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김대성 거사의 발원
24. 김대성 거사의 발원
  • 고명석
  • 승인 2020.01.20 15:15
  • 호수 15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생과 현생 부모 위해 인류사에 남을 불사 완성

토함산서 잡은 곰 꿈에서 “절 지으면 용서하겠다” 하자
죽은 곰 위해 장수사 건립…불국사에는 불국세계 구현
토함산 밖으로 토해냄이 불국사, 품고 머금음은 석굴암
석굴암은 부처님의 세계를 응축된 모습으로 안으로 간직한 비밀스런 곳간이다. 석굴암의 본존불인 석가모니 부처님의 모습이 장엄하다.
석굴암은 부처님의 세계를 응축된 모습으로 안으로 간직한 비밀스런 곳간이다. 석굴암의 본존불인 석가모니 부처님의 모습이 장엄하다.

종교미를 생각해 본다. 성스러움과 아름다움의 극치. 모든 것이 박탈되더라도 그 끝자락 너머에서 마음 깊이 울려오는 거룩한 자비로움. 그러한 종교적 울림의 커다란 감흥을 나는 석굴암에서 맛보았다. 석굴암 본존불과 더불어 그 안에서 솟아오르는 거룩한 장엄은 모든 번뇌를 날려버리고 한없는 평화를 선물로 준다. 그리고 불국사. 그 청운교, 백운교의 다리와 석가탑, 다보탑은 물론 각 전각에 들어앉아 계신 불상의 아름다움까지. 사실 나는 이토록 종교의 미적 감동을 주는 곳으로 석굴암이나 불국사 이상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불교건축과 조각은 도대체 누가 만들었을까? 누구의 발원으로 이러한 극한의 아름다움을 지상에 드러냈을까? 그 장본인이 바로 김대성 거사라고 힘주어 말하고 싶다.

김대성(金大城,?~774)은 신라 경덕왕 시절을 포함해 8세기에 활동했던 인물이다. 그는 한 국가의 재상이었다. 그의 공식적인 이름은 김대정(金大正)이다. 그가 불국사와 석굴암을 짓기까지의 발원의 내역은 ‘삼국유사’에 잘 기록되어 있다. ‘대성이 2세 부모에게 효도하다(大城孝二世父母)’라는 항목에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대성은 모량리의 가난한 여인 경조의 아들이었다. 머리가 크고 정수리가 평평한 것이 마치 성과 같아 이름을 대성(大城)이라고 했다. 경조는 너무 가난해 부자집 복안의 집에서 품팔이를 통해 근근이 생활을 이어갔다. 어느 날 흥륜사의 스님 점개가 복안의 집에서 베 50필을 보시 받았는데, 스님의 축원 소리를 듣고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문에서 스님의 소리를 들으니, 하나를 보시하면 만 배를 얻는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전생에 좋은 일을 한 것이 없어 지금 이렇게 가난한 것입니다. 이제 또 보시하지 못하면 오는 세상에는 더욱 가난할 것입니다. 우리가 품팔이로 얻은 밭을 시주하여 훗날의 과보를 도모함이 어떻겠습니까?’

그들은 스님에게 밭을 보시했다. 얼마 후 대성이 죽고, 김문량의 집에 아이가 태어났는데, 그가 바로 다름 아닌 전생의 경조의 아들 대성이었다.

대성이 어른이 된 뒤에는 사냥을 좋아해서 어느 날 토함산에 올라가 곰 한 마리를 잡았다. 그날 꿈에 곰이 귀신으로 변해 나타나 내가 너를 잡아먹겠다고 하자, 대성이 용서를 빈즉, 자신을 위해 절을 지어주면 용서해 주겠다고 했다. 대성은 이후 사냥을 그치고 곰을 위해 장수사를 세웠다. 이 사건으로 느낀 바가 있어 그의 자비 원력이 독실해졌다. 그리하여 이생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세우고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불사를 세우겠다고 서원을 발하였다.

대성이 석불을 조각하려고 큰 돌 한 개를 다듬어 감실을 만드는데, 밤중에 천신이 내려와 감실을 다 만들어 놓고 돌아갔다. 대성은 급히 남쪽 고개로 올라가 향나무를 태워 천신에게 공양을 올렸다. 그곳을 향고개라 한다.”

