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 제5칙 암참약산(巖參藥山)

하나로 규정되면 본래 뜻 벗어나

거추장스러운 행위 부정하고
오직 좌선 수행한 선자, 약산
운암 제시한 벽장 가르침 비해
약산 가르침은 군더더기 없어

약산이 운암에게 물었다. “어디에서 왔는가.” 운암이 말했다. “백장에 있다가 왔습니다” “백장의 가르침은 무엇이던가” “어떤 때는 일구에 백미(百味)가 구족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소금에서는 짠맛이 나고 묽은 것에서는 싱거운 맛이 나는데 짜지도 않고 싱겁지도 않은 것이야말로 일상의 맛이다. 그러면 백미가 구족되어 있다는 일구란 도대체 무엇이겠느냐.” 운암이 답변을 하지 못하자 다시 물었다. “그런 자세를 가지고 목전의 생사를 어찌 해결하겠다는 것인가” “목전에 생사일랑 아예 없습니다” “그렇다면 백장 밑에서 몇 년이나 공부를 했는가” “백장 밑에서 20년 머물렀습니다” “20년 동안 백장에 있었으면서도 아직 세속의 땟물조차 벗어나지 못했구나.”

훗날 약산이 또 물었다. “백장의 다른 가르침은 무엇이던가” “어떤 때는 삼구를 떠나서도 깨치고 또 육구를 떠나서도 깨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삼천리나 벗어난 것으로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겠구나.”

그리고 약산이 다시 물었다. “또 다른 가르침은 무엇이던가” “어떤 때 상당법문을 마쳤는데, 대중이 법당을 나서서 돌아가려는 차에 다시 대중을 불렀습니다. 이에 대중이 뒤돌아보았을 때 ‘이것이 무엇이냐.’ 하고 묻기도 하였습니다” “어찌 그와 같이 말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운암이 그 말을 듣고 바로 깨쳤다.

위의 문답은 세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단락은 온갖 시비분별과 교리를 담은 팔만사천법문을 백미(百味)로 표현하였다. 둘째 단락은 선가에서 제시하는 짤막한 착어(著語) 내지는 말후구(末後句)를 삼구와 육구로 표현하였다. 셋째 단락은 언어도단(言語道斷)과 심행처멸(心行處滅)의 도리를 할(喝)과 방(棒)처럼 찰나의 제스처로 표현하였다. 임제의 삼구에 비유하자면 각각 제삼구와 제이구와 제일구에 해당한다.

위의 문답 가운데 마지막에서 운암은 ‘백장이 대중에게 이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약산의 “어찌 그와 같이 말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오늘에야 비로소 그대로 인하여 백장의 진면목을 보았구나.”라는 말에 운암은 바로 깨치고 예배를 드렸다. 운암은 일구에 백미가 구족되어 있다는 백장의 말이야말로 세수하다가 코를 만지는 것처럼 간명직절(簡明直截)한 도리를 깨우쳤다. 삼구나 육구는 쓸데없는 말만 늘어놓은 것으로 번거로울 뿐이다.

삼구에 대하여 일찍이 백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가르침은 삼구와 관련되어 있다. 그러므로 초·중·후가 다 좋아야 한다. 초구에서는 직접 선심(善心)을 일으키라고 가르친다. 중구에서는 그 선심을 타파하라고 가르친다. 후구에서는 비로소 그 선심에 대하여 친절한 설명을 가한다. 그러므로 만약 이 삼구 가운데 일구만 설하면 남을 지옥으로 빠뜨리는 꼴이지만, 삼구를 동시에 설하면 자신이 지옥에 빠진다. 그리고 육구란 말하는 것[(語]·침묵을 지키는 것[黙]·말을 하지 않는 것[不語]·침묵을 지키지 않는 것[不黙]·모두 옳다는 것[總是]·모두 옳지 않다는 것[總不是]이다.’ 말하자면 삼구나 육구는 언설로 표현된 교의를 상징한다. 백장은 삼구나 육구 가운데 어떤 것을 활용해야 하는가를 분명하게 일러주지 않았다. 어느 것 하나로 규정해버리면 본래의 뜻에서 벗어나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산은 그와 같은 분별심을 가지고 어쩌려고 한다면 깨침으로부터 삼천리 밖에 아득히 벗어난다고 말하였다. 곧 입이 있어도 말할 수 없는 것으로 언어가 막히고 도리가 통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그것이야말로 백장이 자세한 설명을 하는 대신에 곧바로 ‘이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은 의미였다.

운암이 제시한 백장의 가르침에 비하여 약산의 가르침은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었다. 여기에서 운암은 바로 그와 같은 약산의 가르침을 맛보았던 것이다. 약산은 거추장스러운 행위란 모두 부정하고 오로지 좌선수행으로 일관한 선자였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24호 / 2020년 2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