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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6장 선과 교의 차이

기자명 선응 스님

“마음 증득한 자는 실상 깊이 설해”

곡소리 듣고 몸‧마음이 기쁘고
주먹다짐 보며 본래면목 깨쳐
이것이 선‧교의 깊고 얕은 차이
선은 마음으로 즉시 깨닫는 것 

5장 ‘선교일치’에 이어, 6장에서는 ‘선교의 차이’를 밝힌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에서 잃어버리면 ‘붓다가 꽃을 들어 보인 소식(염화미소)’도 교학의 자취가 될 것이고, 마음에서 증득하면 ‘추언세어(麤言細語)’가 모두 ‘교설 외에 별도로 전하는’ 선종의 뜻이 될 것이다”라고 한 본론은 ‘이심전심’의 법이라고 해도 그 말에 집착한다면 이미 선종의 뜻이 아니며 선이란 삼라만상의 일체 법에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추언세어’란 ‘전등록’에서 “총명한 사람들은 선종과 유교경전을 모두 알고 지혜로 분별하는 것은 천한지식으로 추언이다”라고 한다. ‘기세경’에서는 “탐욕, 성냄, 어리석음을 추언”이라고 하고, 소동파는 “거친 말 세밀한 말 모두 가리지 않고, 봄 지렁이 가을 뱀 마음대로 그린다”고 하니, 교설과 공안을 포함한 일체 법에 걸림 없는 해탈의 경지를 말한다. ‘종문개시록집요’에서 “진실 득한 사람은 ‘추언세어’가 선의 마음에 계합한다”라고 한 것과 같다. 또 언종(557∼610) 스님이 “백로가 매미 붙잡는 것만 집착하고, 회광반조 후에 노란 옷의 참새에는 몽매하다”고 하여 교설과 구두선에 집착하고 깊이 참선하지 않는 자를 경책한 것과도 같다. 

그러므로 선은 ‘마음을 바로 보는 것’이고 ‘문자와 언설이 아닌 법’을 듣는 것이다. 선사가 해석하시길, “법은 이름이 없기 때문에 말로 할 수 없으며 법은 형상이 없기 때문에 마음이 미치지 못한다. 말로 헤아리는 것은 근본 심왕(心王)을 잃은 것이다. 근본 심왕을 잃으면 ‘세존께서 꽃을 들은 것과 가섭의 미소’ 등 옛 말만 하면 결국 죽은 것이다. 마음을 증득한 자는 단지 길거리 이야기만이 아니라 법의 요체를 잘 설하고 제비의 지저귐에 이르기 까지 실상을 깊이 설한다. 그러므로 보적(720∼814)선사가 곡소리를 듣고 몸과 마음이 뛸 듯이 기뻐하였고, 보수(?∼9세기)선사가 주먹다짐을 보고 본래면목을 활연히 깨달았던 것이다. 이상은 선과 교의 깊고 얕음을 밝힌 것이다”라고 했다.

이러한 해석은 ‘유마경’에서 “법은 모양을 떠나고 대상이 없기 때문에 법은 이름과 글자가 없고 언어가 끊어졌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무상’이란 개념과 형상을 표상하여 분별하지 않는 것이다. ‘본래면목’은 말과 언어로 표현하거나 말할 수 없으며 분별을 떠난다. 그래서 ‘화엄경’에서 “일체법이 마음의 자성임을 알아 지혜의 몸을 성취하면 다른 깨달음을 연유하지 않는다”고 하며, ‘역대법보기의 대력(766∼779) 보당사화상, 돈오대승선문’에서 “수행계위와 점수를 연유하지 않고 바로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선혜대사어록(心王銘)’에서 “마음이 곧 부처이니 이 심왕을 제외하고 다시 다른 부처가 없다”고 한 것은 선은 마음을 보는 것으로 대상에서 찾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선종의 1700 법칙조차 ‘독을 약으로 쓴’ 허황된 것으로 보았다. 서산대사의 해석은 ‘현사광록’에서 현사사비(835∼908)가 “법좌에 올라앉아 제비가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실상을 깊이 설하고 법의 요체를 설한다. 교설과 문자만이 아니라 바람소리 빗방울이 모두 달마가 가르킨 선이다”라고 한 것을 말한다. 또한 보적선사가 상주가 곡하는 소리를 듣고 깨달은 고사(오등회원)와 보수선사가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두 사람이 싸우면서 ‘너는 왜 이다지도 면목이 없느냐?’고 하는 소리를 듣고 깨달은 것을 예로 하여 ‘선과 교의 차이’를 밝히신 것이니, 곧 선은 언어와 문자가 아닌 마음으로 ‘본래면목’을 즉시에 깨닫는 것을 설하신 것이다. 

게송에서 “밝은 구슬을 손바닥에 놓고서 이리저리 마음대로 굴리는구나”라고 한 이 게송은 원오선사의 ‘벽암록’에서 “밝은 거울이 대에 있고 밝은 구슬이 손바닥에 있는 것과 같아서 오랑캐가 오면 오랑캐가 나타나고 한인이 오면 한인이 나타난다”고 한 내용이다. 마음에 분별이 없으면 ‘본래면목’을 깨닫게 되니 경계마다 비추어 주고 눈 밝은 선각자의 법을 전하는 것이다.

선응 스님 동국대 불교학 박사 sarvajna@naver.com

 

[1525 / 2020년 2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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