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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우루웰라 까삿빠 3형제의 교화

자만심 높은 불 숭배 이교도 교화하다 

붓다, 신통력 매우 부정적 판단 
배화교 수행자인 까삿빠 3형제
3500가지 신통으로 굴복시켜   

붓다 교화행 초기, 붓다의 이름을 높이는 계기가 되는 사건이 몇 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을 꼽자면 우루웰라 까삿빠 3형제를 교화한 사건이다. 그들은 불을 숭배하는 배화교(拜火敎, 조로아스터교)의 수행자로, 결발[머리를 상투처럼 튼 것] 수행자였다. 까삿빠 3형제가 머물고 있었던 곳은 붓다가 전도선언에서 “나도 역시 가르침을 펴기 위해서 우루웰라 세나니가마 마을로 가겠다”고 한 바로 그곳이다. 우루웰라는 네란자라 강 근처에 있다.

붓다는 이들 삼형제 중 맏이인 우루웰라 까삿빠를 찾아가게 된다. 우루웰라 까삿빠는 신통력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500명이 되는 제자가 있었다. 붓다는 그가 갖고 있는 명성을 알고 찾아간 것이다. 그의 나이가 정확히 얼마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3형제 중 맏이로 많은 대중의 지도자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시 35세의 붓다보다는 20~30년 이상 연장자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만큼 우루웰라 까삿빠의 자부심은 대단했음을 그의 시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저 명성 높은 고따마의 다양한 신변(神變, 신통)들을 보고서도, 질투와 자만에 의해 기만된 저는 그때 바로 [고따마의] 앞에 엎드리지 않았습니다.(Theragāta, 375게송)”

위 시는 붓다의 제자가 된 후 깨달음을 얻은 우루웰라 까삿빠 존자가 읊은 게송이다. 솔직한 자기 고백이 담겨 있고 또한 붓다의 다양한 신변에 대한 언급도 확인된다. 그런데 여러 경전에서 확인되는 바에 따르면 붓다는 신통력에 대해서 대단히 부정적이었다. 신통력을 사용하는 것은 깨달음과는 전연 상관없는 것이었고 이는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붓다는 제자들의 신통력 사용에 대해 대단히 엄격했다. 하지만 붓다는 교화 초기에 특히 신통력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던 우루웰라 까삿빠를 제도하기 위해 매우 이례적으로 다양한 신통력을 사용했다. ‘율장’의 ‘대품’에 보면 3500가지 신통변화가 행해졌다고 전하고 있다. 이는 그만큼 우루웰라 까삿빠의 질투와 자만에 찬 왜곡된 마음을 굴복시키는 것이 쉽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붓다의 교화행 가운데, 신통을 쓴 사례가 이 외에도 있다. 대표적으로 연쇄 살인마로 악명 높았던 앙굴리말라이다. 그런데 이때 곧잘 제기되는 것이, 신통은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니 이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해석을 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는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신통의 대부분은 은유나 비유로 사용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율장’과 ‘테라가타(장로게)’에서 나오는 내용을 보면 우루웰라 까삿빠를 상대로 붓다가 다양한 신통을 사용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루웰라 까삿빠를 제도하는데 있어 신통이 빠질 수는 없지만 그것이 핵심은 아니다. 신통은 그의 자만심을 꺾는 수단이었을 뿐이다. 실제 우루웰라 까삿빠는 이후 ‘불타는[것에 관한] 법문(Āditthapariyāya)’을 듣고 다른 1000명의 수행자들과 함께 ‘번뇌에서 해탈되었다.’ 이 법문이 갖는 의미 중 하나는 우루웰라 까삿빠를 비롯한 1000명의 수행자들이 모두 불을 숭배하는 배화교도였다는 점을 붓다가 충분히 감안해서, 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불을 예시로 가르침을 준 점이다. 붓다는 감각, 감각 대상, 감각 접촉, 감각 인식이 탐진치(貪瞋癡)의 세 가지 불 때문에 활활 타오르고 있는 것으로 묘사하면서, “비구들이여, 모든 것[세상]이 불타고 있다(sabbaṃ bhikkhave ādittaṃ)”라는 기발한 풍자를 하고 있다. 매일 제단에 불을 피우며 제사를 지냈던 그들이었기에, 불의 이미지는 매우 생생했을 것이다. 

사실 다른 신념체계를 갖고 오랜 세월을 보낸 사람에게 전연 새로운 세계관을 이해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붓다는 상대가 갖고 있는 심리적 요소들 가운데 무엇이 그를 움직이고 있는지를 잘 파악하고, 그 부분을 통해 상대의 교만한 마음을 다스렸다. 그런 의미에서 우루웰라 까삿빠의 이야기는 상대를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하면 아무리 공을 들인다고 해도, 그 마음을 얻을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이필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nikaya@naver.com

 

[1523호 / 2020년 2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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