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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제6칙 협산선자(夾山船子)

물에 빠진 순간 분별심 내려놔

자신 법 이을 제자 찾던 선자
협산에 갈고리 벗어난 경지 물어
단도직입적 속내 말하길 기대
귀 막는 시늉 보며 제자 점찍어

협산이 선자를 방문하자, 선자가 물었다. “천 자나 되는 낚싯줄을 드리운 것은 깊은 물속에 뜻을 두었기 때문이다. 세 치의 갈고리를 벗어난 경지를 그대가 말해보지 않겠는가.”
협산이 뭐라 말하려 하자, 선자가 밀쳐서 물속에 빠뜨려버렸다. 협산이 헤엄쳐 나오자 다시 밀치고 말했다. “자, 말해 보라. 어서 말해 보라.”

협산이 뭐라고 말하려고 하자 선자가 또 밀쳐버리는 찰나 협산이 활연대오하였다. 이에 고개를 세 번이나 끄덕여보였다. 선자가 말했다. “낚싯줄을 드리우는 것은 그대 마음이지만 맑은 물 흐리지 않아야 뜻대로 성취된다.”

마침내 협산이 정식으로 물었다. “떡밥을 꿰어 낚싯줄을 드리우는 스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선자가 말했다. “낚싯줄에 부표를 붙여 푸른 물에 드리우는 것은 물고기가 있나 없나 살피려는 것이다. 자, 말해 보라. 어서 말해 보라.”
협산이 말했다. “말의 뜻은 깊지만 방도가 없고 혓바닥은 놀리지만 아무런 말도 없습니다.”
선자가 응수했다. “모든 강물에 낚싯줄을 던져봐야 비로소 금빛 잉어를 낚는다네.”
협산이 자신의 귀를 틀어막자, 선자가 말했다. “모름지기 그래야지.”

선자덕성(船子德誠)은 생몰 연대와 고향 및 속성이 모두 미상이다. 후에 화정(華亭)에서 뱃사공 노릇을 하면서 왕래하는 사람들에게 설법을 하였기에 선자화상(船子和尙)이라 불렸다. 협산선회(夾山善會, 805~881)는 도오원지(道吾圓智, 769~835)의 권유에 따라 선자덕성(船子德誠)에게 참문하고 그 법을 이었다. 법맥은 약산유엄 - 선자덕성 - 협산선회이다.

위의 문답은 협산이 화정의 선자덕성을 처음 찾아뵈었을 때의 상황이다. 스스로 뱃사공 노릇으로 삶을 살았던 선자덕성이 드리운 낚싯줄은 자신의 법을 이을 제자를 찾는 수단이었다. 선자는 사람을 공짜로 건네주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선법을 설하여 그 깜냥을 살펴보았다. 마침 도오원지에게서 소식을 듣고 협산을 기다렸다가 갈고리를 벗어난 경지에 대하여 물었다. 갈고리는 그대로 온갖 수단과 방법과 절차를 상징한다. 그 모든 방식을 벗어나 단도직입으로 협산의 속내를 말해보라는 것이다. 질문을 받은 그 찰나에 협산은 이미 선자덕성의 낚싯바늘에 제대로 걸려들었다. 무어라 한마디 답변을 건네보기도 전에 벌써 물에 꼬꾸라져버렸다. 갑자기 물에 빠진 순간 협산은 자신의 모든 분별심과 어설픈 지식을 몽땅 내려놓고 오로지 죽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는 바로 그 순간의 경험으로 활연대오할 수 있었다.

‘낚싯줄을 드리우는 것은 그대 마음이지만 맑은 물 흐리지 않아야 뜻대로 성취된다’는 말은 수행은 물론이고 깨침과 부처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어떠한 집착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협산은 모든 강물에 낚싯줄을 드리우듯이 모든 종류의 사람을 겪으면서 온갖 수행을 터득한 스승의 가르침조차도 번거로워 스스로 귀를 틀어막는 시늉을 하였다. 이로써 선자덕성은 그토록 기다리던 제자를 만나 법을 전할 수 있었다.

‘말뜻은 깊지만 방도가 없고 혓바닥은 놀리지만 아무런 말도 없습니다’는 말처럼 이후로 협산은 20년 넘도록 불조의 가르침마저도 번거로운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런 점에서 협산에게 상근기의 사람은 말을 듣는 순간 깨침을 터득하지만, 중하근기의 사람은 바람에 이는 물결을 따라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는 부평초와 같은 존재로 간주되었다. 협산은 심지가 굳은 납자를 스스로 미오(迷悟)와 생사(生死)의 분별을 직절(直截)하는 지혜의 보검으로 드러냈는데, 지혜의 보검이 스승에게는 황금잉어였다. 여기에서 선자덕성이 낚았던 금빛 잉어란 다름아닌 협산선회였다. 황금잉어는 어떤 개념과 수단에도 집착의 그물을 벗어난 활달불기(豁達不羈)한 선기를 상징한다. 그런데 황금잉어는 무얼 먹고 사는 걸까.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25 / 2020년 2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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