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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으로 살아가기

지금은 방학인데도 방학을 제대로 보내고 있는 학생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부족한 공부를 채우거나 남보다 앞서기 위해서 더욱 열심히 공부에 매달리고 있고 적어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방학이란 무엇인지, 왜 방학을 하는 것인지, 그래서 방학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없다. 

방학(放學)이란 학을 내려놓는다는 뜻이다. 많이 듣고 보고 지식을 채워 가는 배우기(學)를 그만하라는 것이다. 왜 지식 쌓기를 그만하라고 하는가? 참된 공부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공자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허망하다’고 말했다. 방학은 밖으로 향하는 지식 쌓기를 그만하고 안으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라는 취지에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의미 있는 공부를 위해서는 방학 기간 뿐 아니라 공부하는 내내 스스로 방학을 하고 자신을 찾아가는 공부를 해야 한다.

방학을 하지 않고 자신을 찾는 공부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끝없이 외적인 추구와 축적에 매달린다. 늘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경쟁하면서 의무감으로 자신을 채찍질하고 바쁘게 살아간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결정할 때 자신으로부터 결론을 이끌어내지 않고, 항상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또한 타인의 시선과 평가를 염두에 두고서 결정을 내린다. 그래서 따라 하기 또는 맞추어가는 방식으로 살아간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휩쓸려 사는 모습들은 모두 중심이 자신에게 있지 않은데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공자가 가르치는 사랑(仁)은 자기 충실로서의 충(忠)이 바탕이 된다. 충의 한자를 보면 자신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양심(心)에 맞춘다(中)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자신에 충실하고 자신으로부터 비롯되는 사고와 행동을 하라는 뜻이다.

조카 딸아이가 머리손질 한 번에 400불이나 쓰려 하자 동생은 그것을 꾸짖었다. 조카는 자기는 원하는 스타일로 머리만 하면 만족한다고 말하며, 자기에게 무의미한 입는 거나 명품을 사는 대신 자신에게 중요한 곳에 돈을 쓰는 것이 뭐가 잘못이냐고 항변했다. 동생은 자신만의 가치를 자신 있게 추구하는 딸의 얘기에 대꾸할 말이 없었다. 남이 하면 나도 하고 싶고 남이 가지면 나도 가지고 싶어 하면서 헤맬 것이 아니라, 진정 자신이 갖고 싶은 가치를 추구하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을 존중하고 자신에 충실한 것이다.

학생에게 방학이 필요하듯이 열심히 일하며 돈을 벌고 성과를 축적해 가는 사람들에게도 바캉스(vacance)가 필요하다. 바캉스라는 말에는 비어 있음 내지 자유로움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어깨를 짓누르는 의무나 일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평가로부터도 자유로워지는 것이 바캉스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삶은 늘 일로 바쁘고 의무감에 짓눌리고 있을 뿐, 쉼이 없거나 너무 적다. 때론 다 내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편안하게 쉬면서 진정 자신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을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진정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말 그대로의 자유를 만끽할 때 자신의 존엄과 가치가 지켜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방학 기간에만 ‘학’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 아니듯이, 따로 휴가를 내어 바캉스를 떠나야만 자유로워지는 것도 아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무엇엔가에 이끌려가지 않고 자신이 주체가 되어 그것을 한다면 그 또한 자신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래서 임제선사는 어느 곳에서든 주인으로서 주체적으로 살고, 네가 서 있는 바로 그곳에서 투철하게 살면 그곳이 바로 진리의 세계라고(隨處作主 立處皆眞) 가르쳤다. 외적인 추구에만 매달리면서 항상 바쁘고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삶의 방향과 내용을 결정하는 중심에 자기를 놓고 주인으로 살아가면서 수시로 방학을 하고 바캉스를 즐기면서 살았으면 하고 바란다.

정영근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yunjai@seoultech.ac.kr

 

[1523호 / 2020년 2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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