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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건포도 먹기 명상

마음챙김에 필요한 통찰력 기르는 수행

잠시 모든 일에 대한 판단 유보하고
현재 상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이전에 보지못했던 것 발견하게 돼

매순간 삶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마음챙김 수행에 필요한 통찰력을 기를 수 있는 핵심적인 수행이 ‘건포도 먹기 명상’이다. 마음챙김은 과거나 미래에 집착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판단을 내려놓고, 현재 순간에 일어나는 일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잠시 모든 일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당면한 미래의 목표도 제쳐 놓은 채, 자신이 바라는 대로가 아닌 현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행동의 속도를 늦추고 감각적 경험의 모든 측면에 신중하게 관심을 기울이면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건포도의 냄새는 상상했던 것과 다를 수도 있다. 혀끝에서 느껴지는 질감 또한 낯설거나 진기한 경험이 될 것이다. 

함께해 보자. 건포도 한 알을 집어 손바닥 위에 놓는다. 온 신경을 건포도에 집중하면서 마치 태어나서 처음 보는 물건인 것처럼 관찰해보자. 먼저 아주 조심스럽게 온 마음을 기울여 건포도를 주의 깊게 바라본다. 건포도의 구석구석을 자세히 살펴본다. 가장 반짝이는 부분과 빛을 반사하는 부분, 움푹 들어가서 어두운 부분, 접히고 주름진 부분 등을 살핀다.

이제 손가락으로 건포도를 잡고 질감을 탐색한다. 눈을 감아야 촉감이 더 예민해진다면 눈을 감아 보자. 손가락으로 건포도를 이리저리 굴리면서 질감을 느껴보자. 어떤 느낌이 드는가? 부드러움, 딱딱함, 탄력성, 끈적거림 등 손에 닿는 느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차갑거나 따뜻하거나 어느 정도의 무게감이 느껴질 수도 있다. 

이번에는 코 밑으로 건포도를 가져가 숨을 들이쉴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관찰해보자. 달콤하거나, 톡 쏘거나, 매운 냄새가 나는가? 어떤 냄새든 온전히 알아차린다. 아무 냄새가 없다면 냄새가 없음을 알아차린다. 향기를 들이마실 때 입이나 뱃속에서 일어나는 것에 주의를 기울여 보자. 조금은 엉뚱해 보이겠지만 건포도를 귀에 대고 문질러보면 어떤 소리가 들릴 수도 있다.

이제 건포도를 천천히 입으로 가져가면서 손과 팔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핀다. 혀가 건포도를 받아들이기 위해 어떻게 하는지도 관찰해 보자. 건포도를 정확히 어디에, 어떻게 위치시켜야 하는지도 살핀다. 그리고 천천히 건포도를 입안에 살짝 넣은 뒤 씹지 말고 혀로 이리저리 굴리면서 적어도 30초간 건포도의 느낌에 온 신경을 집중해 보자. 혀 위에 놓인 건포도가 촉촉한지 건조한지 열린 알아차림으로 느껴보자. 

씹을 준비가 되었으면 건포도가 입안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 알아차려 보자. 의식적으로 한 번, 또는 두 번 깨물면서 어떤 감각이 느껴지는지를,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순간순간 그것이 어떻게 변하는지 세세히 관찰해 보자. 이때 입안에 어떤 느낌이 퍼지는지 살핀다. 건포도가 내는 어떤 맛이라도 있는 그대로 느껴본다. 이빨로 건포도를 씹을 때의 질감도 느껴본다. 아직 삼키지는 말고 천천히 여러 차례 건포도를 씹는다. 계속 씹다 보면 삼키고 싶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삼키기 전에 그 충동을 온전한 알아차림으로 경험해 본다. 건포도를 삼키기 위해 혀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주의 깊게 관찰한다. 건포도를 삼키면서 느껴지는 감각을 그대로 따라갈 수 있는지 본다. 가능하다면 삼킨 건포도가 위장까지 내려가는 느낌을 의식적으로 감지해 본다. 마지막으로 건포도를 다 먹은 다음의 느낌을 있는 그대로 다시 느껴보는 시간을 갖는다. 

건포도 한 알을 먹는 매우 간단한 행위라도 그것에 주의를 의도적으로 집중하면 전혀 다른 경험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지는 모든 기쁨이 우리가 제대로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에 흘러가 버린다. 이처럼 우리는 일상의 많은 부분을 놓치면서 살고 있을 것이다. 진정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은 오직 ‘지금 이 순간’ 뿐인데도 우리는 미래나 과거에서 살고 있다.

신진욱 동국대 불교대학원 겸임교수 buddhist108@hanmail.net

 

[1525 / 2020년 2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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