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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최초의 교화

“‘고행주의=청정’이란 견해 틀렸다”

부처님의 최초 교화 대상자는
함께 수행했던 다섯명의 비구
타락했다고 비난했던 그들에게
‘탐진치 소멸=청정 완성’ 설해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는 법이다. 물론 그 연원을 찾다 보면 시작이 언제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때도 있다. 불교는 고따마 붓다의 교화행으로부터 시작한다. 교화는 두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자기자신을 교화하는 것이며 둘째는 다른 이를 교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교화하면 흔히 두 번째를 생각한다. 하지만 첫 번째 교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두 번째는 불가능하게 된다. 붓다는 가장 먼저 자신을 교화했다. 그 과정이 바로 6년간의 수행이다. 흔히 6년 고행이라고도 하는 이 사건이 있었기에 붓다는 이후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사문 고따마가 스스로를 교화하여 ‘붓다’가 된 사건이야말로 최초의 교화이다. 이를 통해 붓다의 교화행이란 결국 ‘중생들 스스로가 자신을 교화하고자 하는 결심을 하게 하고 그 결심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불교사에서 최초의 교화행(敎化行)이라고 할 사건은 다섯 수행자들을 교화한 ‘초전법륜(初轉法輪, 최초로 가르침의 바퀴를 굴리심)’이다. 다섯 수행자는 고행자들의 숲에서 사문 고따마와 함께 수행했던 이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고따마가 고행을 포기하자 실망한 나머지 비난하며 떠나간 이들이었다. 붓다는 이들을 최초의 교화 대상자로 삼았던 것이다.

세상에는 어려운 일이 참으로 많다. 그중에서 하나를 꼽자면 나에 대한 신뢰를 거둔 이를 설득하는 일이다. 붓다가 찾아간 다섯 수행자가 바로 그런 이들이었다. 실망이 너무 큰 나머지 고따마를 비난하고 아예 떠난 이들이었다. 그래서 붓다가 이들을 찾아가자, 이들은 “수행자 고따마가 온다. 그는 사치와 향락에 빠져 정진을 포기했다. 우리는 그에게 인사도 하지 말고 일어나 영접하지도 말자”라고 약속을 했다.

상대에 대한 신뢰를 버린 사람은 어떤 말을 하더라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아는 체하지 말자고 결심한 이들이 과연 붓다의 말을 들으려 할까? 붓다는 이들의 그런 마음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붓다는 가장 먼저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알았다. 그것은 그들이 갖고 있는 생각에 대한 답을 주는 것이다. 다섯 수행자가 갖고 있던 생각을 정리하면 이렇다.

“고따마는 고행을 포기했다=사치와 향락의 삶으로 돌아갔다=이는 청정한 삶이 아니다”

붓다의 교화는 명확한 목적의식을 갖는다. 그것은 진정한 이익과 행복을 주는 것이며 그것을 위한 방법은 청정한 도덕적 삶의 실천을 바탕으로 한 논리적 언변이다. 이는 전도선언에서 명확히 밝히고 있는 내용인데, 초전법륜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붓다는 자신의 가르침을 통해 “위없는 청정한 삶의 완성을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알고 깨닫고 성취하게 될 것이다”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이어서 출가자는 두 극단을 섬기지 않으니 하나는 쾌락주의요 둘째는 고행주의임을 밝힌다. 붓다는 다섯 수행자들이 갖고 있던 ‘고행주의=청정한 삶’이란 견해의 오류를 바로 지적한 것이다. ‘청정한 삶의 완성(brahmacariyapariyosāna)’이란 단순한 도덕적인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으로는 ‘성(性)과 관련하여 청정한 삶을 영위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위의 ‘위 없는 청정한 삶의 완성’은 ‘탐진치의 소멸’이다. 경전에서는 “청정한 삶의 완성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소멸”(SN.45:19)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붓다는 삶 속에서 탐진치 번뇌를 완전히 소멸시킨 삶을 산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대로 붓다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드러난다. 붓다는 그러한 삶의 모습을 통해 자신을 비난한 다섯 수행자들을 설득시킨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초전법륜은 ‘서로 잘 알고 있는 사람을 교화하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6년간 수행을 같이 하면서 지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이 갖고 있던 오해와 불신을 어떻게 해소해서 진리의 문에 들어서게 할 것인가? 붓다는 다섯 수행자들에게 당신이 얻은 바가 무엇이며 그것을 통해 어떤 결과를 얻게 될 것인지를 거듭 설명한다. 그들이 듣고자 하는 마음을 낼 때까지 붓다는 ‘정성’을 다한다. 교화는 자신의 삶에서도, 타인에 대해서도 정성 다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이필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nikaya@naver.com

 

[1521호 / 2020년 1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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