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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려삼신불춤-하

기자명 정혜진

한반도 평화통일 열망‧기원, 보살들로 표현

개성 영통사 보관원서 발굴된 불화 삼신불상에서 춤 창작
여덟 보살 상징성 부각해 평화‧자비로움 넘치는 세상 염원
매년 부처님오신날 공연돼 남북통일의 상징 춤 되길 기대

2007년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린 ‘조선무용 50년-북녘의 명무'에서 공연된 고려삼신불춤. 이철주 예연재 문화기획자 제공
2007년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린 ‘조선무용 50년-북녘의 명무'에서 공연된 고려삼신불춤. 이철주 예연재 문화기획자 제공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땅속에 묻힌 유물들이 500여년 만에 발굴되었다. 영통사 보관원에서 새로 발굴된 불화 삼신불상에 안무가 강수내는 우리 민족의 통일기원을 담았다고 했다. 강수내는 춤을 창작할 당시 여러 불교도서를 참고로 하였는데, 특히 수인과 계인이 가지는 의미를 배우며 안무를 고심하고, 단원들을 지도할 때 그 뜻을 설명하면서 형상 작업을 하나씩 해 나갔다.

8분 20여초 가량의 ‘고려삼신불춤’에서는 영통사 보관원에 모셔진 법신(法身) 비로자나부처님을 중심으로 좌우로 모셔진 화신(化身) 석가모니불과 보신(報身) 노사나불. 이 세 분의 부처를 배경으로 8명의 보살이 등장한다. 모든 번뇌에서 중생을 구제하고 소원을 성취해주는 관음보살은 붉은 연꽃(파두마)을, 자비와 덕으로 사람들을 구제해 주는 보현보살은 흰색 연꽃(분타리)을, 무한한 복과 지혜를 안겨주는 허공장보살(虚空蔵菩薩)은 작은 연꽃을 들고 있다. 고통 받고 있는 중생을 구제해 주기 위해 영원히 부처가 되지 않는 지장보살은 보주(寶珠)를, 고생이나 재난으로부터 지켜주는 문수보살은 작은 경전을, 중생의 몸과 마음의 병을 고쳐주는 약사여래(약왕보살)는 약병을 지물로 들고 있다. 이 여섯 명의 보살 외에 양손에 아무런 지물을 들지 않은 두 명의 보살은 고난과 재난을 피해 평안을 가져오는 세지보살(勢至菩薩)로, 강수내 안무가는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한(조선)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대한 열망과 기원을 그들 보살로 표현하고자 했다.

강수내는 ‘고려삼신불춤’의 안무 의도를 이렇게 설명하였다. “불화 속에서 오랫동안 잠자던 보살들이 그림에서 중후하게 걸어 나와 한 보살 한 보살 자신을 소개하듯 춤추고, 이후 군무로 불국토를 형상하다가 음악이 경쾌하게 바뀌면 새로운 세상에 다시 태어난 행복을 약동적인 춤으로 표현합니다. 그리고 종장에 이르면 ‘후세들이여, 다 같이 힘을 모아 갈라진 강토를 하나로 통일시키거라, 우리가 지켜줄 테니…’라는 발원을 끝으로 보살들이 다시 그림 속으로 돌아가게 형상하였어요.”

안무가가 가장 고심을 한 장면은 8명의 보살들이 그림처럼 연화좌에 서 있다가 무대로 첫 걸음을 내딛는 모습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암전된 상태에서 현악기의 선율이 흐르고 이어 맑은 좌종소리가 나면서 조명이 켜진다. 그리고 나면 관객들은 무대배경으로 세 분의 큰 부처와 연화좌 위에 기립하고 있는 그림 같은 8명의 보살을 만나게 된다. 음악이 흐르면 붉은 연꽃을 든 관음보살이 마법에서 깨어난 듯 서서히 내려와 춤을 추고 교대하듯 흰 연꽃을 든 보현보살이 나와 홀로 춤을 춘다. 이어 지물이 없는 세지보살이 양쪽에서 나와 듀엣으로 추고, 이어서 4명의 보살춤과 전체 군무로 이어진다.

