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자년 실험실의 하얀 쥐
경자년 실험실의 하얀 쥐
  • 심원 스님
  • 승인 2020.01.20 10:09
  • 호수 1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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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은 경자년으로 ‘흰색 쥐띠 해’라고 한다. 쥐는 인간과 더불어 가장 널리 분포하는 포유동물의 하나로, 세계 거의 모든 지역에 서식하며 개체 수는 인간보다도 훨씬 많은 8000억 마리에 달한다고 추정한다. 우리 동양 문화권에서 쥐는 전통적으로 풍요와 다산, 부지런함을 상징하는 동물이며, 길흉화복을 알려주는 예지력을 가진 영물로 믿어왔다.

그러나 근래 생명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쥐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인간과 함께 하고 있다. 실험실에서 인간 수명 백세가 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2019년 6월27일 농림축산부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2018년 한 해 동안 실험용으로 쓰인 동물은 372만 마리가 넘었으며 이 가운데 84%가량이 쥐를 포함한 설치류라고 한다. 이처럼 쥐를 의학 실험에 많이 활용하는 이유는 포유류 척추동물이면서 관리가 쉬워 실험하기에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고, 면역체계가 사람과 비슷하며, 99% 정도의 높은 유전적 유사성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실험용 쥐는 의학 기술에 활용되기도 하지만 유전자 연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유전학계의 최첨단에 서있는 유전자 편집기술은 징크핑거(Zinc Finger)와 탈렌(TALEN)을 거쳐, 2012년에 보다 정교해진 3세대 유전자가위 ‘크리스퍼(CRISPR-Cas9)’의 탄생으로 혁신의 시대를 열었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는 교정하고자 하는 특정 DNA를 찾아내는 RNA와 DNA를 잘라내는 효소인 Cas9를 결합하여 만든 것이다. 이를 활용하면 기존의 유전자를 편집해서 원하는 형질의 새로운 생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 크리스퍼 유전자가위가 가장 먼저 적용된 실험동물이 쥐였다. 2013년 12월에 쥐의 수정란에 유전자를 삽입해 새로운 형질의 쥐를 만들어 내는 실험이 진행된 것이다. 이어서 CRISPR–Cas9 시스템의 단점(off-target)을 해결할 수 있는 프라임 편집 기술이 개발될 때도 쥐 세포를 이용하여 175번 이상 편집을 수행했다. 또 2018년에는 크리스퍼 유전자가위가 세포 안에서 작동할 때 유전체 염기서열의 결실, 삽입, 재배열과 같은 변이가 무작위적이고 대량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부작용을 밝혀낸 것도 쥐를 통해서이다. 이처럼 신약개발에서 임상적용, 유전자 편집에 이르기까지 쥐는 실험실에서 인류의 건강증진과 과학발전을 위해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말이고, 쥐의 입장에서는 인간의 끝없는 욕구 충족을 위한 희생물이 되어온 것이다. 실험용 쥐 중 ‘유전자 변형군’ 쥐는 털이 듬성듬성하거나, 귓불이 머릿속으로 들어가 있거나, 꼬리가 없는 등 기형적 모습으로 생산되고, 임상실험용 쥐는 암 덩어리를 주렁주렁 매달고 태어나거나 비대한 심장을 달고 태어나 죽음의 순간까지 끊임없는 통증에 시달린다. 인류의 복리증진이라는 미명 아래 진행되는 이러한 동물실험이 과연 필요악일까?

유럽을 중심으로 실험결과의 효율성과 동물윤리 문제를 둘러싸고 동물실험에 대한 비판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우리나라도 2008년 ‘실험동물에 관한 법률’과 2013년 ‘동물보호법’을 제정하여 실험기관마다 동물실험윤리위원회를 설치해 동물실험을 할 때는 ‘우선 동물 사용을 피하는 방법으로 대체하고, 그 다음 불가피하다면 사용하는 동물의 수를 줄이며, 마지막으로 고통을 최대한 완화하는 방법으로 실험해야 한다’는 원칙을 의무화 했다. 또 세계적으로 생물학, 컴퓨터과학, 기계공학 등 관련 분야에서 동물실험을 대체할 방법 연구가 진행돼 성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동물실험은 늘고 있는 추세다. 생명체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동물도 사람도 행복한 세상을 위한 실질적인 대안이 절실하다.

경자년 쥐띠 해에 실험실 ‘하얀 생쥐’의 절규에 우리 인간이 조금은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우리도 소중한 생명체입니다.”

심원 스님 중앙승가대 전 강사 chsimwon@daum.net

 

[1521호 / 2020년 1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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