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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임권택의 ‘아제 아제 바라아제’(1989)

가장 세속적인 곳에서 중생을 보듬는 보살행

한승원 소설 원작…거장 임권택 감독의 ‘대승불교관’ 드러낸 영화
수행 매진하는 진성 스님과 세간 속 순녀의 대승적 수행 비교 구도
은사 스님의 열반 후 다시 저잣거리로 향하는 순녀로 대승 지지

‘아제 아제 바라아제’는 한승원 소설을 원작으로 1989년 제작된 임권택 감독의 불교영화다. 진성 스님과 순녀의 삶을 통해 소승불교와 대승불교의 차이를 보여준다. 사진은 영화 캡쳐.

‘아제 아제 바라아제’는 소설가 한승원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한승원이 각색한 영화다. 모든 시대는 그 시대의 고유한 색과 음이 존재한다고 한다. 영화도 동시대의 풍경과 공기를 프레임에 담는다. 시대적 풍경과 분위기를 담는다는 명제에 충실한 영화가 바로 ‘아제 아제 바라아제’다.

이 작품은 두 개의 화두를 담아낸다. 하나는 작품 속에서 제시한 ‘달마 대사는 왜 얼굴에 수염이 없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1980년대 시대적 화두인 ‘역사의 변화와 세상의 구원을 위해 지식인과 종교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이다. 이 영화가 1989년에 제작됐다는 사실, 그리고 한국 역사와 한국 문화를 씨줄과 날줄로 엮여 영화를 만들어 온 감독 임권택의 존재가 두 개의 화두를 직시하게 한다. 임권택 감독은 대승불교의 길의 제시를 통해 두 화두를 통합한다.

첫 시퀀스에서 순녀(강수연 분)에게 은선 스님은 ‘어디서 왔는가’라고 묻는다. 고향인 광주 이전에 어머니 뱃속 그 이전에 자신의 근원을 물은 것이다. 순녀는 이 질문에서 출발하여 어디로 가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보여준다.

영화의 이야기는 포크형 구조다. 하나의 이야기가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다. 앞부분은 순녀의 개인 서사가 일직선으로 뻗어간다. 순녀가 행자 생활을 하는 동안, 회상 장면으로 아버지와의 만남과 열차 여행 그리고 이별 장면을 제시한다. 더 거슬러가서 고등학교 시절 현종 선생님과의 만남과 함께 백제 문화권의 여행과 입산의 과정이 펼쳐진다. 순녀는 자살에 실패한 박현우(한지일 분)를 만나서 탄광촌으로 떠난다. 이 지점에서 저잣거리에서의 순녀의 삶과 대비되는 진성 스님의 수행과 만행이 평행 편집되어 두 개의 서사로 나누어 진다.

순녀와 인연을 맺은 많은 남성들은 아버지 혹은 아들 같다. 월남전 참전 용사인 부친은 참회를 위해 입산 수도하였으며 순녀에게 하늘의 구름을 보여주면서 “저 구름이 너의 아버지이다”라고 말하고 떠난다. 순녀가 아버지라는 뜬 구름을 찾지 말고 자신의 길을 갈 것을 돌려 당부한 셈이다.

순녀의 또 다른 아버지는 광주 민중항쟁 때 임신한 아내를 잃은 현종 선생님이다. 그는 아내의 못다 이룬 꿈을 위해 멸망한 백제와 패배한 동학농민혁명을 배경으로 한 대서사시를 집필하려고 답사한다. 두 사람의 여행은 학교 당국의 오해로 현종과 순녀의 이별을 야기한다.

두 인물이 아버지를 표상한다면 ‘당신은 나의 빛이며 내 목숨은 스님 것’이라고 순녀에게 애원하는 현우는 아들과 같다. 은선 스님은 수행은 산에서만 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면서 순녀를 저잣거리로 내보낸다. 이와 같은 순녀의 행보는 대승불교를 경유하여 불교세계를 녹여내려는 임권택 감독의 의도에 부합한다.
 

사진은 영화 캡쳐.

임권택 감독의 영화는 길 영화로 대표되며 ‘실패한 자의 떠돌기’라는 임권택의 인물을 작가적으로 특징한다. 세상에서 신산한 삶을 겪으면서 스스로 수행하고 깨달음을 얻는 주인공 순녀는 임권택의 실패한 자들이 자기완성의 길을 가는 로드무비의 주인공으로 캐스팅 1순위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임권택 감독은 정성일과 대담에서 대승불교에 대한 관심을 피력하였다. 첫 장면의 천불전 장면에 대해 “천불전이 상징하고 있는 것은 ‘모두 다 부처가 될 수 있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라며 “대승적 수행이란 바로 중생과 더불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전면에 내세웠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우리의 보편적인 삶은 겉은 정주민이지만 속은 떠돌이라는 임권택 감독의 뿌리 깊은 사유도 드러난다.

그는 “우리가 뿌리 내리고 살고 있다고 믿는 것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쩌면 떠돌고 있는 삶”이라고 말했다. 이는 영화 속 순녀의 삶과도 닮았다. 그녀는 절에서 탄광촌으로, 탄광촌에서 섬으로, 다시 절로 그리고 다시 저잣거리로 떠돈다. 그녀는 연좌제로 인해 막장의 광부가 된 현우와 상이군인인 병자, 병원의 기사인 송기사까지 사회적 타자를 껴안고 살아갔다.

그녀는 많은 인간 군상과 인연을 맺었지만 감독은 “남자들과의 모든 관계도 그런 자비심의 발로이며 불행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고자 하는 수행의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현우와 술 취한 순녀가 여관방에서 행한 정사 장면은 순녀의 정서를 드러낸다. 순녀는 현우를 거부하다가 얼굴을 은선 스님이 주신 모자로 가리면서 허용한다. 은선 스님은 모자를 주면서 속세에서도 수행자의 삭발을 가리면서 수행자로 살 것을 당부한다. 그리고 몸은 속세에 있지만 정신은 절에 두고 있기를 우회적으로 전한다. 모자로 얼굴을 가리는 행위는 애욕의 거부와 수행의 경계 확장으로 읽을 여지를 만들어낸다.

대승불교는 속세에서 보살행하는 순녀를 긍정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순녀를 배척하는 보살들과 진성 스님의 질타는 소승적 입장에서의 거부감을 드러낸다. 은선 스님은 열반을 앞두고 순녀의 손을 들어준다. 은선 스님은 ‘오욕의 진창 속에서도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하며 순녀의 수행을 지지하고 격려한다.

은선 스님의 다비식을 마치고 진성 스님은 유골을 수습하는 순녀를 미망에 빠져있다고 질타한다. 순녀는 탑 천 개를 만들겠다고 말한다. 진성 스님은 탑을 세우겠다는 욕심을 미망으로 치부한다. “미망을 뒤집어쓰지 않고서 어찌 미망 속에 갇힌 중생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순녀는 반문한다.

‘반야심경’의 독경 소리가 들리고 순녀는 저잣거리로 향한다. 순녀는 대승불교의 행보를 이어간다. 대승도 소승도 모두 깨달음을 향한 길에서 우열과 옳고 그름이 없겠지만 임권택 감독은 대승의 길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셈이다.

문학산 영화평론가·부산대 교수

 

[1522호 / 2020년 1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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