에게 포위된다. 밀렵꾼의 우두머리인 사장은 일태에게 차와 집을 제공하겠다는 회유를 하지만 일태는 거부의 몸짓으로 그를 향해 주먹을 날린다. 일태는 밀렵꾼의 총에 커커시리의 양처럼 죽음을 맞게 된다. 
 

사진은 영화 스틸컷.

영화 ‘커커시리’는 국가 공권력의 공백으로 인한 티베트양의 희생을 민간 순찰대가 저지하다 실패하는 희생의 서사다. 마지막 자막으로 산악순찰대의 커커시리를 지키려는 영웅적 노력이 부각되고 현재는 커커시리가 국가의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국가 보호아래 티베트양들의 개체수가 많이 증가했다는 사실을 명시해준다. 민간순찰대원의 희생과 국가의 커커시리 보호정책은 티베트양을 지켜낸 국가 역할에 대한 우회적 지지이다. 국가정책에 대한 우호적 홍보와 우회적 찬양이라는 주선율(애국주의) 영화의 이데올로기가 마지막 자막에 드러난다. 

은연중에 스며든 주선율의 이데올로기처럼 이 영화의 이면에 불교적 세계관이 다양하게 스며들어있다. 첫 시퀀스에서 스님들이 장례식을 집전하고 독수리가 날아와서 시체를 먹으려는 조장의 풍습을 보여준다. 장례식에서 스님의 독경과 인서트로 클로즈업된 마니차가 돌아가는 장면은 티베트불교의 의식으로 보인다. 마니차는 문맹의 불교신도를 위해 손으로 한번 돌리면 경전을 한번 읽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지닌다고 한다. 문맹의 불교신도를 위해 오색 깃발에 경전의 내용을 기록하여 바람에 나부기면 경전을 읽는 것과 동일한 공덕으로 인정하는 타르쵸와 손으로 한번 돌리면 경전을 한번 읽는 효과를 보여주는 마니차는 티베트불교의 중생을 위한 배려가 엿보인다. 

사진은 영화 스틸컷.

‘커커시리’에서 두 번의 장례식을 통해 불교 의식이 거행되었다면 티베트양과 산악순찰대원 그리고 산악대장 일태의 죽음이 부여하는 일체감에 대해 주목할 만하다. 티베트양과 희생양이 된 일태가 쓰러진 모습의 동일시는 인간과 티베트양이 윤회의 순환 고리에 동행한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스스로 네팔에서 수행을 경험한 신화학자이자 불교학자인 나카자와 신이치는 ‘대칭성의 인류학’에서 네팔의 수행 일화를 전한다. 그는 새벽 네 시쯤 스승이 잠을 깨워 동급생인 스님들과 어둠이 아직 걷히지 않는 시장으로 걸어갔다. 그가 당도한 곳은 염소 한 마리를 도살하는 정육점 옆 오두막이었다. 고깃간 주인은 칼로 염소의 목을 치고 스님들은 ‘옴마니반메홈’이라는 진언을 외우면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새벽의 기이한 의식을 치르고 돌아온 나카자와 신이치는 도반 스님에게 이곳에 단체로 찾아간 연유를 묻자 스님은 불교 자비에 대한 명상을 위한 수행이라고 답했다. 그에 따르면 마음이 있는 존재는 유정(有情)이며 유정의 마음은 다시 태어나 마음의 연속체를 이루어 생명윤회의 거대한 순환을 한다. 이와 같은 윤회의 순환 고리로 살펴보면 새벽에 고깃간 앞에서 도살된 염소는 예전에 자신의 어머니였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 염소는 곧 그들의 어머니일 수 있다. 이와 같은 이치에서 바라볼 때 “세상의 모든 생물들은 네 어머니이자 아버지이며 형제이자 자매였던 것”이다. 티베트양은 예전에 밀렵꾼들의 어머니일 수 있으며 산악순찰대원들의 형제였을 것이다. 일태와 산악순찰대원은 전생에 자신들의 형제이자 부모였을 티베트양을 지키는 것이다. 일태는 언젠가는 티베트양의 무리로 다시 태어나서 커커시리를 거닐 수도 있을 것이다. 일태의 희생은 티베트의 커커시리에 태어날 수 많은 양들의 안전한 터전을 만들어낼 것이다.

문학산 영화평론가·부산대 교수

 

[1518 / 2019년 12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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