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 연재를 시작하며

기자명 정원 스님

계학 기반 없이는 어떤 수행법도 견고할 수 없어

율장은 승려 자격 상세히 다뤄
개인 수행·윤리적 삶으로 인도
전체 화합·청정유지 위한 장치
‘지계’로 선종 가풍 되살아나길

부처님께서 성도한 후 제자들이 모이고 승단이 커지자 많은 문제들이 발생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 율장은 출가사문이 갖춰야 할 내외적 자격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개인의 수행과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의 모습 및 전체의 화합과 청정을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들이 모두 들어있다.

율장에 근거해 살면 개인과 승단이 번뇌를 줄이고 청정을 유지해 생사해탈이라는 불교수행 본래의 목적을 조금 쉽게 달성할 수 있다. 아울러 사람들이 더 나은 방향으로 주체적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혜를 나눌 수 있다. 불교에서 생사해탈의 목적을 달성하는 유일한 길은 계정혜 삼학이다. 진정한 수행자에게 삼학은 분리되어 있지 않고 함께 작동하지만, 초학자에게는 차제가 중요하다. 수행의 긴 여정에서 계학의 튼튼한 기반 없이는 어떤 수행법도 견고할 수 없다. 계학의 바탕이 없는 선정과 지혜는 사견에 빠지기 쉽고 해탈열반의 길에서도 멀어지게 된다.

중국에서는 간화선 수행의 명맥이 실질적으로 끊겼지만 우리불교는 선종 위주의 수행전통을 지켜왔다. 화두를 통해 스승과 제자가 법을 다루는 노하우를 현장에서 축적한 실참 위주 수행가풍은 세계 불교의 관점에서 보면 너무나 귀한 자산이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신업과 구업을 위주로 다루는 율장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는 점이다. 선종의 출발선에는 율장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선원청규를 만든 선사들의 다각적 노력이 있었으나 후대에 이르러 선원청규가 율장의 정신을 최대한 지키고자 노력한 산고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이 희미해졌다. 또한 청규에 의한 생활이 보편적 일상이 되어버린 후로는 굳이 율장의 정신이나 의의를 탐구할 필요성도 없어져버렸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오면서 모호해진 상태로 지계정신이 쇠약해진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은 율원에 가서 공부하지 않는 한 율장을 펼쳐 볼 기회가 거의 없다. 드물게 혼자서 율장을 보는 경우도 있겠지만 스승의 가르침 없이 지계청정의 의미를 확실하게 이해하기 어렵고,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가능성은 낮다. 율원에서 공부해도 2년 동안 율장 속의 다양한 가르침과 수행주제들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체화도 쉽지 않다. 게다가 실천을 생명으로 하는 율장은 생활에서 적용되지 않는다면 현실과 이상의 괴리만 깊어져 고뇌를 일으키기도 한다.

‘한비자’에 이르기를, 제나라 왕이 화공에게 세상에서 제일 그리기 어려운 것은 무엇이냐고 묻자 화공은 개나 말을 그리기가 가장 어려운데 사람들이 누구나 모습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어떤 것을 그리기가 가장 쉬운가라고 다시 물으니, 귀신이나 도깨비를 그리기가 제일 쉬운데 눈앞에 보이지 않는 존재라서 누구도 시비를 따질 수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도선율사가 말했듯 무상의 도리처럼 실체가 없는 것은 소리와 형상으로 드러내기 쉽고, 율의처럼 실체가 있는 일은 결백과 시비가 곧바로 드러나므로 말하기도 처리하기도 어렵다.

교학과 수행 모두 부족한 초학자가 율장이야기를 하려니 조심스럽고 스스로의 행을 돌아보면 더욱 참괴심이 생긴다. 그런데도 용기를 낸 것은 초학자들의 정견확립과 수행에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과 스스로에 대한 경책 목적 때문이다. 많이 부족하지만 계율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눔으로써 ‘지계’라는 기초의 허약성을 극복하여 수행목적을 성취하는 수행자가 많아지고 귀중한 선종의 수행가풍이 살아나길 발원한다. 앞으로 쓸 글들은 율장연구와 실천 및 후학양성에 열정을 바친 스승들로부터 익힌 것들이다. 혹여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필자의 수행과 공부가 부족한 탓이니 너그럽게 봐주시고 아낌없는 질정을 부탁드린다.

봉녕사 금강율학승가대학원 연구원

shamar@hanmail.net

 

[1519호 / 2020년 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