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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만 불광산 ‘인간음연’

각국 뮤지션 참가해 불교로 하나 되는 세계불교음악축제

‘점등’ 작곡 인연으로 불광산 방문
매년 개최되는 ‘불교음악경연대회’
8월 중 5일간 매일 15~20팀 경연
국부기념관 채우는 신도들 놀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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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 일상 늘 함께하는 범패 선율
삼천배 할 때도 신나는 율조 함께
대중음악 콘텐츠도 끊임없이 생성
상업성 경계하며 불교음악 다양화

불광산사 수륙법회 회향의식.

초등학생 시절 1학년이 다 가도록 나의 이름 석 자를 간신히 썼던 필자에게 중학교 진학은 ‘영어’라는 남의 나라 말을 배워야하는 악몽의 시작이었다. 수학과 과학이 체질이라 음대에 진학하고도 공대 강의와 물리실험을 청강하면서 필수과목을 빼먹곤 했다. 학점이 바닥을 치는데도 F학점만 안 나오면 된다고 버텼는데, 대학원 진학에서 또 영어가 발목을 잡았다. 그리해 생각해낸 것이 ‘인도여행의 꿈’이었다.

“기왕 하는 거, 여행도 하고 공부도 하자”

인도여행의 꿈을 안고 10분이 여삼추(如三秋) 같던 영어공부를 하니 종일해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인도 불교음악으로 논문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막상 공부를 해보니 인도에는 불교가 없었다. 인도 때문에 지긋지긋한 영어를 배웠는데 포기할 수도 없었다. 고심 끝에 한국에서 중국을 거쳐 인도까지 불교음악의 역주행을 시작하였다. 지금이야 중국을 자유로이 오가지만 예전의 공산국가는 철의 장막이었다. 마침 그 무렵 중국과 수교가 시작된 덕으로 북경을 갔는데, 그들의 음악은 죄다 혁명가조여서 순수 민요라고 여길만한 노래가 없었다. 더욱이 사찰은 건물만 남아 있었다. 인도에는 불교가 없고, 중국에는 전통의식이 없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정율 스님이 작곡을 부탁해 왔다. 대만의 어떤 스님이 지은 가사에 곡을 좀 써달라고 하여 ‘점등(點燈)’이라는 곡을 써드렸다. 그런데 얼마 후 대만에서 ‘점등’과 관련한 방문 요청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가게 된 것이 대만 불광산에서 개최하는 세계적인 불교음악경연대회 ‘인간음연(人間音緣)’이었다. 인간음연에는 하루 15~20개 팀이 공연했다. 미국, 호주, 캐나다, 티베트, 미얀마, 말레이시아 등 온 세계에서 온갖 장르의 뮤지션이 모여들었다. 그중에는 아메리칸 인디언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공연을 5일 동안 하니 참여 팀 수만 거의 100개에 가까웠다.

알고 보니 그해 내가 작곡한 ‘점등’은 정율 스님을 초대하기 위한 곡이었고, 정율 스님의 성음에 감동한 성운대사의 요청으로 마지막 날 한 번 더 부르기도 하였다. 당시 공연을 생각해 보면, 온 세계 뮤지션들의 음악스타일 또한 천편만화여서 요즈음 홍콩에서 하는 마마공연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에 의한 다양한 음악들이 연주되었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으니, 성운대사의 가사에 곡을 붙이는 것이었다. 그 가사는 중국어와 자국어, 두 버전으로 노래하니 인간음연은 결국 성운대사의 가사를 지구촌 모든 민족의 언어와 율조로 부르는 열린음악회였다.

2003 ‘인간음연’ 화보집.
2003~2004년도 ‘인간음연’ 악보와 음원 자료집.

지난 가을, 필자는 ‘문명과 음악’이라는 서적을 출간하였다. 이 책에서 필자는 우주의 발생이 진동의 시작이고, 인류의 진화가 곧 음악의 발전이었던 ‘뮤직 사피엔스’의 세계를 지구촌 문화와 인류학적 시각으로 풀어내었다. 뮤직사피엔스 중에 사브다비드야(Śabdavidya 聲明)를 발전시킨 고대 인도인들이 가장 심오하였고, 그 전통을 이어 받은 것이 불교음악이었다. 불광산에서는 ‘인간음연’을 ‘Sound of Human World’로 표기하는데, 이러한 표현에서 그들이 생각하는 음악의 세계도 ‘뮤직 사피엔스’와 같이 근원적이고 광대한 영역임을 알 수 있다.

