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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백의정의 ‘미확인미행물체’(2005)

미확인비행물체를 통해 윤회의 문제를 사유하다

UFO 기다리는 전일 스님과 열반 기다리는 큰스님이 주인공
전일 스님, UFO 또다른 자아로 인식하고 윤회하는 자신 성찰
불교적 세계관, 영화적 상상력으로 난해하지 않게 풀어낸 수작

‘미확인미행물체’는 UFO를 통해 윤회와 환생, 중생을 담아낸 불교영화다. 사진은 영화 ‘미확인미행물체’ 캡쳐.

빈 의자는 기다린다. 빈 의자가 기다리는 것은 단지 손님만은 아닐 것이다. 의자는 달빛과 태양과 소낙비를 차별없이 받아내고 고단한 인간과 집잃은 고양이의 휴식과 같은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연을 기다림의 주머니에 담는다. 인간은 숙명처럼 기다린다. 시골의 노인은 모처럼 고향집을 내려오는 아들을 도착 시간 몇 시간 전부터 시골 정류장의 의자에 앉아 기다린다. 방학만을 기다리는 학업에 지친 초등학생들, 합격 통지서를 기다리는 반지하의 좁은 방에 거처하는 청년실업자들, 평화를 기다리는 전쟁터의 난민들의 절박함도 있다. 기다림은 인간이 죽음의 이름으로 호명되기 전까지 감당해야 한다. 가장 분명한 약속은 죽음일 것이다. 죽음이 당도할 때까지 빈 의자가 기다리는 것 이상으로 우리는 많은 것을 기다림의 목록에 기입한다. 노승은 열반을 기다리고 어린 스님은 아마도 공양과 깨달음의 순간을 기다릴 것 같다. ‘미확인 미행물체’는 미확인 비행물체(UFO)를 기다리면서 수행을 하는 전일 스님과 열반의 시간을 기다리는 큰 스님의 기다림을 프레임에 담아낸 영화다. 칼 세이건에 의하면 ‘인류는 영원무한한 시공간에 파묻힌 하나의 점과 같은 지구에 사는 생명체’이며 수십억 개의 별로 이루어진 은하는 우주에 1000억 개 정도 존재하며 하나의 은하에는 평균 1000억 개의 행성들이 돌고 있다. 세이건은 지구에 존재하는 원소들이 별에도 존재하므로 은하계에 생명체가 존재하기에 적당한 행성은 어림잠아 300억 개로 추산한다. 과학자들은 대체로 외계에 생명체가 존재할 것으로 추정한다. ‘미확인 미행 물체’는 지구에 착륙할 외계 생명체를 통해 불교적 화두를 펼쳐낸다. 전일 스님(서영주 분)은 UFO도 동등한 중생으로 사유하며 UFO를 통해 외계인이 아닌 윤회하는 자신을 성찰한다.

첫 장면에서 전일 스님은 산속의 UFO 착륙장에서 비행물체를 목격한다. 전일 스님은 참 나를 깨우치기 위해 화두를 참구하는 것 보다 산 속에 미확인비행물체의 착륙장을 만들고 외계생명체와 자신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윤회와 업장 소멸에 대해 수행한다. 전일 스님은 산속의 착륙장에서 참선을 하며 외계인의 지구 착륙을 기다린다. 스님은 UFO를 목격하여 보름밤에 자신을 찾아올 외계생명체를 기다린다. 불가의 엄숙한 화두 대신 미확인 비행물체가 전일 스님 참선의 화두로 마음을 지배한다. 전일 스님은 외계생명체도 일반 중생이며 자신을 만나기 위해 지구에 찾아온 또 다른 자아임을 직감한다. 현도 스님(김성권 분)은 큰스님(이홍수 분)의 병환을 치유하기 위해 탕약을 짓고 전일 스님은 보름밤에 당도할 외계생명체와 만남을 준비하느라 마음이 분주하다. 약을 공양하는 전일 스님에게 큰스님은 ‘여기가 바로 꿈 속이다’라고 헛된 기대와 망상을 비울 것을 권한다. 큰스님을 향한 전일과 등을 돌린 큰스님은 두 개의 분할된 창문을 통해 두 수행자의 지향점의 분리를 암시한다. 
 

사진은 영화 ‘미확인미행물체’ 캡쳐.

보름달이 뜬 날 밤에 전일은 연등을 어깨에 걸치고 계곡으로 향한다. 전일은 보름달이 뜬 산 속의 계곡에서 목욕재계한다. 두 개의 얼굴이 바위 뒤에 숨에서 달밤에 목욕을 하는 전일을 엿본다. 한 생명체는 외계인이자 환생할 전일이며 다른 눈은 큰스님이다. 전일 스님의 참선하는 내면에서 큰스님은 외계생명체에게 “윤회는 업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여기온 이유가 뭐냐.  너와 나 모두 똑같은 강에 두 번 몸을 적실 수 없다. 이제 돌아가거라”라고 질책한다. 외계 생명체는 부처님의 형상에서 전일 스님의 형상으로 변한다. 외계 생명체는 전일 스님에게 다가오다가 떠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인생을 강에 비유하여 “사람들은 같은 강에 발을 담그지만 흐르는 물은 늘 다르다”고 갈파하였다. 인간은 각자 인생의 강에 따라 흘러가지만 시대와 역사와 만물은 흐르는 물처럼 끊임없이 변해간다. 강물은 시간이며 몸을 적신다는 것은 환생과 윤회와 가깝다. 전일 스님과 마주하는 외계 생명체는 시간을 거슬러 와서 자신의 전생인 전일 스님을 바라본다. 이 장면은 UFO를 기다리는 전일 스님과 윤회할 외계 생명체의 대면을 통해 윤회를 참구하는 수행의 내면 이미지의 가시화이며 외계 생명체를 영화적으로 해석한 감독의 독창성이 돋보인다.  

외계 생명체는 부처님의 형상에서 전일 스님의 모습으로 디졸브되어 변한다. 이와 같은 변화는 전일 스님이 선업 공덕을 쌓으면 윤회의 순환을 끊고 성불하고 열반에 이를 것을 예견한다. 외계 생명체는 무변광대한 공간과 시간을 향해 사라지고 큰스님의 좌선한  자리에서는 두꺼비가 앉아있다. 두꺼비와 UFO는 큰스님과 전일이 겹치면서 윤회와 환생을 암시한다. 새벽에 큰스님과 전일이 하늘을 바라보면서 대화를 하다가 다시 컷이 바뀌면 옆자리에 큰스님은 부재한다. 이 장면은 다층적인 시간과 공간을 가시화하고 현실과 상상을 모두 아우르는 영화적 표현의 백미이다. 전일은 큰스님의 열반을 예견하고 사찰로 내려간다.    

큰스님은 전일에게 내면의 말씀으로 “전일아 여기가 바로 꿈속이다”를 반복하여 설한다. UFO는 우주로 떠나가고 두꺼비는 법당의 마당으로 향하고 전일은 현재의 사찰에 남아있다. 큰스님과 두꺼비와 외계 생명체와 참선하고 있는 전일은 꿈 속 같은 세계에서 윤회하고 있다. ‘미확인미행물체’는 UFO를 통해 윤회와 환생 그리고 우주의 모든 생명체는 같은 중생이라는 불교적 세계를 난해하지 않은 영화적 상상력에 담아낸 수작이다.  

문학산 영화평론가·부산대 교수

 

[1524호 / 2020년 2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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