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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테드 창의 ‘숨’

기자명 박사

생각의 끝 보여주는 경이로운 결론

9개 중·단편 구성 테드 창 작품
외계·인공지능·평행우주 가정
생명·기억 등 어려운 주제 다뤄
통찰 빛날 땐 붓다 목소리 보여

‘숨’

통찰을 끝까지 밀고 가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붓다는 우리에게 자신이 다다른 곳의 풍경을 들려주었고, 그렇게 귀동냥한 소식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변화하고 있으니까. 그래서일까. 어떤 책들은 읽다보면 부처의 가르침이 보인다. 생각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 어디까지 파고들 수 있는지 보여주는 귀한 책들이다.

테드 창이 쓴 소설이 그렇다. 그는 SF소설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갈 수 있는데 까지 밀고 나가 경이로운 결론을 끌어낸다. 써낸 작품은 많지 않지만 발표하는 작품마다 비상한 이목을 끌어왔다. 첫 단편인 ‘바빌론의 탑’으로 역대 최연소 네뷸러상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고,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전 세계 21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며 돌풍을 일으켰다. 그 돌풍은 생각의 돌풍이기도 했다. 물리학,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과학도로서 자신의 가정을 기술적으로 설계해볼 수 있는 그의 능력은 철학의 깊이와 만나 독자들에게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겼다. 그의 소설들은 한 편 한 편이 귀한 ‘사고실험’의 장이 되었다.

‘숨’은 그의 첫 작품집 이후 17년 만에 나온 두 번째 작품집이다. 총 아홉 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다. 그의 작품은 인류의 오랜 난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자유의지’를 주제로 한 단편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겨우 다섯 쪽밖에 되지 않지만, 읽고 나면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이 오랫동안 가시지 않는다. 시간여행, 외계, 인공지능, 양자역학, 평행우주 등 다양한 상황들이 펼쳐지는 가운데 생명이란 무엇인지, 기억이란 무엇인지, 쉽지 않은 주제를 다루는 그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문득 경이로운 순간을 만나게 된다. 이 모든 것들이 가리키는 것은 지금 여기, 우리의 삶이다.

단편 ‘숨’의 주인공은 정교한 기계이고, 그가 살고 있는 세계의 ‘인류’도 기계들이다. 그들은 충전한 허파를 교체해가며 삶을 이어간다. 해부학자인 주인공은 기억과 사고의 구조에 대한 궁금함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뇌를 해부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알고 싶었던 것을 앎과 동시에, 우주의 작동원리도 깨닫게 된다. 그의 우주가 필연적으로 소멸하리라는 것도. 결정된 종말에 저항하는 시도도 없지 않지만 주인공은 결국 운명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것은 체념이 아니다. 그는 거대한 무덤이 될 자신들의 우주에 방문할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긴다. “탐험자여, 당신이 이 글을 읽을 무렵 나는 죽은 지 오래겠지만, 나는 당신에게 고별의 말을 남긴다. 당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의 경이로움에 관해 묵상하고, 당신이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을 기뻐하라. 당신에게 이런 말을 할 권리가 내게는 있다고 느낀다. 지금 이 글을 각인하면서, 내가 바로 그렇게 묵상하고, 기뻐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은 평행우주라는 세계를 가정하여 ‘업’에 대해 생각해보게 해준다. 그렇다. 그 용어를 쓰지는 않았지만 그가 이 소설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업’이다. 평행세계를 연결해주는 기계인 ‘프리즘’을 통해 나와 다른 선택을 한 저 세계의 평행자아와 대화를 나누는 이들은 각자 자신의 욕망과 후회와 바람의 흔적을 찾고 동상이몽을 꿈꾼다.

어떤 이는 더 이상 착하게 살기를 포기하기도 한다. 지금 자신이 착하게 살더라도 평행우주의 다른 곳에서 못되게 군다면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이 질문에 심리상담가인 데이나는 말한다. “우리 누구도 성인군자가 아니에요. 하지만 우리 모두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선한 일을 할 때마다, 당신은 다음번에도 선한 일을 할 가능성이 많은 인물로 스스로를 만들어가고 있는 겁니다. 그건 의미가 있는 일이지요.” 데이나의 말은 우리가 결국 우리의 세계를 만들어간다는 업의 원리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붓다의 목소리가 그곳에 있다. 통찰이 빛나는 순간마다.

박사 북칼럼니스트 catwings@gmail.com

 

[1521호 / 2020년 1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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