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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율장과 남녀평등

기자명 정원 스님

율장엔 비구니승단 하대할 어떤 당위성도 없어 

비구·비구니 상호 존중이 의무
팔경법을 차별로 읽지 말아야
지킬지 말지 선택은 비구니 몫
현대 승단 차별은 율장과 무관

율장은 현대인의 관점에서 불평등이라고 주장하는 몇 가지 장치들이 안정된 비구승단에게 사회적으로 열악한 대우를 받는 비구니 승단의 수행과 교육을 돕도록 책임을 지우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예전에는 차별이니 불평등이니 하는 글을 읽으면 공감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율장을 이해하고 나니 어떤 주장들에 대해서든 세속적 관점에 의해 법과 율이 왜곡되거나 오해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게 된다. 물론 어떤 논의들은 바른 현실인식과 불교의 발전적 변화를 희망하는 입장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수긍되는 부분이 있지만 율장을 세간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비판하는 것은 수행의 본질과는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난 후부터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불평등 문제에 대해서 말하자면 율장 속 부처님의 음성 어느 곳에서도 비구승단이 비구니승단을 함부로 대하거나 하대할 근거와 당위성을 제공하지 않는다. 또한 비구이기 때문에 비구니에게 존경을 받아야 할 권리를 부여한 적도 없다. 승단은 서로 독자적으로 운영하되, 교류가 필요한 경우에는 합당한 갈마의 형식을 지켜야 했다. 각각의 승가는 6화합에 의해 화합해야 하고, 모든 갈마는 비구는 비구끼리 비구니는 비구니끼리 해야 유효하다. 비구승가와 비구니승가는 서로를 존중하며, 부처님 정법의 실천자로서 서로의 증상을 돕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

비구니 승가가 비구승가에 가르침을 청하면 비구승단에서는 엄격한 자격요건을 갖춘 교수사를 갈마로 선출하여 파견해야 한다. 이런 역할은 부처님께서 비구승단에 부여한 의무이기도 했다. 비구니승단은 그런 비구승단과 존경할 만한 비구를 존중할 의무가 있었다. 혹자는 이부승 수계나 팔경법 자체를 여성차별의 수단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이 또한 세간법으로 출세간을 해석하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보게 된다. 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이신 부처님께서 불평등과 차별적 사고를 당연시하신 분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2600년 전 인도사회의 여성들이 마주한 난관을 헤아려 여성 출가자에 한해 특별히 정하신 팔경법은 엄밀히 말하면 지킬지 말지 선택의 주도권이 비구니 자신에게 있다.

설령 어떤 비구니가 안 지키더라도 그것은 자신의 범계(犯戒)에 해당하고 참회를 통해 청정성을 회복할 수 있는 비구니 자신의 문제일 뿐이다. 비구승가 혹은 개인이 강압적으로 요구할 수 있도록 주어진 권리가 아니다. 이것은 비구와 비구니의 바라제목차만 봐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만약 누군가가 팔경법을 언급하면서 반시대적 오류가 있는 정책들을 옹호하고 비구니 승단의 역할과 활동에 대해 억압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그는 승가의 화합을 깨뜨리고, 쌍방의 증상을 방해하며, 율장은 물론 경장과 논장까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반증이다.

그래서 특히 초학자는 어떤 일보다도 출가자라는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인지하고 기초를 잘 다지기 위해 율장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율장과 관련한 여러 가지 오해나 편견들에 대해서는 ‘승가의 입장’에서 깊고 세밀한 연구와 사유가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 승가의 차별적 요소로 인식되고 있는 각종 제도나 법령은 엄밀하게는 율장의 문제가 아니라 율의 근본정신을 충분히 숙지한 상태에서 논의되고 결정된 정책들이 아니기 때문에 불평등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것 같다.

율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수행자가 많아지면 진정한 인간평등이 이뤄지지 않을 수가 없다. 율장에 대한 이해와 지계의 실천을 통해 수행의 기초를 튼튼히 하고 중생을 위한 자비심으로 전법을 지속할 때 출가자들은 승단 내외부에서 진정으로 존경받게 될 것이고, 정법의 실천자로써 많은 이들에게 행복의 열쇠를 건네 줄 수 있을 것이다.

정원 스님 봉녕사 금강율학승가대학원 shamar@hanmail.net

 

[1525 / 2020년 2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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