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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 고찰에서 만나는 문화와 옛 이야기

  • 불서
  • 입력 2020.02.03 15:13
  • 호수 1523
  • 댓글 0

‘신정일의 한국의 사찰 답사기’ / 신정일 지음 / 푸른영토

깊은 산속에 들어앉은 고찰에서는 옛 사람들의 삶과 생각, 그리고 전통문화를 함께 만날 수 있다. 원효와 퇴계, 공민왕의 흔적이 서린 봉화 청량사 전경.
깊은 산속에 들어앉은 고찰에서는 옛 사람들의 삶과 생각, 그리고 전통문화를 함께 만날 수 있다. 원효와 퇴계, 공민왕의 흔적이 서린 봉화 청량사 전경.

“이 산은 둘레가 백리에 불과하지만 산봉우리가 첩첩이 쌓였고, 절벽이 층을 이루고 있어 수목과 안개가 서로 어울려 마치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또 산봉우리들을 보고 있으면 나약한 자가 힘이 생기고, 폭포수의 요란한 소리를 듣고 있으면 욕심 많은 자도 청렴해질 것 같다. 총명수를 마시고 만월암에 누워 있으면 비록 하찮은 선비라도 신선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조선 중기 문신 주세붕은 봉화 청량산을 이렇게 예찬했다. 이 산이 품은 사찰로 오늘날 많은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 청량사다. 청량사는 연화봉 아래 유리보전이라고 쓰인 법당이 본전이고, 금탑봉 아래 법당을 응진전이라고 이름 붙여 놓았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유리보전은 동방 유리광 세계를 다스리는 약사여래를 모신 전각을 뜻하며, 유리보전 안에는 약사여래상이 모셔져 있고 획의 힘이 좋은 현판은 고려 공민왕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신정일의 한국의 사찰 답사기’<br>
‘신정일의 한국의 사찰 답사기’

문화사학자이자 도보여행가 신정일은 이처럼 간략하면서도 명확하게 청량산과 청량사를 전하고 있다. ‘신정일의 한국의 사찰 답사기’는 도보여행가인 저자가 전국 사찰을 도보로 순례하며 전하는 사찰 이야기다.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초등학교 때부터 ‘삶이란 무엇인가’를 화두 삼았던 저자는 열다섯 살에 무작정 구례 화엄사를 찾았다. “스님이 되겠다”고 절문에 든 어린 아이에게 스님은 방 한 칸을 내주면서 나무하고 빨래하고 허드렛일을 하도록 했다. 그리고 두어 달이 지난 어느 날 다시 불러서는 “세상에 태어나서 살다가 가는 것 모든 것이 다 길이지만 너만을 위한 길이 세상에는 예비 되어 있다. 그리고 세상에선 누구나 혼자다. 그 혼자의 길을 가거라. 가서 세상의 바다를 헤엄쳐 보라”며 세상에 나가 살라고 일렀다.

저자의 행자 아닌 행자, 스님 아닌 스님 생활은 그렇게 끝났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운수납자의 운명을 타고 났는지, 저자는 일 년의 반 정도를 이 나라 산천을 답사하러 집을 나서고 있다. 책은 그렇게 저자가 길을 나서 찾은 곳 중 수많은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고, 귀중한 문화유산이 산재한 절을 펼쳐 놓았다. 여기서 저자는 단순히 답사 행적을 기록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절과 절을 품은 산의 역사와 옛 선인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담아냈다. 문화유산의 보물창고인 한국 사찰을 찾아 나선 인문기행인 셈이다.

책은 구산선문의 도도한 수행처 곡성 태안사, 원효와 퇴계·공민왕의 흔적이 서린 영남 사찰의 대명사 봉화 청량사 등 20개 지역 29개 사찰 이야기를 담았다. 옛 사람들의 삶과 생각, 그리고 그들이 빚은 고유의 문화를 간직한 고찰은 우리 땅 우리 강산 깊은 산속에 들어앉아 담담하게 역사의 현장을 지켜왔다. 잠시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찾아가더라도 누구에게나 문을 열고 기다리는 그 절에 깃든 이야기에서 어제와 오늘을 보고, 더불어 내일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만날 수 있다. 1만4800원.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523호 / 2020년 2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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