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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겹 천막 속에서 오롯이 나를 마주하다

김형규 법보신문 대표, 위례 상월선원 천막결사 체험기

혹독한 추위와 공사장 소음은 지금껏 경험 못한 악조건 환경
공사장의 소음 속에 들려오는 법문·독경과 불자들 격려 위안
불편 속에서 내가 누린 편리함 참회하며 돌아보는 계기 감사
아홉 스님들의 천막결사 정신 한국불교 일깨우는 죽비 되길

상월선원 체험관에서 좌선을 하고있다.

기한(飢寒)에 발도심(飢寒發道心)이다. 굶주리고 추울 때라야 도를 닦고자하는 마음이 강렬해지는 법이다. 위례 상월선원 천막결사가 그렇다. 지난해 11월11일, 동안거 결제를 맞아 조계종 총무원장을 역임한 자승 스님을 비롯해 아홉 스님들이 황량한 벌판에 천막을 치고 3개월 안거에 들었다. 조계종 행정수반인 총무원장으로 8년간 분초를 쪼개며 바삐 살았던 자승 스님이 소임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눈 쌓인 백담사 무문관(無門關)에 들었을 때, 반신반의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3평 남짓 닫힌 공간에서 3개월을 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8년을 누구보다 바삐 살았던 스님이었다. 그러나 해제 뒤 만난 스님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20kg넘게 빠진 몸은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홀쭉해져 있었고, 깊게 들어간 눈에서는 성성한 빛이 났다.

갇힌 공간에서 생기는 탐욕은 오로지 식탐으로 발현된다. 스님은 그 욕망의 실체를 보고 철저하게 음식을 줄이는 것으로 탐욕을 제어했다. 몸을 비우는 것으로 현실적 욕망을 비워낸 것이다. 스님은 이렇게 내리 2번을 백담사에서 보낸 뒤 이제는 다른 여덟 스님들과 황량한 벌판에 천막을 치고 극한(極寒)의 수행결사에 들어갔다. ‘고불문’에서 다짐했던 것처럼 하루 한 끼 공양에, 양치만을 허용하고, 한 벌의 옷을 입고 묵언한 채 하루 14시간을 정진하고 있다. 목숨을 위협하는 추위에도 난방을 거부했다. 따뜻한 옷과 잠자리와 쌓아온 명성을 뒤로 한 채 스스로를 천막에 가두고, 추위와 굶주림을 벗 삼아 용맹정진하고 있다.

체험에 앞서 서약서를 작성하고 있다.

12월22일 상월선원으로 향했다. 50일이 다 되가는 스님들의 용맹정진을 체험하기 위해서였다. 체험관은 스님들의 공간 옆에 나란히 마련돼 있었다. 법당에서 108배를 하고, 핸드폰을 반납하는 것으로 수행은 시작됐다. 온기 없는 천막에 좌복과 텐트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묵언명패를 목에 거는 순간 밖에서 열쇠가 잠겼다. 순간 싸한 기운이 몸 속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자유를 잃어버린 답답함이었는지, 세상과 단절된 고독감이었는지 알 길은 없다. 하루 14시간의 수행정진은 잠시의 쉴 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루 두 번, 1시간씩 주어지는 울력 시간과 1시간의 공양시간, 그리고 예불 시간과 4시간의 취침 시간을 빼면 대부분의 시간은 참선이었다.

좌복 위에서의 시간은 어렵고 더뎠다. 처음엔 마음을 제어하기기 힘들었다. 몸은 좌복 위였지만, 생각은 산더미 같은 일들을 헤집느라 정신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자 이제는 육체에 고통이 심해졌다. 발은 수시로 저리고, 무릎은 아프고 허리는 서걱거렸다. 그러자 생각은 절로 비워졌다. 온통 아픔에만 마음이 미쳤다. 특히 서너 달 전부터 아파오던 어깨의 통증이 조금씩 심해졌다. 아파오는 통증을 견디다 어느 순간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반성이 절로 일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참회의 마음이 일었다. 아픔의 전조들은 그동안 많았다. 그런데도 이를 방치했다. 그리고 이제 어깨가 악을 쓰고서야 그 아픔을 돌아보게 됐다. 어깨를 어루만졌다. 미안하다고 속으로 되뇌였다. 앞으로는 잘 살피겠다고 그러니 화를 풀라고.

체험에 앞서 핸드폰을 반납하고 있다.

상월선원에 어둠은 일찍 내렸다. 해가 떠나버린 천막엔 어둠과 추위가 내려앉았다. 비교적 날씨가 따뜻하고 화사해 좋은 날이라는 덕담을 들었지만 한기는 뼈 속까지 찾아들었다. 추위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던 터라 내복에 두꺼운 패딩과 바지, 스키장갑까지 준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아마도 쌓이고 쌓인 한기가 더해진 것이 아닌가 짐작될 뿐이었다. 추위에 겨우겨우 견디다 잠자리에 들었다. 좁은 텐트 안에 침낭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딱히 잠이 든 기억은 없다. 그냥 비몽사몽이었다.

새벽 도량석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침 예불을 모신 후 다시 좌복에 앉았다. 그러자 아침부터 주변에서 돌 깨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천막의 바닥도 돌 깨는 소리에 함께 울리기 시작했다. 굴착기 소리에 쇠 가는 소리,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온갖 소음에 이곳이 바로 위례 신도시 아파트 공사장 한복판임이 실감났다.

1박2일 수행정진을 마치고 상월선월을 나서고 있다.

공사장 소음이 심해질 때면 ‘금강경’ 독송이 울리고, 전강 스님의 법문이 시작됐다. 또 상월선원을 찾은 불자들의 격려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집중하다보면 소음은 가라앉고 마음은 절로 편안해졌다. 천막 안과 밖으로 공간은 다르지만 불자라는 하나의 거대한 인연의 한복판에 내가 있음이 감사했다. ‘금강경’의 경구 하나하나가 새록새록 가슴에 와 닿고 불자들의 격려가 마치 나를 향해 있는 것 같았다.

아침 10시, 마침내 문이 열리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1박2일에 불과한 짧은 체험이었다. 그럼에도 작은 깨우침이 있었다. 매너리즘에 빠진 나를 돌아보게 됐고, 불편함 속에서 내가 누린 편안함을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극한의 수행을 통해 아홉 스님들이 일으켜 세우고자 하는 한국불교의 미래에 골몰하게 됐다. 수행력이 남다른 스님들이라지만, 배고픔과 극한의 추위, 공사현장의 엄청난 소음, 그리고 갇혀 있음의 답답함과 공포는 해제 때까지 직시해야할 큰 장애들이었다. 그래서 걱정과 우려가 크다. 해제 때까지 무탈하게 회향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리고 스님들의 천막결사 정진이, 희미해져버린 한국불교의 수행정신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길 기원해 본다.

부처님께서는 중도를 말씀하셨는데 왜 굳이 이렇게까지 고행을 하느냐며 타박하는 사람들을 간혹 보게 된다. 그래서 그들에게 황벽 스님의 시를 들려주고 싶다.
번뇌에서 벗어나는 일이 예삿일이 아니니(塵勞逈脫事非常)/승두를 단단히 잡고 한바탕 공부할지어다(緊把繩頭做一場).
추위가 한 번 뼈에 사무치지 않고서야(不是一飜寒徹骨)/ 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향기 얻을 수 있으리오(爭得梅花撲鼻香).
2월7일 상월선원 천막의 문이 열린다. 아홉 스님들을 진한 매화향기로 다시 뵐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김형규 법보신문 대표 kimh@beopbo.com

[1519호 / 2020년 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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