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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각불- 10가지 덕(十身) ‘세주묘엄품’

기자명 해주 스님

“석가모니는 실재하신 분이며 무량한 부처님으로도 화현”

화엄교주 비로자나불이 보신 노사나불이며 화신 석가모니불
보리도량에서 시성정각하신 정각불을 열가지 덕상으로 설해
부처님 지혜마음이 내 본래  마음이니 마음을 보는 것이 견불

인도 보드가야에 있는 보리수.
인도 보드가야에 있는 보리수.

고요한 보리도량의 장엄은 부처님의 깨달음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어서 의정불이(依正不二)의 장엄이라 하였는데, 경에서는 세주묘엄의 양상이 계속 설해지고 있습니다. 

의정불이는 삼세간이 원융한 융삼세간(融三世間)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삼세간은 기세간(器世間)·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중생세간입니다. 의보는 기세간이고, 정보는 깨달은 불보살과 아직 깨닫지 못해 교화대상인 중생세간으로 나눈 것입니다. 모든 존재를 이러한 삼세간으로 일단 나누면서도, 이 모두가 원융하여 다르지 않으므로 융삼세간입니다. 

이처럼 의정불이이고 융삼세간인 것은 전체가 다 부처님의 출현이고, 부처님의 신통력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세간의 주인인 세주는 삼세간주이고, 세주묘엄은 융삼세간의 장엄이라 하겠습니다.  

화엄조사들은 ‘화엄경’의 부처님을 ‘융삼세간·십신무애(十身無礙)·삼불원융(三佛圓融)·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라 통칭하고 있습니다. 

화엄교주는 법신 비로자나불인데 비로자나불이 바로 보신 노사나불이고 화신석가모니불입니다. 이 법신과 보신과 화신의 삼불이 다른 분이 아니고 한 부처님이라고 하여 삼불원융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또 모든 부처님을 원만수 열의 십신으로 거두어서 융삼세간불을 십신무애라 합니다. 그리고 깨달아 정각을 이루신 부처님에 초점을 맞추면 십불원융입니다. 

의상 스님은 ‘반시’에서 융삼세간불을 그려 보이고, 깨달음을 얻으신 구래불을 십불의 출현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화엄경약찬게’에서는 “나무 화장세계해 비로자나진법신 현재설법노사나 석가모니제여래, 과거현재미래세 시방일체제대성”이라고 시작하여 먼저 삼불에 귀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사바세계의 교주는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입니다. 그런데 ‘화엄경’에서는 사바교주를 비로자나불이라고도 합니다. 사바세계 역시 화엄정토인 연화장세계 안에 있는 국토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처님 명호는 이외에도 한량없이 많습니다.

여기까지 읽다 보면, 오히려 부처님이 누구이신지 더 종잡을 수 없고, 부처님처럼 되는 것이 어떻게 된다는 것인지 점점 더 어려워짐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이지요. 또 달리 말하면 부처님처럼 되게 하는 가르침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처럼 되는 것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물론 중생들의 능력인 근기도 문제이지만, 부처님이 한 모습이 아니라서 말입니다. 

사실 성불을 발원하고 부처님께 지심귀명례하면서도 정작 부처님과 성불에 대해서 헷갈려 이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붓다로 살자는데 그 말이 가당키나 한가’ ‘부처님은 석가모니불 한 분 뿐이신데 어디 감히 성불한다는 말을 하나’ ‘석가모니불은 2,600여 년 전에 돌아가셔서 지금은 계시지 않는데 왜 예불을 하는가?’ 등등, 많은 의심과 이견들이 나돌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조석으로 예경하고 매일 마지 올리는 칠정례에서는 제일 먼저 석가모니 부처님께 지심귀명례합니다. 석가모니불은 역사적으로 실재하신 부처님이면서, 한량없는 부처님으로 화현하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체 중생들을 이끌어주시는 인도자(三界導師)이고, 어지신 어버이(四生慈父)이시며, 우리들의 근본 스승(是我本師)이신 석가모니 부처님께 예경하고, 이어서 일체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시방삼세의 인드라망처럼 중중무진 많은 세계에 항상 계시는 모든 부처님에게 예경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방삼세에 상주하시는 부처님은 화엄법계의 부처님입니다. 한량없는 부처님 명호에 대해서는 해당 경문에서 살펴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먼저 ‘화엄경’에서 제일 먼저 출현하시는 부처님을 다시 뵙기로 하겠습니다.  

