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이 도오에게 물었다. “화상의 심심한 본의는 무엇입니까.” 도오가 선상에서 내려오더니 여인이 절하는 시늉을 하고 말했다. “그대가 애써 멀리서 찾아왔는데 그 고마움에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도오는 도오원지(道吾圓智: 769~835)로서 도오종지(道吾宗智)라고도 한다. 속성은 장(張)씨이고 어려서 열반화상(涅槃和尙)에게 출가하였고, 약산유엄(藥山惟儼)에게 가서 참문하고 인가를 받아 그 법을 이었으며, 호남성 장사부 도오산에서 선풍을 크게 드날렸고, 수일대사(修一大師)라는 시호를 받았다.
일찍이 달마대사가 중국에 대승선법을 전승한 이래로 조계혜능에게서 남악회양과 청원행사의 두 계통으로 나뉘었다. 이들 법맥으로부터 9세기에서 10세기에 걸쳐 선종오가(禪宗五家)가 형성되었다. 그 가운데 위앙종에는 원상(圓相)이 전승되었는데 그것을 여섯 문으로 요약하였다. 원상(圓相)은 깨침의 절대적인 진실을 일원상(○)으로 드러낸 것이다. 의해(義海)는 일원상의 의미가 바닷물처럼 차별이 없음을 드러낸다. 암기(暗機)는 주객의 대립이 발생하기 이전의 작용을 품고 있는 모습이다. 자학(字學)은 일원상 자체가 불변의 뜻을 나타내는 일종의 글자라는 것이다. 의어(意語)는 일원상의 의미를 글자를 통하여 알아차리는 것이다. 묵론(黙論)은 일원상을 체험을 통하여 알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승해주는 모습이다.
도오가 여인이 절하는 시늉을 하였다는 것은 여섯 문 가운데 암기(暗機)와 묵론(黙論)으로 본심을 표현한 것이다. 말하자면 도오 자신의 선풍은 그 어떤 설명으로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도오는 승의 질문에 대하여 질문을 무시하지도 않고 본래의 종지를 제대로 드러내자면 굳이 여인이 곱상하고 정중하게 큰절을 드리는 모습으로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음을 몸소 가르쳐 준 것이다. 가르침을 추구하기 위하여 멀리서 애써 찾아온 납자를 대하는 도오원지의 모습은 그와 같은 자비와 엄격함이 드러나 있다. 제아무리 가까운 제자이고 오랫동안 수고했다 하더라도 사사롭게 선법의 도리를 분별언설로써 가르쳐줄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방식으로는 벌써 깨침의 본질로부터 크게 어긋나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더욱이 자신을 찾아온 손님을 무작정 냉대할 수는 없다. 제자의 깜냥을 살피는 것과 그에 걸맞는 적절한 수단을 처방하는 것은 전적으로 선지식의 안목에 달려 있다. 어떤 경우는 질문을 받고 파악하고, 어떤 경우는 질문을 받기도 전에 파악해버리며, 어떤 경우는 도리어 먼저 질문을 퍼붓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아예 관심을 회피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도오는 참으로 자비보살이었다. 먼저 물을 주어 갈증을 달래줄 수도 있을 것이고, 밥을 주어 배고픔을 해결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도오는 역시 선자답게 자신의 가르침부터 받는 것이 순서가 아닌가 하고 곧장 제자에게 큰절을 하였다. 이때 제자는 어떤 자세를 취했는지 궁금하다. 다행스럽게도 그 의미를 알아차렸다면 더불어 맞절을 드리든지 그 자리를 피하든지 아니면 그대로 스승이 드리는 절을 받아들이든지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모르고 있다면 그 제자는 황당해하면서 그게 무슨 의미인지를 스승에게 물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도오원지의 심심한 본의란 도오원지가 내세우는 종지의 핵심을 가리킨다. 달마로부터 내려온 선의 궁극적인 뜻이 궁금했던 제자의 질문에 대하여 도오가 취한 제스처는 여인이 큰절을 드리는 모습이었다. 이것은 상대방에게 가장 정중한 자세로 대하는 모습이다. 언설로 수고했다, 고맙다, 반갑다 등 표현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도오가 보여주려고 했던 선법의 종지는 언어분별로 표현되는 것이 아닌 까닭에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모습 그대로 여법한 생활을 보여주는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음을 드러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선법이 상징과 은유로 무장해 있으면서도 현실의 일상성을 떠나지 않는 이유이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23호 / 2020년 2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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