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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3장 부처님과 조사의 은덕

기자명 선응 스님

“해탈·열반 모두 대자대비의 은혜”

부처님과 조사들은 공통으로
고통으로부터 해탈 방편 시설
향상일로 언하에 깨달음 만남
오직 부처·조사 은덕임 알아야

3장에서는 부처님과 조사가 사람들을 고통으로부터 해탈하는 방편법을 시설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법에도 여러 가지 뜻이 있고 사람에게도 다양한 근기가 있기 때문에 (법을)시설하는데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를 “법이란 한 물건이요, 사람이란 중생이다. 법은 변하지 않는 것(不變)과 인연을 따르는 것(隨緣)의 뜻이 있다. 사람은 문득 깨달음(頓悟)과 점차로 수행함(漸修)의 근기가 있기 때문에 문자와 언어로 설법해야 한다. 말하자면 ‘관공서의 일(官)이라면 바늘도 허용할 수 없으나 개인의 일(私)은 마차와 수레도 통한다’라고 한다. 중생이 비록 원만히 이루어진 존재라도 지혜의 눈이 없이 태어나 달게 윤회를 감수하기 때문에 만일 세상에서 뛰어난 금비(섬세하고 예리한 칼)가 아니면 누가 무명의 두꺼운 막을 벗겨 주겠는가? 고통의 바다를 해탈하여 열반의 언덕에 오른 자는 모두 대자대비의 은혜를 입었으니 항하사 같은 목숨으로도 만분의 일도 갚기 어렵다. 널리 새로 닦는 이치(新薰)를 들어서 부처님과 조사의 깊은 은혜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 내용은 대승경전으로부터 ‘한 물건’의 선법을 밝히고 중생의 근기에 따라서 대기 설법한 부처님과 조사의 은혜를 강조하는 것이다. ‘승만경’에서 “진여(眞如)는 자성청정심이며 둘이 없는 것이고 항상하는 불변이다. 이 진여를 의지해서 인연으로 생기한 것은 청정과 염오가 있는 수연(隨緣)으로 물이 바람을 따라 파랑을 일어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마명보살(馬鳴, 80∼150)의 ‘대승기신론(진제 역, 499∼569)’에서도 “진여에는 수연과 불변, 자성과 형상, 본체와 작용, 돈오와 점수에 자재해서 걸림이 없지만 수행과 증득의 단계와 선후가 있는 것이 수연이다. 대승의 여래장 법신의 본체에서는 언설과 반연을 떠나 필경에 평등하여 변이가 없는 불변이고 부처님과 조사는 본체의 공덕상이며 그 작용은 세간의 선과 인과”라고 했다. 이 불변의 법신 여래장은 ‘원성실성’이며 ‘일원상, ○’이고 무념과 적정이다. 여래장수연(如來藏隨緣)은 8식(종자업식)을 의지해서 생멸한다. 대승의 마명, 용수(龍樹, 150~250), 제바(提婆, 3세기), 무착(無着, 300∼390), 세친(世親, 316~396) 등의 보살들이 이 8식(종자업식)을 바꾸어 ‘원성실성’을 깨닫고 성불하게 한다. 그러므로 본각의 불변에서는 언설과 명자가 없으나 부처님과 조사의 방편교설이 수연이다.

그 이치를 말하자면, ‘임제록’에서는 어떤 사람이 임제(臨濟義玄:?~867)선사에게 “도적을 만났을 때 만일 죽이면 불교를 어기는 것이고 죽이지 않아도 왕의 법을 어기는 것이니 어떻게 판단하겠는가?”라 물으니, 선사가 “관리는 바늘도 용납하지 않지만 사적으로는 차와 마차도 통한다”고 한 내용을 인용해서 방편의 가르침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금으로 된 비녀(金鎞)’란 ‘열반경’ 권8에서 맹인의 눈꺼풀을 의사가 섬세하고 예리한 금 칼로서 떼어내어 광명을 찾았다는 금비괄목(金鎞刮目)과 두보(杜甫, 712∼770)의 시에서 “금비로 눈의 막을 벗기면 백 개의 수레를 빌릴 것이 없다”고 한 것은 불변인 ‘본래면목’을 깨달은 분상에는 방편수레의 교설이 필요하지 않지만 중생의 근기가 다르므로 ‘신훈’을 들어서 보인다.

‘선문수경’에서 백파긍선(白坡亘璇, 1767∼1852)은 ‘임제 3구’라고 한다. 제1구에서 깨달으면 허공에 인장을 찍은 향상일로의 ‘3요(체상용; 마음의 청정심과 광명과 무애함)를 견성한 조사선이다. 제 2구에서 깨달으면 물에 도장을 찍은 여래선으로 위앙종과 법안종, 조동종이며 제 3구에서 깨닫는 자는 ‘진공’을 모르는 의리선이다. 본래 ‘3구’가 공한 ‘진공(眞空)’을 깨닫는 사람은 불조와 다르지 않다. 게송은, “임금님이 보배로 꾸민 전각에 오르니 시골 노인이 노래하도다”라 하니, ‘향상일로’의 언하에 깨닫는 조사선을 만난 것은 오직 부처님과 조사의 은덕인 것을 알아야 한다.

선응 스님 동국대 불교학 박사 sarvajna@naver.com

 

[1522호 / 2020년 1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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