그때에[爾時] 세존께서[世尊] 이 사자좌에 앉으셔서[處于此座]
일체 법에[於一切法] 가장 바른 깨달음을 이루셨다.[成最正覺]

보리도량의 사자좌에 앉으셔서 가장 바른 깨달음을 이루신 부처님은 석가모니불입니다. 석가모니불의 깨달음을 우리가 일상 듣는 ‘항마성도’나 ‘견성성불’이라 표현하지 않고, 일체 법에 최상의 정각을 이루셨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일체 법에 최상의 정각을 이루셨으니,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일체지자(一切智者)입니다.     

부처님께서 보리도량에서 비로소 깨달음을 얻으셨다는 시성정각도 실은 부처님께서 성도하시는 모습으로 출현하신 것이겠습니다. 사월초파일을 ‘석탄절’에서 ‘부처님오신날’로 바꾸어 명명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세주묘엄품’에서는 이 정각불(正覺佛)이 지니신 덕상을 열 가지[十德]로 설하고 있습니다. ‘청량소’에서는 십덕을 다음과 같이 십신(十身)으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정각불은 첫째로 부처님의 삼업[三輪]이 허공처럼 널리 두루하시니 허공신(虛空身)입니다. 해당 경문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지혜가 삼세에 들어가서 모두 다 평등하며, 그 몸이 일체 세간에 충만하며, 그 음성이 시방국토에 널리 순응하였다. 비유하면 허공이 온갖 물상들을 모두 품고 있되 모든 경계에 분별하는 바가 없는 것과 같고, 또 허공이 널리 일체에 두루 하되 모든 국토에 평등하게 따라 들어가는 것과 같았다. ”

부처님의 뜻은 전부 지혜이므로 마음은 평등하시고, 몸은 충만하시고, 말씀은 널리 퍼져서 두루 만족합니다. 마치 허공이 분별없이 모든 것을 품고 허공이 평등하게 모든 국토에 두루한 것처럼, 부처님의 삼업도 평등하고 충만하고 수순하신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위덕의 광명이 빼어나시니 위세신(威勢身)입니다. 부처님은 항상 도량에 앉아 계시는데 보살대중 가운데 위광이 밝게 빛나서, 해가 떠서 세계를 밝게 비추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복해(福海)가 청정하시니 복덕신(福德身)입니다. 부처님께서 과거·현재·미래의 삼세에 행하신 온갖 복이 큰 바다와 같이 많고, 그 복해가 모두 청정해서 복덕신입니다. 

우리는 삼귀의 할 때 ‘귀의불양족존(歸依佛兩足尊)’이라고 예경해왔습니다. 요즈음은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라고 노래로 많이 부르지요. 양족이란 지혜와 복덕의 두 가지가 구족하다는 의미입니다. ‘지혜와 복덕 두 가지가 다 원만 구족하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라는 것이 ‘귀의불양족존’입니다. 

양족존의 부처님을 모신 것은 신라시대부터 내려온 전통이라 하겠으니 의상 스님이 ‘일승법계도’에서 복덕과 지혜[福智]가 원만구족하신 부처님이 구래불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청정한 복은 지혜처럼 그 자체로 부처님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어른 스님들이 복 닦을 것을 강조해 왔습니다. ‘깨달음을 얻어도 복이 없으면 아무도 들으려고 안 해서 그 자리에서 바로 입적하게 된다’라고 까지 말씀하셨습니다. 대개 복만으로는 해탈이 안 되고 지혜를 닦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때의 복은 청정한 무루복이 아닌 것이고, 무루복의 복덕은 그 자체가 복덕신의 부처님입니다. 

이상과 같이 시성정각하신 부처님이 원만구족하신 십덕 가운데, 삼업이 허공같이 두루 평등하며, 위덕이 태양 같고, 복덕이 바다와 같아서 허공신·위세신·복덕신임을 보았습니다. 

경에서는 계속해서 부처님께서 생을 받음이 뜻대로 되시고[意生身], 상호가 원만하시며[相好莊嚴身], 설법이 구름같이 다함없고[願身], 교화가 자재하시며[化身], 법신이 변만하시고[法身], 지혜가 공적하시며[智身], 자타의 의보와 정보를 다 지니심[力持身]을 설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역지신은 신통으로 자타(自他)의 일체 의보와 정보를 다 지니어 의정불이의 장엄을 나타내시는 덕을 말합니다. 

이와 같은 모든 부처님과 덕상은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일체지지(一切智智)의 부처님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 부처님의 지혜마음이 바로 나의 본래 마음입니다. 견불(見佛)이 마음 외에 따로 불을 보는 것이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경에서는 이어서 보리도량에 운집한 대중들이 다 정각불을 친근하고 해탈한 경계만큼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는 세주묘엄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해주 스님 동국대 명예교수 jeon@dongguk.edu

 

[1524호 / 2020년 2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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