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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만 본류, 비주류 불교음악

느리고 아정한 무심의 불교음악 율조 극치를 보여주다

회색 승복에 범종을 걸어 친근감 느껴지는 대만 본류 불교
같은 범패지만 대경·목어·법령 타주해 느낌은 확연히 달라
스님 혼자 부르는 ‘고종게’서 범패의 다른 맛 느낄 수 있어

천티엔샨스 일주문.

2007년 대만 불광산 수륙법회에서는 성운대사의 법문을 두가지 버전의 중국어로 통역해 진행하였다. 대부분 명나라 때 정성공의 무역 일을 따라 이곳에 자리 잡고 있던 사람들이 성운대사의 표준어를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불교음악에서도 드러난다. 시중에 가면 ‘국어범패’와 ‘대어범패’가 따로 있다. 국어는 표준어, 대어(台語)는 민난어 범패이다. 이토록 음반이 따로 나올 정도면 그들의 의례는 어떨지 몹시 궁금하였다. 그리하여 만나게 된 것이 아름답지만 슬픈 역사를 간직한 대만 곳곳의 사원과 사람들이다.

대만의 인구 분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세 층위로 나뉜다. 본래부터 이곳에 살아온 원주민들은 주로 대만 동부에 분포되어 있고, 원주민을 동부로 밀어낸 민난어(閩南語)권 사람들은 대륙과 가까운 서부에 분포하는 본류 불교인구다. 그리고 국민당과 함께 이주해 온 사람들은 전역에 분포하여 주류로 자리하고 있다. 이들은 불광산, 법고산, 중대산, 자제공덕회와 같이 거대 총림이고, 이 시기에 이주한 사원 가운데 거대 총림을 형성하지 않는 비주류 법맥도 있다.

국민당 이주 당시 이곳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불교사원을 중심으로 결집하여 학교와 병원, 기타 사회기관을 건설하여 국가의 기반을 다졌다. 그러므로 오늘날 대만의 불교총림은 한국의 종단 정도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각 총림이 지니고 있는 어마어마한 재원과 일자리는 한국에서 산업화과정에 재벌이 형성된 것과 비교할만하다. 따라서 대만불교의 저변에는 거대 기업과도 같은 총림이 있고, 사유재산이나 어떠한 자율도 없이 평생을 헌신하는 스님들의 계율적 삶이 무엇보다 큰 저력이다. 그런가하면 총림의 고승(高僧)이 지닌 막대한 권력도 있어 한번쯤은 소셜메카니즘적 차원에서 대만불교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새벽 종성을 하고 있는 천티엔샨스의 스님.

대만 사람들의 취향을 간단히 말할 수 없다는 전제 하에 필자의 경험을 말한다면, 이곳 사람들은 거대 총림에 대한 존중과 동시에 그에 대한 위압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그에 비해 본류와 비주류 사원에 대해서는 무관심 내지는 순수한 애정과 귀의심을 표하였다. 국민당 이전 혹은 비주류 사원에서 필자에게 인상적이었던 모습이 두 가지 있었다. 중국과 대만 스님들 대부분이 황토색 법의를 입는 것과 달리 천티엔샨스는 회색 승복을 입었다. 종루와 모양새가 다른 대만의 일반적인 종과 달리 지룽 링추안스의 범종은 한국과 같아 왠지 친근감이 느껴졌다.

의례율조와 승풍에 있어 기억에 남는 곳은 반차오(板橋)에 있는 지에윈스(接雲寺), 지룽(基隆)에 있는 위에메이산(月眉山) 총림의 링추안스(靈泉寺), 시각장애인 포교로 유명한 리엔찬(蓮懺) 스님이 이끄는 리엔먼(蓮門) 사원이다. 먼저 반차오의 지에윈스(接雲寺)는 거친 향불과 연기 속 의례를 주제하는 사람들이 세속 사제와 속인들이어서 도교사원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똑같은 향찬 범패와 삼귀의에 대경과 목어, 법령을 타주하는데 세속적인 느낌이 전해져 이전에 들었던 대만 범패와 확연히 달랐다. 그러나 그들의 범패를 오선보로 채보해 보면 그다지 차이가 없으니 율조에 담긴 혼, 정신, 마음의 자세는 악보로 나타낼 수 없기 때문이다.