막대한 인력과 재원이 소요되는 인간음연의 근저에는 포교 방식의 다원화를 추구해온 성운대사의 ‘인간불교 이념’이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한국전쟁 전후시기에 ‘의란(宜蘭)염불회불교청년합창단’ ‘불교가집’ ‘불교성가’ 시리즈를 제작하였고, 불교 매스미디어 개설, 포교음악회 개최, TV포교 프로그램 보급, 불교 위성전용 채널을 만들어 낸 것이다. 1949~1987년 계엄시기에 보수 세력이 종교권력까지 장악하고 있던 50년대 대만의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해보면, 성운대사가 이룬 업적은 그야말로 초인적인 안목과 추진력이었다. 필자가 만났을 때, 이웃집 할아버지 같았던 성운대사의 성품을 생각해 보면, 이러한 일들도 순순하고 여여히 진행되었으리라.

몇년 후 동국대 제자들을 인솔해 인간음연에 참가하였고, 한국에서 온 다른 몇 팀도 만났다. 마지막 날 우리팀은 수상을 하였고, 상금도 받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상을 받지 않은 팀이 없었고, 상금을 받은 뮤지션들은 상금의 일부를 보시하는 훈훈함이 연출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음연은 불교음악 축제이지 불교음악 경연대회가 아니었다. 닷새간의 타이페이 국부기념관은 불교음악으로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다. 세계 각처에서 온 수백명의 뮤지션도 놀랍지만 그 큰 객석을 매일 빽빽이 채우는 불광산 신도들은 더욱 놀라웠다.

그나저나 불광산은 온 세계로부터 어떻게 이토록 다양하고 많은 뮤지션들을 매년 불러들일 수 있을까? 공연은 대개 8월 중 행해지므로 방학을 맞은 학생들이 참가할 수 있었다. 참가자들의 면모를 보면, 국적은 미국이나 캐나다여도 이름은 중국의 이름인 경우가 더러 있었으니, 그 만큼 화교 인구가 많았다. 전 세계에는 불광산 지부 사찰이 있는데, 각 지부에 파견된 승려들과 현지인, 화교의 삼각 커뮤니케이션이 국제불광회를 통하여 탄탄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불광산 승려들로 구성된 범음찬송단과 신도들의 다양한 음악인구가 뒷받침되고 있었다.

2007년 촬영한 불광산사 손님맞이 연주회.
가오슝 불광산사 박물관에 전시된 불광산 음악 자료들.

필자는 성운대사와 불광산 창립 원로스님들을 만나 음악에 대해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대사는 범패찬송단이며 악단을 직접 창단하여 추진하였음을 일러 주셨고, 원로 승려들이 모두 범패의 대가들이었다. “이러한 자료들이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으니 연구해 보라”며 적극적인 도움을 주셨다. 그렇게 불광산사에 머물고 있던 어느날, 불학원장 스님의 권유로 수학여행에 동행하게 되었다. 버스를 타고 대만 일주를 하는데 가는 곳마다 학생들을 맞이하는 환영식이 열렸다. 그럴 때면 불학원장이 학생(대부분 출가자들이지만 승려가 되지 않는 학생들도 있음)들을 소개하는데 “캐나다”하면 몇 명이 일어서고, “프랑스”하면 몇 명이 일어서고, 마지막에 “코리아”하면 내가 일어섰다. 그렇게 소개되는 나라가 10곳이 넘었다.

가는 곳마다 각 지부의 사찰이 있고, 각 사찰은 수십명의 인원이 숙박할 수 있는 호텔과 같은 시설이 있었다. 2인1실로 방 배정이 되었는데, 나는 뉴욕에서 온 영어교수님과 룸메이트가 되었다. 불학원 승려들 중에는 중국어를 못하는 사람이 제법 있는데다 외국인 출가자도 다수여서, 강의는 중국어반과 영어반의 2원 시스템으로 운영되었다. 불광산의 수륙법회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사절들의 공양행렬이 있고, 성운대사님의 생신행사에서도 각 국의 사절단을 차례로 호명하는 순서가 필수이다. 이렇듯 대만 사람들에게는 세계의 사절을 맞이하던 중화의 DNA가 있어 뭐든 했다하면 글로벌시스템이었다.

