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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부처님과 병든 비구

기자명 정원 스님

“비구여, 내가 그대의 도반이 되어주겠다”

부처님이 아난과 승방 찾았을 때
병든 비구가 누워 있는 것 발견
손수 옷 빨아주며 간병과 설법
동료 아프면 서로 돌볼 것 당부

‘마하승기율’ 권28에 병든 비구가 있을 때 승단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몸소 가르침을 보인 사례가 있는데 부처님께서 얼마나 섬세하고 자비롭게 환자를 돌보시는지 마치 한 편의 단편영화를 보는 듯하다. 환자와 눈을 맞추고 자애로운 음성으로 대화를 주고받는 부처님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작게 소리 내어 읽다보면 그분의 무한한 자비심과 대중을 꾸짖는 엄격함이 깊은 여운으로 남는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는 아난과 함께 승방을 순례하였다. 허름한 방에 도착하니 그곳에는 병든 비구가 똥오줌이 널린 방 가운데에 누워서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비구에게 물으셨다.

“기력은 좀 있는가? 병의 차도는 어떠한가?” “부처님, 병이 더욱 나빠지고 있습니다.” “그럼 오늘 공양은 했는가?” “아뇨, 못 먹었습니다.” “어제는 좀 먹었는가?” “어제도 못 먹었습니다,” “그저께는 뭘 좀 먹었는가?” “못 먹었습니다, 음식을 못 먹은 지 일주일이 됩니다.”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다시 물으셨다.

“음식을 얻었는데 먹을 수가 없는 것인가? 아니면 먹을 음식이 없는 것인가?” “음식을 못 얻었습니다,” “이 방사에는 화상이 있는가?” “없습니다,” “화상과 같은 법랍의 스님은 있는가?” “없습니다,” “그럼 아사리는 있는가?” “없습니다,” “그럼 아사리와 같은 법랍의 스님은 있는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옆방에는 비구가 없는가?” “제 몸에서 악취가 난다고 다른 곳으로 옮겨갔습니다. 혼자 지내면서 가타(伽陀)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여! 그대는 더 이상 슬퍼하지 말라. 내가 그대의 도반이 되어 주겠다. 옷을 걷어라. 내가 씻어주겠다.” 이때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부처님께서는 그냥 계십시오. 병든 비구의 옷은 제가 빨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래 그럼. 네가 옷을 빨면 내가 물을 받쳐주겠노라.”

아난이 옷을 빨자 부처님께서는 물을 대주셨다. 옷을 다 빨고 나니 햇볕이 내리쬐었다. 아난은 병든 비구를 들쳐 안아 방 밖으로 옮기고 똥오줌의 오물을 제거했다. 이불과 깨끗하지 않은 그릇 등을 모두 밖으로 내놓고 물로 방안을 씻어내고 청소한 후에 마른 걸레로 깨끗하게 닦았다. 이불을 빨아서 햇볕에 널고, 줄을 엮어서 만든 이불을 방에 깔았다. 병든 비구를 목욕시키고 천천히 침상에 뉘었다.

이때 세존께서는 무량공덕으로 장엄한 황금색의 부드러운 손을 내밀어서 병든 비구의 이마를 짚으며 물으셨다. “아픈 곳은 좀 어떤가?” “세존께서 제 이마를 짚어 주시니 모든 고통이 다 사라졌습니다.” 이때 부처님께서 병든 비구가 수순할 수 있는 설법을 하시자 비구는 환희심으로 가득 찼다. 거듭 설법을 하시니 그 비구는 법안정(法眼淨)을 얻어 병이 깨끗하게 나았다.

부처님께서는 처소로 돌아와 앞서 있었던 일을 비구들에게 자세히 말씀하시고 병든 비구 옆방에 살던 비구를 찾아 따끔하게 꾸짖었다. 그리고는 함께 수행하던 동료가 병들어 아플 때는 가까운 순서대로 돌보되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승단에서 갈마로 간병인을 뽑아서 돌보라고 하셨다. 과거 우리나라 총림과 사찰에서는 이 정신을 잘 지켜왔다.

그러나 요즈음은 사찰마다 사람은 적고 할 일은 많아서 혹여 누군가 큰 병이라도 나면 자체적으로 간호하기 쉽지 않은 현실이다. 그러므로 종단차원에서 환자나 노스님들을 위한 복지정책을 제도화하는 것은 시대를 읽은 바람직한 해법이라 하겠다.

정원 스님 봉녕사 금강율학승가대학원 shamar@hanmail.net

 

[1522호 / 2020년 1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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