타이페이에 있는 시각장애인 포교원에서 예불을 참례해 보니, 향찬으로 시작하여 삼귀의, 회향으로 마치는 의례 절차와 범패 가사는 동일하였으나 범패의 느낌에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간단히 예를 들어보면, “옴마니 반메훔” “옴마니 벰메훔” “옴마니 파드메 훔”과 같이 발음이 다른데다 선율의 느낌이 달라서 악보로 채보해 보기도 하였다. 그랬더니 이들의 범패는 대체로 템포가 느리고, 음고가 낮았고, 장식음과 요성에서 미세한 차이가 있지만 선율은 그다지 큰 차이가 없었다.

대만 본류 법맥 중에서 위메이산 총림의 링추안스(靈泉寺)는 뜻밖의 거대 사원이었다. 서울에서 남양주 혹은 가평 정도의 거리에 있는 지룽의 링추안스에 도착해 보니, 사원을 들어서는 입구에 입불법계(入佛法界)를 새긴 대문이 장대하였다. 안으로 들어서니 여러 전각과 대웅전이 재건축한 건물들과 어우러져 있었다. 마침 도착한 때가 점심공양 시간이었는데, 낮선 나그네를 마치 늘 함께 살던 식구처럼 식탁으로 인도하였다. 이들의 의례와 범패 율조는 어떠한지 전각 곳곳을 다니며 조석예불문과 음원들을 입수하느라 한나절이 지났으나 이들의 범패는 여느 사원의 범패와 대동소이하여 이렇다 할 특별한 수확은 없었다.

천티엔샨스 스님들과 신도들.
평일에도 천여명이 넘는 신도가 참례하는 천티엔샨스의 지장법회 모습. 특히 남자 신도들의 신심이 대단하다.

이곳에 올 때는 버스시간에 맞추어 왔으나 조사를 마치고 나오니 몇 시간을 기다려야하는 형편이 되었다. 한적한 곳이기에 지나는 택시가 없어 황망해하자 스님들이 택시업을 하는 신도에게 연락하여 차를 불렀다. 잠시 후 택시가 왔는데 한 스님이 택시 앞으로 냅다 가시더니 기사에게 택시비를 건네주었다. 그리고는 “걱정하지 말고 안심하고 가라”며 손을 흔드는데, 그 모습이 마치 천상에서 내려온 관세음보살과도 같았다. 이래서 사람들이 이들 본류 사원에 대해 “푸근하고 정이 간다는 표현들을 하였구나”하는 실감이 났다.

대만 필드워크 중 천수천안과 같은 관세음보살을 만났으니 판차오에 있는 천티엔샨스(承天禪寺)의 다오창(道常) 스님이시다. 푸젠의 대도시 푸조우에는 천티엔샨스라는 유명한 법맥이 있었고, 그 가운데 광친(廣欽) 스님은 지장보살의 화현이라 불릴 정도로 법력이 뛰어난 분이셨다. 광친 스님은 타이페이 근교 판차오에 천티엔샨스를 건립하였다. 4대 총림을 건립한 스님들이 젊은 시기에 이주해 혁신적인 승풍을 만들어낸 것과 달리 50대에 이른 광친 노화상은 보수적 수행풍토를 고수하면서 대만사람들의 절대적인 신망과 존경을 받고 있었다.

불광산의 쾌적한 숙소와 달리 천티엔샨스에서는 천막 같은 숙소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잠을 자야했고, 양철 양동이에 물을 받아 샤워를 했다. 식사 때는 하나의 대접에 국, 나물, 밥을 담아 먹는데다 화장실 청소, 마당 쓸기, 대들보 닦기 등 그 어떤 일이나 먹거리에도 외국 학자라고 해서 예외가 없었다. 변기를 닦고 화장실 슬리퍼를 수세미로 박박 씻어 헹군 후 간신히 허리를 펴면 다오창 스님이 “신쿨러”하며 수건을 주시는데 전혀 힘들거나 원망스러운 맘이 들지 않고, 오히려 환희심이 솟았다. 이토록 무자비하게 부려먹던(?) 다오창 스님은 갖가지 경전과 자료집을 아낌없이 챙겨주었는데 그 양이 라면박스에 가득 채워지자 직접 우체국에 가서 한국으로 붙여주셨다.
 

