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제2칙 비단조계(非但曹溪)
3. 제2칙 비단조계(非但曹溪)
  • 김호귀 교수
  • 승인 2020.01.20 13:28
  • 호수 1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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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명직설 나누며 후계자 암시

스승 유언 따라 행사 찾은 선두
대화하며 제자임을 느낀 행사
은근슬쩍 칭찬 반 꾸중 반 평가

석두가 행사화상이 계신 곳을 참방하였다. 행사가 물었다. “어디에서 오는가.” 석두가 말했다. “조계에서 오는 길입니다.” 행사가 불자(拂子)를 치켜세우고 물었다. “조계에는 이런 것이 있던가.” 석두가 말했다. “비단 조계뿐만 아니라 서천에도 또한 없습니다.” 행사가 물었다. “그대는 서천에 가본 적이 없지 않은가.” 석두가 말했다. “제가 서천에 가보았다면 그곳에 불자가 있었을 것입니다.” 행사가 말했다. “가본 적도 없으면서 말은 잘도 둘러대는구나.” 석두가 말했다. “그래도 제 말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화상께서도 절반은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행사가 말했다. “그대한테 말해주는 것은 마다하지 않겠다만, 훗날 알아듣는 사람이 없을까 염려된다.”

석두희천(石頭希遷 700~790)은 광동성 단주(端州) 고요(高要) 출신으로 성은 진(陳)씨이다. 혜능에게 득도하였으니, 혜능이 곧 입적하자 사형인 청원행사에게 사사하였다. 40대 초반에 형주 형산(衡山)의 남사(南寺)에서 동쪽의 큰 바위에 암자를 짓고 좌선수행에 몰두하였기 때문에 석두(石頭)라는 별명이 붙었다. 시호는 무제대사(無際大師)였으며, 청원행사와 문답에서 기린의 뿔 하나면 충복하다는 의미로 일린족(一麟足)이라 불렸다.

남악의 석두희천 선사가 아직 사미였을 때다. 육조가 입멸에 즈음했을 때 석두가 물었다. “화상께서 입적하시면 저는 무엇을 의지해야 합니까.” 육조가 말했다. “사(思)를 찾거라.” 그리하여 육조가 입적하자 희천은 항상 난야(蘭若)에 단정히 앉아서 마치 생을 잊은 듯이 고요하게 지냈다. 제일좌가 물었다. “그대의 스승은 이미 입적하셨는데 조용히 앉아서 도대체 무얼 하는 건가.” 희천이 말했다. “저는 스승의 유언을 받들고 있는 중입니다. 때문에 지금 사(思)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제일좌가 말했다. “그대의 사형인 행사스님이 지금 길주의 청원에 계시는데, 그대의 인연은 행사에게 있는 듯하네. 육조 스님의 말씀은 솔직했었는데 그대가 어리석구만.” 희천은 곧장 육조의 탑에 예배드리고 그 길로 떠나 행사를 참례하였다. 이에 행사가 물었다. “어디에서 오는가.” 석두가 말했다. “조계에서 오는 길입니다.” 행사가 물었다. 이에 행사가 불자를 치켜세우고 물었다. “조계에는 이런 것이 있던가.” 이 질문은 양고기를 내걸어두고 개고기를 파는 격으로 짐짓 상대방의 깜냥을 파악하려고 내세운 제스처이기도 하다. 이에 대하여 희천의 ‘비단 조계뿐만 아니라 서천에도 또한 없습니다.’는 답변은 일부러 약간의 빈틈을 보일 줄 아는 것으로 제법 선기가 보이는 말이기도 하다. ‘그대는 서천에 가본 적이 없지 않은가’라는 행사의 질문은 희천을 꾸짖는 말이 아니라 은근히 칭찬하는 말이다. 이에 질세라 희천이 ‘제가 서천에 가보았다면 분명히 불자가 그곳에 있었을 것입니다’라고 응수한 것은 그 스승이 그 제자로서 질문과 답변이 서로 피장파장이다. 그래서 행사는 은근슬쩍 칭찬 반 꾸중 반의 의미로 ‘가본 적도 없으면서 말은 잘도 둘러대는구나’라고 평가하였다. 희천은 자신이 받은 점수에 대하여 ‘그래도 제 말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못할 겁니다. 왜냐하면 화상께서도 또한 제 답변에 대하여 한 말씀 거들고 계시지 않습니까’라고 당연한 결과라는 듯이 응수하면서 또한 마음속으로 깊이 명심하겠다는 모종의 긍정의 결심을 피력하였다. 행사는 그런 제자가 제법 쓸만하다고 여긴 까닭에 ‘훗날 제대로 알아듣는 사람이 없을까 하는 노파심에서 그대에게 짐짓 그렇게 물어본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내 뒤를 이을만한 후계자가 될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행사와 희천이 주고받은 언설은 세간법의 형식을 활용하면서도 출세간법의 정법안장에 대하여 법거량을 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언설 자체에 불자가 실제로 들어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서천이 거기에 담겨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부득불 언설을 통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이야말로 선문답이 상징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간명직절(簡明直截)한 이유이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21호 / 2020년 1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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