대성은 참회 후 발원을 올리고 불국사와 석굴암 창건의 원력을 실행한다. 대성은 살생에 대한 절절한 참회 이후 자비심과 원력이 돈독해져 전생과 현생의 양 부모를 위해 인류사에 기리 남을 찬란한 불사에 몰입한다. 김대성이 불국사 창건을 시작한 것은 경덕왕 10년(751년)이고, 혜공왕 10년(774년)에 그가 돌아가자 국가에서 완성하기에 이른다. 석굴암은 그의 생존 시에 완성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혹자는 말한다. 이러한 거대한 불사를 김대성 혼자의 발원이나 재력으로 감당하기란 난망했을 것이라고, 그래서 애초에 국가적 차원에서 통일대국의 번영을 이루기 위해 창건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김대성과 그의 친척들, 그리고 그의 발원을 돕고자 했던 지인들의 정성이 큰 몫을 차지했을 것이다. 물론 국가의 도움도 있었을 게다. 하지만 국가의 도움을 얻어낸 것 역시 그의 원력의 결과이지 않는가.

불국사의 온전한 명칭은 화엄불국사이다. 대성은 화엄을 배우려고 황복사의 표훈(表訓)대사를 찾아가 가르침을 듣는다. 화엄의 도리를 스스로 익혀 그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불국사를 설계한다. 화엄의 세계로 불국의 이상을 꿈꾼다. 세상의 모든 존재들을 화엄의 그 본래 부처로 깨우는 원력 보살행은 불국토의 실현으로 전개된다. 화엄은 모든 것을 통섭한다. 화엄은 조화의 세계다. 화엄 비로자나불 세계에는 석가모니 부처님도 관세음보살도 들어온다. ‘법화경’의 다보여래와 석가여래도 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것을 상징화한 것이 석가탑이요 다보탑이다. 신라탑의 거룩한 완성은 석가탑이다. 그 석가탑을 지으려고 백제의 장인 아사달을 불러올 정도로 대성은 공을 들이고 정성을 다한다. 청운교, 백운교의 다리며, 자연미를 살리면서 단아하게 쌓아올린 석축들. 거기에다 각 전각에 모셔져 있는 불상의 모습들은 자비심과 아름다움의 완성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우리는 그러한 역사와 삶이 그곳에서 흐르고 있음을 투명한 시선으로 보아야 한다.

석굴암으로 들어가 보자. 불국사가 화엄의 도리를 외부로 드러내고 펼쳐낸 불국세계라면, 석굴암은 그 부처님 세계를 응축된 모습으로 안으로 간직한 비밀스런 곳간이다. 불국사와 석굴암이 자리한 토함산(吐含山)에서 그 밖으로 토해냄이 불국사라면, 안으로 품고 머금음은 석굴암이지 않은가? 세상을 품은 그 중심에 부처님이 자비롭게 미소 지으며 앉아 있다. 그 부처님의 모습은 무어라 형용하기 힘들 정도로 위엄과 기품, 성스러움으로 뜨겁게 솟아오른다.

석굴암 본존불은 전체적 구조를 볼 때 법신불로서 석가모니불이라 생각된다. 석가모니 법신불은 삶과 죽음, 그 너머까지 아우른다. 거기에 십대 제자가 모셔져 있고, 유마와 문수가 서로 문답하는 모습도 감실에 모셔져 있기에 대승의 꽃인 ‘유마경’의 세계도 거기에 깊이 반영되어 있다. 석굴암은 그야말로 전불교 세계관의 응축이자 총화다. 일연 스님은 불국사와 석굴암을 보며 김대성의 원력을 이와 같이 찬탄한다.

“모량에 봄이 지나 세 고랑 밭을 보시하고 / 향 고개에 가을이 와서 만금을 거두었네. 모친은 백년 사이에 가난과 부귀를 맛보았고 / 재상은 한 꿈속에서 과거, 미래, 현재를 넘나들었네.”

불국사와 석굴암 창건에 많은 장애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김대성 거사는 기도와 서원으로 이를 극복했을 것이다. 부처님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그는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서서 혼신의 힘을 기울였을 것이다. 양 부모님에 대한 진정한 효도는 바로 이 대지에 부처님 세계의 구현이었기 때문이다. 보시 공덕은 행복한 삶을 약속할뿐더러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인류사에 길이 남을 한국의 불교문화가 신라, 경주의 동악 토함산에서 품어내고 열어내게 되었던 것이다.

고명석 불교사회연구소 연구원 kmss60@naver.com

 

[1521호 / 2020년 1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