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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친근한 품격이 있는 음악-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기자명 김준희

새로운 아이디어도 전통과의 균형서 가치 드러나

아름다운 표현력으로 ‘프랑스의 모짜르트’라 불리운 생상스
친구 요청으로 만든 작품집 ‘동물의 사육제’ 사후 공개로 조명
연습을 위한 연습 풍자적으로 묘사…올바른 좌선 돌아보게 해

둔황석굴 103호 굴의 유마힐 변상도.

프랑스 작곡가 까미유 생상스(1835~ 1921)는 후기 낭만주의 시대에 네오 클래시즘 (Neo-Classicism)으로 단정하고 정갈한 음악을 펼쳤던 음악가이다. 그는 프란츠 리스트를 연상시키는 비르투오소적인 면과 ‘프랑스의 모차르트’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표현력을 두루 갖춘 타고난 피아니스트였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는 객관적이고 절제미 넘치는 음악세계가 담겨있다. 

또한 저널리스트로써 경쾌하고도 유려한 문장으로 읽기 쉽고 유익한 기사를 쓰기도 했다. 생상스는 협주곡, 교향곡, 실내악곡, 합창곡 등 다양한 장르에서 규모가 큰 작품들을 남겼다. 특히 피아노와 함께 오르간 연주에도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던 그는 세 번째 교향곡에서 관현악에 오르간을 넣는 파격적인 시도를 하기도 했다

생상스가 ‘오르간 교향곡’이라는 그의 역작을 발표할 시기를 즈음하여(1886년) 오스트리아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을 때, 그는 흥미로운 작품 하나를 쓰게 된다. 열 네 개의 작은 곡으로 구성된 ‘동물의 사육제(Le carnaval des animaux)’라는 제목의 실내악 작품이다. 그의 친구였던 첼리스트 샤를 르부크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집 중 열 세 번째 곡인 ‘백조’는 잔잔한 물결 위에 고고하게 움직이는 백조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백조’의 서정성 넘치는 첼로 선율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곡으로 단독으로 자주 연주 되며, 생상스가 죽기 전 출판된 유일한 곡이었다.    
생상스는 이 유머러스한 작품을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놓고 연주하려는 의미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출판되는 것을 꺼려했다. 평소 진지한 작곡가라고 평가 받았기에 새로운 이미지의 작품으로 그간 쌓아온 명성에 금이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사후에 이 곡이 출판되었을 때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은 생상스의 품위 있는 음악을 재조명 하게 되었다.

‘동물의 사육제’는 그동안의 실내악 작품들과는 다소 다른 악기 구성을 보인다. 특히 두 대의 피아노가 전면에 배치된 구성으로 단 한 곡을 빼고는 곡의 진행을 이끌거나 바탕이 되는 역할을 한다.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구성에서는 마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과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서두에 이어 등장하는 ‘사자왕의 행진’은 당당하고 위엄이 넘치는 동물의 왕 사자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 같으면서도 어딘지 모르는 해학도 담고 있다.

두 번째 곡 ‘암탉과 수탉’에서는 피아노와 현악기에 뒤따라 나오는 클라리넷의 다소 우스꽝스러운 선율이 수탉과 암탉의 몸짓을 묘사하는 듯하다. 이 곡은 프랑스 작곡가 라모의 ‘암탉’을 연상시키는데 ‘지극히 프랑스적인 작곡가’로 여겨졌던 생상스의 면모를 잘 드러내고 있다. 참신하면서도 친절한 묘사와 익숙한 선율로 다가오는 ‘동물의 사육제’는 전체적으로 재가자들을 위한 경전인 ‘유마경’을 떠올리게 한다. 
 

생상스가 작곡한 작품집의 악보.

20세기 들어 클래식 음악을 친숙하게 알려주기 위한 작품들(세르게이 프로코피에프의 ‘피터와 늑대’, 벤자민 브리튼의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 등)이 종종 작곡되었다. 

하지만 그보다 한 세기 앞서 작곡된 ‘동물의 사육제’는 개인적인 소규모 음악회에서 연주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참신한 기법으로 묘사된 각각의 동물들의 모습으로 클래식 입문자들에게 사랑받고 있으며,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용 클래식 음악으로 추천받기도 한다.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을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크 오펜바흐의 오페라 ‘지옥의 오르페우스’에 등장하는 경쾌한 캉캉 선율을 느리게 편곡하여 네 번째 곡 ‘거북이’의 선율로 차용한 것은 진중한 음악가로만 여겨졌던 생상스의 또 다른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정신없이 빠른 템포로 연주되는 캉캉 선율을 느린 동물 ‘거북이’의 묘사에 차용한 것과 지겨울 정도의 느린 선율로 변화시키면서 유머와 익살을 표현한 것, 그러면서도 본 선율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것은 ‘불이(不二)’를 표현한 것과도 같은 느낌이다. 