가끔은 일반 신도들의 초대로 민가에서 숙식을 하는 일이 더러 있었다. 그들은 아침밥을 지으며 음반을 틀어 놓는데, 승려와 신도들이 함께 부르는 범패 선율이 명상음악으로 적격이었다. 운전을 하면서 염불과 예불 음악을 듣고, 주머니에는 염불기계가 있었다. 스마트폰이 없던 그 시절, 한국의 삐삐만한 염불기기가 어딜 가나 있었다. 우리나라는 삼천배를 하면 극기 훈련하듯 하지만 대만에서는 여러 가지 법기와 함께 북을 두드리며 신명나는 율조로 부처님 명호를 부르면서 주거니 받거니 절을 하였다. 조석예불은 향찬 범패로 시작하고, 기도문과 경구는 법기 리듬에 맞추어 율조를 넣어 송경하고, 마지막의 삼귀의와 산회가를 노래하며 마쳤다. 그러므로 이들의 신행 일상은 음률로 시작해서 음률로 마쳐지는데 정작 그들은 자신들이 음률을 타는지 모르고 있었다.

이렇듯 신행의 윤활유와 같은 무위의 율조들이 있는가하면 예술음악이나 대중음악적 콘텐츠도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비교적 이른 시기의 작품으로 쉬창후이(許常惠 1929~2001)의 ‘장화음(葬花吟 1962)’ 랴오니엔푸(廖年賦 1922~?)의 교향곡 ‘법우고운(法雨鼓韻 2002)’, 치엔난짱(錢南章 1948~)의 ‘불교안혼곡(佛敎安魂曲 2002)’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이외에도 주류, 비주류 음악 생산은 대만을 벗어나 중국 대륙과 온 세계에 불교음악을 공급하고 있다. 이러한 음악들의 원천은 불광산, 법고산, 중대산, 자제공덕회와 같은 거대 총림을 비롯해 자광산(慈光山), 영취산 불교교당, 국민당 이전 승가에 의한 음악 등 간단히 설명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

수륙법회 회향의식에 참가한 각국의 사절들.

인터넷 정보망이 좋으니 대만의 불교음악에 대한 주요 검색어를 가나다순으로 간추려 보자. ‘법고합창단(法鼓合唱團)’ ‘보음문화간개(普音文化簡介)’ ‘불광산 의란염불회불교청년가영대(佛光山 宜蘭念佛會佛敎靑年歌詠隊)’ ‘불광산인간음연범악단(佛光山人間音緣梵樂團)’ ‘성운대사생평간개(星雲大師生平簡介)’ ‘아주창편․체청문화(亞洲唱片․諦廳文化)’ ‘여시아문창편공사(如是我聞唱片公司)’ ‘영취산불교교단(靈鷲山佛敎敎團)’ ‘오거철생평(吳居徹生平)’ ‘오거철(吳居徹)’ ‘왕정평생평(王正平生平)’ ‘이중화생평(李中和生平)’ ‘인순문교기금회(印順文敎基金會)’ ‘자광산자신강(慈光山資訊綱)’ ‘자제전구자신강(慈濟全球資訊綱)’ ‘중국불교회(中國佛敎會)’ ‘증엄법사생평(證嚴法師生平)’ ‘자제가선(慈濟歌選)’ ‘전곡장연혁(全曲奘沿革)’ ‘풍조유성출판유한공사(風潮有聲出版有限公司)’ 등 이외에도 부지기수이다.

풍요로운 대만 불교음악이지만 그들은 창작과 청중의 수용, 공감의 미래를 염려하며, 상업적 메커니즘에 휘둘리지 않고 시류에 영합하지 않는 불교음악을 위한 자성적 비판과 함께 성장해가고 있다.

윤소희 음악인류학 박사·위덕대 연구교수 ysh3586@hanmail.net

 

[1519호 / 2020년 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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