재일조선인 무용가 최초로 북한 2‧16 경연대회에서 도라지 춤을 재현해 입상한 강수내씨. 이철주 예연재 문화기획자 제공

무대배경이 된 불화는 피바다 가극단 소속의 미술가들이 집체(集體)로 만들었고, 음악은 피바다 가극단의 인민예술가인 원로 작곡가 신영철이 작곡을 했다. 신영철은 북한 최초의 민족가극인 국립민족예술단의 ‘춘향전’ 책임 작곡가이자, 반도의 무희라 불렸던 최승희 작품의 무용음악을 다수 창작한 북한의 대표작인 작곡가로 유명하다. 그는 조선신보에 실린 사진에서 영감을 얻어 의욕적으로 쓴 강수내의 대본을 읽고 며칠 만에 불향(佛香)이 진하게 풍기는 곡으로 완성하여 보내주었고, 그 곡을 들은 안무가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필자는 이 작품을 도쿄에서 처음 보았을 때 발레 ‘호두까기 인형’을 보는 듯했다. ‘호두까기 인형’은 주인공 클라라가 크리스마스에 호두까기 인형을 선물 받아 그 인형과 함께 환상의 나라로 모험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클라라가 잠이 들면 인형들이 살아 움직이고 그것을 본 클라라도 함께하지만 꿈에서 깨어나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간다. 삼신불춤의 시작과 끝이 ‘호두까기 인형’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삼신불춤이 관객에게 꿈을 꾸듯 상상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달빛이 내려앉은 고요한 불당에서 인적이 느껴지지 않으면 정말 부처와 보살들이 연화좌에서 내려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을까?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며 토론을 하지는 않을까? 그리고 평화가 찾아온 남과 북을 상상하게 된다. 그렇지만 지금의 안타까운 현실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타의로 강제 이주를 경험한 이들이든 자의로 탄압을 피해 피난처로 이국을 선택한 이들이든, 그들에게 있어 소중한 가치로 여겨져 온 것은 민족이었다. 더군다나 피식민지국 출신으로 식민지국에 정착하여 직접적인 차별과 탄압을 온몸으로 견뎌낸 재일동포들에게 있어, 나라를 잃은 민족의 슬픔과 고통 그리고 자유와 평화를 갈구하는 마음은 그 누구보다 강했으리라. 그래서였을 것이다. ‘남과 북, 해외가 하나 되어 복원한 영통사의 불화를 보고 깊은 감동에 한동안 온몸이 떨렸고 가슴이 뛰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고 술회한 것은.

안무가 강수내는 ‘고려삼신불춤’에서 미움도 없고 다툼도 없는 세상, 아픔도 없고 슬픔도 없는 세상, 평화와 자비가 넘치는 세상 그리고 사랑과 희망이 넘치는 세상을 표현하고자 했다. 자비로운 부처님의 뜻으로 이러한 복된 세상이 온 누리에 퍼져 나가길 바라면서 남과 북, 그리고 해외가 함께 복원시킨 영통사의 삼신불춤이 통일의 춤이 되기를 절실히 갈망하며 만들었다고 했다. ‘고려삼신불춤’은 다른 여느 작품보다 제작과정이 몹시 순조로워 “이 모두가 부처님이 등을 떠밀어 주신 것 같다”고 소회를 밝힌 강수내는 이 작품을 ‘매우 의미 있고 가치 있는 나의 가장 소중한, 그리고 가장 사랑하는 작품’이라 자평하였다.

짙은 어둠같이 단절된 남북관계에서도 북한의 조불련과 남한의 조계종과 천태종은 새해 인사를 나누었다고 한다. 정치와 이념을 넘어 예술과 종교가 앞장서서 새날을 열어야 하고, 그 예술의 선두에는 ‘고려삼신불춤’이 있지 않을까 싶다. 매년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전 세계에서 ‘호두까기 인형’이 공연되는 것처럼, 매년 부처님오신날을 전후해 ‘고려삼신불춤’과 같은 상징적인 작품이 공연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

정혜진 예연재 대표 yeyeonjae@gmail.com

 

[1521호 / 2020년 1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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