헥터 베를리오즈의 ‘파우스트의 저주’ 의 ‘요정의 춤’의 선율에서 가져온 다섯 번째 곡 ‘코끼리’는 생상스의 비유와 묘사를 더욱 잘 보여준다. 

‘거북이’와 더불어 느림의 상징인 동물의 더딘 움직임을 가장 낮은 악기인 더블베이스의 왈츠로 나타내고 있다. 대비되는 피아노의 천진난만한 선율과 함께 등장하는 코끼리의 무겁지만 전진을 위해 힘을 내는 선율이 감동적이면서도 동시에 입가에 웃음을 머금게 한다. 열두 번째 곡인 ‘화석’에서도 생상스 자신의 교향시 ‘죽음의 무도’의 선율과 프랑스 동요인 ‘아, 어머니께 말씀드리죠’의 선율을 등장시킨다. 

선율의 차용은 전통과 자유의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원래 ‘사육제(카니발)’는 가톨릭 문화권에서 2월 중하순에 열리는 대중적인 축제를 가리킨다. 생상스는 이 곡에서 카니발의 정신, ‘구속에서 벗어난 자유’를 표현하고자 했고, 자유분방함 속에 음악적 메시지를 담고자 했던 것 같다. 

일곱 번째 곡인 ‘수족관’은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들의 신비스러운 몸짓을 첼레스타의 영롱한 선율로 묘사하고 있다. 두 대의 피아노가 빚어내는 환상적인 물결의 모습과 유리에 비친 물고기들의 모습까지 잘 표현된 이 곡은 ‘백조’에 이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곡이다. 이 곡의 제목이 ‘물고기’ 가 아니라 ‘수족관’ 이라는 점도 청중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부분이다.

열한 번째 곡인 ‘피아니스트’는 두 명의 피아니스트가 유명한 연습곡인 ‘하농(샤를르 루이 하농, 프랑스의 교육자이자 피아니스트. 우리나라에서 하논 교재로 잘 알려져 있다)’ 교재의 첫 곡을 연습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동물의 사육제’를 이끌어가고 있는 두 명의 피아니스트가 주인공이 되는 이 곡에서는 갑자기 두 명의 피아니스트가 익숙한 연습곡의 선율을 다소 서투르게 연주하기 시작한다. 

생상스의 초상화.

동물이 주체가 되는 작품에서 난데없이 사람이 등장하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지만, 순간 아마추어가 되어버린 것 같은 연주는 의문스럽기도 하다. 틀에 박힌 사고로 무작정 연습을 위한 연습, 또한 연습곡의 앞부분만을 고집스럽게 반복하는 피아니스트의 모습을 상당히 풍자적으로 묘사한 이 곡을 들으며 ‘좌선(坐禪)’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유마거사가 “무조건 앉아있는 것만이 좌선이 아니다”라고 이야기 하며 올바른 좌선에 대해 설명한 부분이 떠오른다.  

“좌선이란 삼계(三界)에 있으면서도 몸과 마음의 작용을 나타내지 않을 때를 말하며, 번뇌와 작용이 완전히 사라진 멸진정(滅盡定)에서 일어나지 않으면서도 온갖 위의(威儀)를 나타내는 것, 부처님의 도법을 버리지 않고 범부의 일을 나타내는 것입니다.”(제3 제자품) 

‘유마경’은 문수보살을 비롯한 부처님 제자들의 체험을 통해 얻은 경험에 대한 의견을 담고 있고, 불이(不二)를 주제로 한 일종의 심포지움과 같은 경전이다. 생상스가 묘사한 각각의 동물들의 선율을 제자들의 대화로 비유해 본다. “사과나무가 사과를 맺듯이 운명처럼 작품을 썼다”는 그의 말처럼 새로운 아이디어도 고전적인 절제미와 균형의 원리 속에서 빛나고 있는 ‘동물의 사육제’. 자유롭지만 품격을 갖춘 선율들을 들으며 재가자들의 실천적 수행 참여와 청정한 삶에 대해 생각해본다.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525 / 2020년 2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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