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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 넘나든 227일 고공농성, 절수행으로 견뎠다”

  • 사회
  • 입력 2020.02.13 14:04
  • 수정 2020.02.13 15:17
  • 호수 1525
  • 댓글 1

고공농성 회향한 박문진 사노위 위원
영남대의료원 해고노동자로 14년 투쟁
2월13일 극적 합의…“모든 인연에 감사”
박 위원, “일타스님 가르침이 발심 계기”
사노위, 매주 기도법회로 박 위원 지지

영남대의료원 부당해고자 복직 등 합의가 이뤄지면서 박문진 위원이 227일간의 고공농성을 회향하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이로서 14년간 지속된 영남대의료원 사태가 일단락됐다. 사진 박문진 위원 제공.
영남대의료원 부당해고자 복직 등 합의가 이뤄지면서 박문진 위원이 227일간의 고공농성을 회향하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이로서 14년간 지속된 영남대의료원 사태가 일단락됐다. 사진 박문진 위원 제공.

“227일간의 고공농성, 그 고단한 시간 동안 생과 사를 넘나드는 힘든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저를 지탱해 준 것은 바로 부처님 가르침이었습니다.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박문진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영남대의료원 부당해고자)이 227일간에 걸친 고공농성을 회향하고 세상으로 돌아왔다. 영남대의료원과 노조가 해고자 복직과 노조 가입·탈퇴의 자유 보장,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상호노력 등을 골자로 하는 합의안을 타결한 데 따른 것이다. 영남대의료원에서 노조활동을 이유로 부당해고 사태가 발생한지 꼭 14년 만이다.

2월13일 혹독한 농성의 결실을 맺고 지상으로 내려온 박 위원을 축하하기 위해 각계 인사들이 모였다. 그가 고공농성을 시작한 이후 매주 본관 로비에서 기도를 하고, 매월 집중기도법회를 봉행하며 지지와 격려를 아끼지 않은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과 오랜 동지 양한웅 집행위원장도 함께했다. 위원장 혜찬 스님과 위원 법상, 혜문 스님 등은 기도법회를 전담해온 만큼 감회도 남달랐다. 혜찬 스님은 “앞으로 좋은 일만 있길 바란다”며 직접 시루떡을 마련해 축하의 마음을 전했다.

박문진 위원은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출범 초창기부터 함께해온 사회노동위원이다. 2007년 부당해고 이후 지난하게 이어진 투쟁으로 적극적인 활동은 못했지만, 돈독한 불심을 기반으로 세월호 등 굵직굵직한 사건마다 힘을 보탰다. 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 당선 이후 자택 앞에서 해고자 복직과 노조 정상화를 위해 57일간 3000배 정진을 진행하는 등 ‘절’을 우리 사회 노동운동의 방식의 하나로 안착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74m높이의 본관 건물 옥상에서 고공농성 중인 박문진 위원. 생사를 넘나든 경계에서 안전을 위한 심리적 울타리는 35cm 높이의 난간이 다였다.
74m높이의 본관 건물 옥상에서 고공농성 중인 박문진 위원. 생사를 넘나든 경계에서 안전을 위한 심리적 울타리는 35cm 높이의 난간이 다였다.

그런 그가 지난해 7월, 영남대병원의 해고자 복직과 노조활동 보장 등을 요구하며 의료원 본관 옥상에 터를 잡았다. 227일,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농성을 시작할 무렵 타는 듯한 더위는 곧 살을 에는 혹독한 추위로 변했고, 지상에 잠시도 발을 딛지 못하는 불안정한 상황에서 더위와 추위, 비바람을 온몸으로 견뎌냈다.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하고 쪽잠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연일 지속되는 육체적 고됨은 정신까지 뒤흔들어놓고는 했다.

“74m 고공에서 안전을 위한 유일한 심리적인 울타리는 불과 35cm 높이의 난간이었습니다. 마음이 조금만 약해지면 극단적인 생각이 올라왔어요. 사회에 대한 원망부터 모두가 내 죽음을 바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자괴감 등. 그럴 때 아래를 내려다보면 뛰어내리는 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져요. 불교가 아니었다면 오늘의 회향은 쉽지 않았을 겁니다.”

