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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과 전염병

  • 데스크칼럼
  • 입력 2020.02.21 15:51
  • 수정 2020.02.25 13:44
  • 호수 1526
  • 댓글 2

부처님, 병자를 제자로 받아
사람들에 호소해 물품 마련
전염병 돌수록 자비 새겨야

인류에게 전염병의 두려움은 전쟁을 능가했다. 고대부터 맹위를 떨쳤던 천연두는 치사율이 20~60%에 이르렀고 국가의 흥망을 좌우했다. 전염성이 높고 합병증도 심한 홍역과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도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을 생사의 기로에 직면케 했다.

전염병 피해는 부처님 당시의 인도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의왕(大醫王), 약사여래(藥師如來) 등 불보살님 명호와 불경에 ‘약(藥)’과 ‘의(醫)’가 많이 들어간 것은 부처님 위신력으로 질병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의 간절함과 무관하지 않다.

팔리어 율장인 ‘마하박가’에는 마가다국에 창궐했던 전염병 얘기가 나온다. 정리하면 이렇다. 어느 해 여름 마가다국을 휩쓴 전염병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숱한 사람들이 나병, 종기, 습진, 결핵, 간질 등 악성 전염병에 걸려 괴로워했다. 일단 병자가 되면 일반 사람들이 극도로 기피했다. 그들이 보이면 돌을 던져 내쫓았기에 병과 굶주림으로 죽어가야 했다.

병자들은 마가다국 최고 명의 지바카를 찾아가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지바카도 왕과 후궁들, 수행승들을 돌보느라 여력이 없었다. 지바카는 딱한 사정은 알겠지만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다며 용서를 구했다.

모두들 실망했을 때 병자 한 사람이 말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승원으로 가십시다.” “찾아가서 뭐하자는 거요. 거기서도 쫓겨날 텐데…” “아니요, 세상 사람들이 다 등지고 돌을 던지더라도 비구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우리를 받아주실 겁니다.” “받아주면 어떻게 되나요?” “여러분, 우리도 출가하고 싶다고 말합시다. 그러면 지바카님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우리를 치료하지 않겠소.” 그들도 승가공동체는 부귀와 귀천의 차이를 두지 않음을 잘 알았다.

이들은 수행승들이 있는 승원으로 가 간청했다. “저희들은 출가하고 싶습니다. 부디 저희들을 버리지 마소서.” 이들은 마침내 승낙을 얻어냈고 출가자의 삶을 시작했다. 승원의 다른 비구들이 정성을 다해 돌봤고 의사 지바카도 찾아와 치료했다. 병자들이 잇따라 출가하면서 약품이 바닥나고 먹을 것이 없어졌다. 비구들은 거리로 나가 사람들에게 외쳤다.

“여러분, 병든 이들을 위해 음식과 약을 베풀어주시오. 병든 이들을 치료하는 수행승들을 도와주시오.” 비구들의 호소에 사람들은 앞다퉈 음식과 의약품을 가져왔고, 그 덕에 많은 사람들이 치료를 받아 완쾌될 수 있었다.

부처님이 사밧티의 기원정사에 계실 때였다. 팃사라는 비구가 피부병에 감염되자 다른 비구들이 돌봐주었다. 하지만 한참이 지나도 차도가 없고 몸에서 썩은 냄새가 진동하자 ‘풋티갓타(악취 풍기는) 팃사’라고 부르며 멀리했다. 부처님이 이를 알고 찾아와 직접 물을 데워 피고름으로 가득한 몸을 씻겨주고 손수 가사를 빨았다. 다른 비구들도 달려와 일을 거들었다. 부처님은 깨끗해진 팃사의 몸에 잘 마른 가사를 입혀주고 그를 위해 마지막 법을 설했다.

‘오래지 않아 이 몸 흙바닥에 버려지고 마음 또한 어디론지 사라지리. 그때 덧없는 이 몸은 실로 썩은 나무토막보다 쓸모없으리라.’ 부처님의 정성스런 설법에 팃사는 큰 깨침을 얻어 아라한이 되었고 고요히 열반에 들었다.

작년 12월 발병한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되더니 한국에서도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다. 이제 일상에서 언제라도 전염병에 옮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전염병의 확산을 막으려면 스스로 일상에서 경계하고 확진자는 격리가 불가피하다. 그렇더라도 전염병만 치명적인 것은 아니다. 전염병이 초래하는 불신, 원망, 분노 또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세상이 각박하고 사는 일이 두려워질수록 어떤 상황에서든 자비로움을 잃지 않았던 분들을 기억하고 떠올릴 일이다. 그게 모두의 존엄을 지키는 길이다.

mitra@beopbo.com

 

[1526 / 2020년 2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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