천티엔샨스 광친노화상 기념관.
위에메이산 총림의 링추안스.

중국의 음력 7월은 귀신의 달이라 하여 이사도 가지 않고, 임신도 하지 않고, 귀신 붙은 것을 떼려는 사람들과 길흉을 점치는 미신이 난무한다. 이러한 풍습이 불교로 와서는 우란분법회로 승화되어 시아귀작법을 겸한 법회가 곳곳에서 열린다. 이때 천티엔샨스는 한달간 지장법회를 열어 환희의 달을 보낸다. 그 일정을 보면 첫째 주 양황보참, 둘째 주 ‘법화경’, 셋째 주 삼매수참(三昧水懺), 마지막 주는 ‘지장경’과 ‘금강경’을 송경한다. 일과는 새벽에 순례단이 배원류 범패와 함께 삼보일배하며 도량을 도는 동안 법당에서는 조과(早課, 아침예불)를 바친다. 조과를 마치고 나올 즈음이면 땀에 흠뻑 젖은 순례단이 법당 앞에 이르러 함께 아침공양을 한다. 공양 후에는 사찰 울력을 하고, 8시가 되면 송경의식이 시작된다. 송경은 오전에 두 차례, 오후 두 차례 이루어지는데 그 사이에 오공(午供, 한국의 마지)을 바치고, 저녁에는 만과(晩課, 저녁예불), 밤에는 염불의식과 참선을 한 뒤 취침에 든다.

중국과 대만의 범패 중에 가장 유려하고 아름다운 선율은 의례를 시작할 때 부르는 향찬 범패이다. 대부분의 사찰에서는 예불을 시작할 때 6구의 시형으로 된 로향찬(爐香讚)을 노래하는데 비해 천티엔샤스는 보정찬(寶鼎讚)을 하였다. 보정찬은 5구체로써 당나라의 4구체 시형에서 생겨난 사(詞)의 형식이다. 천티엔샤스의 보정찬은 느리고 아정하여 무심의 불교음악 율조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6자, 4자 염불에 이어 참선으로 접어드는 밤 의례를 참례해 보니 저절로 염불삼매를 지나 참선의 적념에 들었다. ‘옛 선사들이 중생들에게 무념의 감로맛을 보여주려고 얼마나 궁구하였기에 이런 의식을 만들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
 

반차오의 지에윈스.

천티엔샨스 범패의 묘미를 악보상으로도 드러나게 해준 대목은 새벽의 고종게(叩鐘偈)였다. 대부분의 범패는 대중과 함께 불러야 하므로 다른 사원의 율조와 통합되어가는 현상을 피할 수가 없다. 그에 비해 고종게는 스님 혼자 부르기에 고풍의 여여로운 율조가 살아있었다. 그때의 새벽 종성이 얼마나 좋았던지 야행성 늦잠꾸러기인 필자에게 새벽이 기다려지기는 생전 처음이었다. 지그시 눈을 감고 천정에 매달려 있는 종 줄을 당겨 “덩~” 하고 “홍종고 보게고음 상철천당 하통지부(洪鐘叩 寶偈高吟 上徹天堂 下通地府)” 한 대목, “덩~” 하고 또 한 대목 “상축중화민국 창륭강부(上祝中華民國 昌隆强副)”…, 마지막으로 “나무당산호교 가남성중보살(南無當山護敎 伽藍聖衆菩薩)“의 기도를 범패로 하는데, 그 소리가 나그네의 마음을 어찌나 울리던지 녹음기며 노트를 던져버리고 그곳의 수행자가 되고 싶었다. 천티엔샨스의 고종게는 ‘다음 윤소희카페’ 중 ‘대만불교의식음악’ 메뉴에서 들을 수 있으며, 가사와 선율을 분석한 내용은 필자의 졸고 ‘대만불교 의식음악 연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윤소희 음악인류학 박사·위덕대 연구교수 ysh3586@hanmail.net

 

[1521호 / 2020년 1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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