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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 소송 비용만 아껴도

기자명 이병두

1945년 민족해방이 되면서부터 시작되어 지루하게 끌어오던 비구‧대처 갈등을 형식상 봉합하고 통합종단으로 출범한 조계종은 ‘도제양성‧역경‧포교의 3대사업’을 핵심 과제로 내세웠다. 이 세 가지 불사는 아직도 종단 운영의 기본 원칙으로 자리 잡고 있고, 이에 대해 어느 누구도 반대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종단의 숨을 이어가기조차 힘들던 1960년대 초반에 이런 과제를 내세운 데 대해서는 당시 종단 지도자들에게 감사를 드려야 할 것이다. 그런데 법정 스님은 종단 기관지 ‘불교신문’(당시 제호 ‘대한불교’) 1964년 1월1일자에 실린 ‘64년도 역경, 그 주변’이라는 글에서 “삼대사업에 줄곧 부도를 내고 있다”며 맹공하였다.

“전국 방방곡곡의 절간에서는 소송에 이기기 위해서 사직(司直)에 뿌릴 예산은 마련되었지만, 부처님의 교법을 쉬운 말로 소개하는 데에 쓰일 예산은 전혀 관심 밖의 일이었다. 하여, 역경을 비롯한 삼대사업은 명실공히 줄곧 부도만 나버린 것이다. … 이제까지는 핑계로 통했다. 제대로 손대지 못한 일이면 무엇이나 ‘종단정화 때문에’라는 야릇한 핑계로. 그러나 그 야릇한 핑계도 이제는 시효가 지났다. 부디 올해부터는 삼대사업의 번질한 그 대의명분에도 이 이상 부도가 나지 않기를 이만치서 조용히 빌어야겠다.”(당시 불교신문에는 이 글 말고도 ‘이 혼탁과 부끄러움을’ ‘세간법에 의탁하지 않는 자중을’과 ‘침묵은 범죄다-봉은사가 팔린다’ 등 스님의 애정 어린 비판의 글 여러 편이 실렸다.)

법정 스님의 이 글이 나온 지 60년이 다 되어간다. 그런데 스님의 지적이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었을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 물론 60년 전에 비하면 종단의 예산과 종무원 숫자가 크게 늘어나고 일반 사회의 기준에 따라 종무 행정 체계를 갖추어 겉모습만으로는 성장과 안정을 이루어가고 있다. 하긴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규모가 얼마 되지 않는 종단 운영 예산을 해결할 능력이 없어서 외부 재단이나 시주자들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종무원 급여를 지급할 수 없었던 상황을 감안하면 이 정도의 성장과 안정을 이룩하게 된 것도 기적일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박수만 쳐줄 수는 없는 일이다.

여러 차례 지적됐지만 한국불교, 범위를 좁혀서 조계종은 일반 사회의 소송에 얽혀서 쓰인 막대한 돈을 이른바 ‘3대 사업’에 투입했다면 지금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당당하고 의연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을 것이다. 종단 내부 문제로 갈등하고 분쟁을 해결하느라 흔들리지 않고, 불교 본래의 존재 이유인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귀일심원 요익중생(歸一心源饒益衆生)’에 매진하면서 사회대중의 신뢰를 받을 것이다.

그런데 법정 스님이 ‘종단정화라는 야릇한 핑계의 시효가 다했다’고 한지 60년이 다 되어가는 데에도 절을 차지하는 문제로 시작된 소송이 여전히 진행되는 곳이 있고, 종단과 각 교구본사 운영을 둘러싼 갈등을 내부에서 조정하고 해결하는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종도’를 자처하는 이들이 걸핏하면 검찰‧경찰에 고소‧고발장을 내고 민사소송을 제기하며 같은 은사스님의 상좌들 사이에서도 형사 고발과 민사소송을 밀어붙이면서 아무 부끄러움도 없다. 이런 식으로 곳곳에 암초가 도사리고 있고, 불교계의 어두운 사건들이 언론에 등장하여 위상을 실추시킬 뿐 아니라 소송의 양쪽 당사자들이 승소하겠다며 변호사들에게 엄청난 돈을 쓰고 있다. 조금 성격이 다르지만, 스님들이 입적한 뒤 미처 종단 앞으로 등기이전을 해놓지 못한 부동산과 예금 및 보험금 등을 둘러싸고 고인의 가족 및 친인척들과 민사소송을 이어가는 데에 들어가는 예산도 엄청나다.

언제까지 이런 일이 용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가. 이제는 ‘변호사들에게 들어가는 막대한 소송비용’에 삼보정재를 낭비하는 일만은 멈추자.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524호 / 2020년 2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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