농성장에 모셔진 반가사유상과 전태일 열사의 사진.
농성장에 모셔진 반가사유상과 전태일 열사의 사진.
명상 때 사용한 싱잉볼과 경전

생사의 경계에 머문 227일, 매일 500배 기도를 하고 경전을 읽었다. 끊임없이 몸을 낮춰 절을 하며 마음을 비워내는 과정에서 지금의 고난을 딛고 나아갈 방향이 명확히 드러났다. 미륵반가사유상과 전태일 열사의 사진을 모셔두고 매일 30분 이상 명상을 했고. 부처님과 전태일 열사의 삶을 되새겼다. 그래도 원망이나 욕심이 솟을 때면 일타 스님의 가르침을 되새겼다. “모든 것은 변한다. 욕심내거나 집착하지 말거라.” “절은 비우는 행위다. 항아리에 담긴 쓰레기와 같이 그 속을 채운 온갖 욕심과 온갖 찌꺼기를 비워낸다는 생각으로 절을 해봐라.”

30년 전, 노조에 가입한 풋내기 간호사 시절 기억이다. 당시 불자가 아니었던 그는 일타 스님의 건강을 돌보기 위해 해인사 지족암을 자주 찾았다. 일타 스님은 따뜻하고 섬세했다. 쉽고 재미있는 비유로 불법을 알려줬다. 말 그대로 소참법문이었다.

“사실 그땐 스님의 말씀에 담긴 큰 뜻을 미처 알지 못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깨닫게 되는 바가 있었죠. 노동운동을 하면서 불자가 됐고 또 절을 하게 된 것도 스님의 가르침을 따른 거예요. 나를 둘러싼 인연의 씨앗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고 저의 가치관을 확고히 했죠.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인연입니다.”

이후 그는 힘든 시기가 올 때마다 해인사 저녁예불에 참석해 부처님 가르침을 되새기고 새로 나아갈 힘을 얻었다. 일타 스님을 통해 우연히 만난 불교가 30년 세월 동안 박 위원의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이 된 셈이다.

사노위 위원장 혜찬 스님과 위원 스님들과 '고공수행 회향'을 축하하는 박 위원.
사노위 위원장 혜찬 스님과 위원 스님들과 '고공수행 회향'을 축하하는 박 위원.

사회노동위원장 혜찬 스님도 과거 지족암에서 맺은 인연이다. 고공농성에 돌입한 박 위원에게 스님은 웃으며 “기왕 입재했으니 한소식하고 내려오라”고 했다. 그리고 매주 병원 로비에서 기도하며 그의 ‘고공수행’을 격려했다. 박 위원은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 한분 한분이 감사하지만 특히 스님들이 집전하는 기도법회는 저뿐 아니라 투쟁하는 노동운동 관계자, 환자와 환자 가족을 포함해 외롭고 고통 받는 모든 이들을 위로하는 법석이었다”며 “스님들의 기도가 심적으로 크나큰 힘이 됐다”고 깊은 감사를 전했다.

이번 합의가 체결되면서 노조 가입과 탈퇴의 자유보장 및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노사 상호간 노력, 민형사상 문책 금지 및 법적 분쟁 취하 등이 이뤄졌다. 박 위원의 ‘고공수행’은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셈이다. 다만 박 위원은 3월1일자로 복직 후 곧바로 사직한다. 정년을 앞둔 데 따른 합의다.

그는 “노동운동 역시 투쟁을 넘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우리 사회가 하나의 공동체, 즉 인드라망으로서 더 행복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며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공동체’로서 노동조합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 자신의 권리를 보호받고 부당함에 깨어있고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처님 가르침에 생선을 싼 종이는 비린내가 나지만 향을 싼 종이는 향기롭다고 했어요, 제가 정말 자주 말하고 곱씹는 내용입니다. 내가 향기로운 사람이 되고 나와 함께 일하는 이들이 향기로운 사람이 되면 우리 사회 역시 자연히 향기로운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그것이 바로 불자인 제가 지향하는 노동운동의 가치입니다."

송지희 기자 jh35@beopbo.com

지상으로 내려오는 박위원. 사회노동위 제공.
지상으로 내려오는 박위원. 사회노동위 제공.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는 매주 본관 로비에서 기도법회를 봉행하며 박 위원에게 힘을 보탰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는 매주 본관 로비에서 기도법회를 봉행하며 박 위원에게 힘을 보탰다.
박위원이 앞으로 좋은 일만 있길 바라는 의미에서 혜찬 스님이 마련한 시루떡을 썰며 환희 웃고 있다.
박위원이 앞으로 좋은 일만 있길 바라는 의미에서 혜찬 스님이 마련한 시루떡을 썰며 환하게 웃고 있다.

[1525 / 2020년 2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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