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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총림 방장 현봉 스님 기해년 동안거 해제법어

기자명 법보
  • 교계
  • 입력 2020.02.10 11:12
  • 수정 2020.02.10 11:15
  • 호수 1524
  • 댓글 0
현봉 스님.
현봉 스님.

걸음걸음 별유천지를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려야 철세에 풍년이 든다는데, 지난 삼동안거를 지내면서 우리 조계산에는 눈을 구경하지 못하고, 겨울비가 장마처럼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이상한 기후변화 속에 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 감기가 유행하며, 이상한 흉흉한 소문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다 지금 바깥세상에는 경제마저도 어렵고, 이번 봄에 4.15총선 등의 많은 일들이 있어 올 한해는 상당히 파란이 많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눈이 안 오면 세상에 풍년이 들고 삼재팔난이 없기를 바라면서 눈이 많이 내리기를 바라는 기설제(祈雪祭)를 지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눈으로 화제(話題)를 삼겠습니다.

중국에 유명한 방온(龐蘊) 거사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 방거사가 약산 선사의 회상에 오래 머물다 떠나게 될 때, 약산 선사는 열 명의 선객들에게 산문까지 배웅해주도록 하였습니다. 산문 입구에서 선객들과 이별할 즈음 방거사가 펄펄 내리는 눈을 가리키며 “好雪片片 不落別處(호설편편 불락별처), 좋은 눈이 내리는데 송이송이 딴 곳에 떨어지지 않구나” 하였습니다.

그 때 전(全)이라는 선객이 “落在甚麽處(낙재심마처)오? 떨어지는 곳이 어디입니까?” 하니, 방거사가 손바닥으로 바로 그의 뺨을 한 대 때렸습니다.

전선객이 “거사는 경솔하게 이러지 마십시오” 하자

방거사가 “그대는 그러고도 선객이라고 하니, 염라대왕이 그대를 가만두지 않을 거다” 답했습니다.

이에 전선객이 “왜 그럽니까? 作麽生(작마생)” 묻자,

방 거사가 다시 한번 때리면서 “眼見如盲 口說如啞(안견여맹 구설여아). 눈을 뜨고 보면서도 소경 같고, 입으로 말하면서도 벙어리 같구나” 하였습니다.

그 뒤 설두중현선사가 이 이야기를 들어 말하기를 “처음 그 전선객이 ‘떨어지는 곳이 어디냐?’고 물었을 때 눈덩이를 집어 그에게 던져야 했다”고 했습니다. 바로 송이송이 떨어지는 하얀 눈이 그 눈을 바라보는 전선객 자신에게 떨어지는 것임을 가리킨 것이다.

늙은 방거사가 헤어지는 마당에 그 절에 오래 묵었던 밥값을 할 요량이었던지 자비심을 베풀려고 공연히 그런 수작을 하다가, 자기 허물은 모르고 남의 허물은 크게 보아 두 번씩이나 전선객을 때려 이런 사단을 만들었습니다.

거기에다 설두선사도 합세하여 친절하게 전선객에게 눈덩이를 집어던져 모든 눈송이가 ‘바로 전선객 그 자신에게 떨어지는 것임을 가르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팔을 걷고 나서서 공연히 시비를 걸어 모르는 사람에게 망신을 주고 괜히 선객 하나를 바보로 만들면서 자기들 허물만 키우고 말았으니, 이를 두고 제방에서 시끄러웠습니다.

‘길을 가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말에서 내리지 말고 그냥 자기 갈 길이나 가야 한다’고 하는데, 오늘 나는 여기 시비에 공연히 끼어들어 관전평을 하겠습니다.

龐老再打盲禪客(방로재타맹선객)

徒勞胸中積氷屑(도로흉중적빙설)

若自拍掌一笑去(약자박장일소거)

紅爐銷融片片雪(홍로소융편편설)

방거사가 눈 먼 선객을 두 번이나 때렸으나

부질없이 가슴 속에 얼음가루만 쌓였구나.

스스로 손뼉 치며 한번 웃고 떠났다면

붉게 타는 용광로에 송이송이 모든 눈을 녹였으리.

오늘 우리 대중들도 석 달 동안 아무런 장애 없이 정진하였지만, 지금 산문을 나서게 되면 밖에는 온통 혼돈의 세상입니다.

방거사는 산문을 나서면서 내리는 눈을 보며 “好雪片片이 不落別處(호설편편 불락별처)라. 좋은 눈이 송이송이 다른 곳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였으나, 나는 그와는 다르게 말하겠습니다.

대중들은 동서행각시(東西行脚時)에 보보답별처(步步踏別處)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불조(佛祖)도 알 수 없는 삼재(三災)와 팔풍(八風)이 닿지 않는 별유천지(別有天地) 즉 별처(別處)가 있습니다.

부디 동서남북을 행각하면서 걸음걸음에 삼재와 팔풍이 닿지 않는 천지 밖에 따로 있는 그 별유천지를 밟으면서 다니기를 바랍니다.

拄杖 卓一下(주장 탁일하) 주장자를 한번 내리치다.

[1524호 / 2020년 2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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