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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으로 쌓아올린 탑에서 천년 숨결을 느끼다

  • 불서
  • 입력 2020.01.20 10:33
  • 호수 1521
  • 댓글 0

‘탑, 선 채로 천년을 살면 무엇이 보일까’ / 손묵광·이달균 지음 / 마음서재

‘탑, 선 채로 천년을 살면 무엇이 보일까’
‘탑, 선 채로 천년을 살면 무엇이 보일까’

“허위허위 설악 하고도 소청봉 올랐으니/ 암자만 보지 말고 석탑도 보고 가자/ 구름은 태산을 품고/ 산은 세상 품었는데// 옛일 다 잊었다 하나 왕조마저 잊었으랴/ 거룩한 부처님 진신사리 모신 곳에/ 풍진에 마모된 역사/ 고려 숨결 깃들다.”

소청봉 아래 해발 1244m 봉정암에 올라 오층석탑을 마주한 시인은 그 감흥을 시조로 남겼다. 그러나 시인이 남긴 시조나 간결한 해설보다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있다. 바로 사진이다. 사진작가 손묵광이 천년의 숨결이 느껴지는 그 모습을 렌즈에 담아내려 6시간 산행 끝에 마주할 수 있는 탑을 무려 여덟 번이나 찾으면서 만들어낸 걸작이다.

손묵광은 문화재로 지정된 200여 기의 탑 촬영을 위해 2년 간 전국에 산재한 탑을 찾아 5만㎞를 달렸다. 하나의 탑을 찍기 위해 서너 번 답사는 예사였고, 인적 없는 때를 기다리며 차 안에서 밤을 지새운 날도 적지 않았다. 돌의 질감을 깊이 있게 표현하기 위해 흑백으로 작업한 사진은 작가정신과 상상력이 더해져 지금껏 보기 힘들었던 경이로운 탑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한다.

이 책 ‘탑, 선 채로 천년을 살면 무엇이 보일까’는 그렇게 사진작가 손묵광과 시인 이달균이 손 맞잡고 각자의 방식으로 탑에 숨결을 불어넣은 결과물이다. 자연과 어우러진 가장 극적인 순간의 탑을 렌즈에 담았고, 탑에 얽힌 숱한 사연과 역사를 전통 시가인 시조로 노래한 책에서 한국적 미의 결정체이자 옛 선인들의 정성과 기원이 깃든 탑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다.

탑은 불교사상에 우리 정신문화와 한 시대의 문화예술까지 집약하고 있다. 또한 왕조의 흥망과 전쟁의 참상을 묵묵히 지켜보고, 풍찬노숙의 세월을 견디며 이 땅을 지켜온 역사의 증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진작가 손묵광은 “석탑은 민족의 역사이고 혼이며 종교와 예술의 소재로서 민족문화를 쌓아온 문화의 옹기다. 석탑을 통해 우리는 선조들의 감성과 예술혼을 느낄 수 있다”고 탑을 찬탄한다.
 

‘탑, 선 채로 천년을 살면 무엇이 보일까’는 옛사람들의 간절한 염원까지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품고 있다. 사진은 양양 낙산사 칠층석탑.
‘탑, 선 채로 천년을 살면 무엇이 보일까’는 옛사람들의 간절한 염원까지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품고 있다. 사진은 양양 낙산사 칠층석탑.

시인 이달균 역시 “내가 먼저 영혼을 불어넣지 않으면 탑은 돌로 쌓아 올린 옛사람의 흔적에 불과하다. 하지만 다가가 마음을 열면 탑도 스르르 문을 열어준다. 그때 우린 알 수 있다. 탑도 우리의 발자국을 기다리고 있으며 별이 깃들고 녹슨 바람이 쉬었다 간다는 것을. 한국의 석탑은 돌로 지은 것이 아니라, 정성과 기원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라며 탑에 깃든 옛 사람들의 마음을 끄집어내려 애썼다.

“미친 듯 불기둥이 천지를 덮쳐왔다/ 훌훌 잿더미를 홀로 걸어 나오며/ 죽음이/ 영생의 문임을/ 깨우쳐주었다”고 양양 낙산사 칠층석탑을 찬한 것처럼 이 탑들은 백제와 신라 때부터 고려, 조선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월의 풍파를 겪으면서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왔다.

그래서 사진작가와 시인이 만들어준 만남의 장에서 탑을 마주하고 있으면 그저 차가운 돌덩어리가 아니라, 영혼을 지닌 무념무상의 선승이 마음으로 마음을 전하는 듯한 느낌에 절로 숙연해지게 된다. 1만8000원.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521호 / 2020년 1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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