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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 가는 길에 차비 내라니

기자명 이병두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장례식장이나 화장장에서 절차를 거칠 때마다 “차비 놓으라!”는 말이 계속 이어졌다. 유가족들은 이런 요구에 맞서 싸울 수도 없으니 그냥 하라는 대로 따라 하며 ‘제발 우리 아버지 어머니를 편하게 해드렸으면 고맙겠다’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이런 모습이 장례식장과 화장장에서는 이제 거의 다 사라진 ‘구습’이 되었다. 그런데 아직도 이런 일이 멈추지 않고 있는 곳이 있다. 그곳이 바로 전국의 사찰이다.

고인이 왕생극락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유가족들은 절에 위패를 모시고 사십구재를 지낸다. 그런데 어느 때인가부터 절에서 재를 지낼 때에 영가 앞에 잔을 올리고 절을 할 적마다 상 위에 돈을 놓는 풍습이 생겼다. 이렇게 생겨난 풍습이 관습이 되었고, 혹 이 관습을 따르지 않으면 따가운 눈초리를 감당하게 되었다.

심지어 재를 집전하는 스님 입에서 “노자 돈을 놓으라”는 말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나도 최근 형님 49재를 모시면서 이 관례를 따랐는데, 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 위패 등등을 태우는 자리에서 집전자 스님이 “노잣돈 놓으세요”라고 하는 말을 듣는 순간 당황스러웠다. 그러면서 ‘어린아이들이나 이웃종교인이 없어서, 이런 장면을 안 보아서 다행이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후로는 마음이 무거워져서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절에 가서 재를 지내드려야 좋다”고 권유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리고 ‘이게 개인 문제가 아니겠다’는 생각에 형님 사십구재를 모시며 겪은 사건을 페이스 북에 올렸다.

“나처럼 어머님 뱃속에서부터 절에 다닌 사람들도 불편을 느낄 때가 자주 생긴다. 특히 재를 지낼 때에 ‘망자를 위해 노자 돈을 놓으라’는 말을 집전하는 스님이 할 적에는 할 말을 잃게 된다. 절에 오래 다닌 사람들이야 여러 사정을 이해하니까 미리 준비를 하고 가지만, 지장전 안에서 잔을 올리고 절을 할 적마다 돈을 놓았는데도 마지막 위패 태우는 자리에서 또 ‘노자 돈 놓으라’는 말을 듣는 순간 자리를 떠나고 싶은 생각까지 들 때도 있다. 일생을 절에 다닌 나도 이러니, 절에 열심히 다니지는 않았지만 떠나가신 부모님을 위한 순수한 마음에 절에 가서 재를 모시려고 했던 이들은 얼마나 놀라고 실망할까. 아마 ‘다시는 절에 가기 싫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이 글을 올리자 여러 사람이 그 동안 차마 말을 못하고 있던 답답한 심정을 댓글로 올렸다. “아버님 49재 지내러 가서 세 번까지는 ‘돈 놓으라’는 말을 이해하고 넘어갔는데, 네 번째 같은 말을 듣는 순간 ‘다시는 절에 오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를 비롯해 자신들이 겪은 당황스런 경험을 솔직하게 전하는 내용이었다.

몇 해 전 인구통계조사 발표에서 불교 인구가 수백만 감소하고 최대종교의 자리를 내준 뒤 그 책임을 모두 조계종 총무원 책임으로만 돌리는 이들이 많았지만, 이게 맞는 진단일까. 곳곳의 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볼썽사나운 행태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서 새로운 신도의 진입을 막고 신도들을 멀어지게 하며, 젊은이들과 아이들이 절을 가까이 하고 싶은 생각을 아예 막아버리는 이런 분위기가 훨씬 더 큰 책임이 있지 않을까.

앞으로 절에서 재를 지낼 때에 영가 앞에서 절을 하거나 위패를 태우면서 ‘노자’라는 명분으로 돈을 놓는 일이 사라지길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종단이 아무리 애를 써서 포교대책을 세우고 예산을 증액한다고 해도 그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런 일은 결코 이제까지 믿음이 없던 사람이 새롭게 불법을 믿게 하거나, 이제까지 믿어오던 사람의 믿음을 더욱 깊게 하지 못하오. 그런 행동은 오히려 이제까지 믿음이 없던 사람이 불법에서 더욱 더 멀어지게 하거나, 이제까지 믿어오던 사람의 믿음을 잃게 할 수 있소.”(‘마하박가; 律藏 大品’)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520호 / 2020년 1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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