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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무형문화재와의 재회

기자명 효탄 스님

무형문화재의 발굴은 유형과 마찬가지로 발로 뛰어야하는 그야말로 필드워크다. 그러나 무형은 유형과는 다른 여러 특성을 가진다. 특히 무형은 시간적 단절이 가장 풀기 어려운 키다. 따라서 발굴의 지난한 과정이 있게 된다. 양으로 따질 일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무형문화재 가운데 불교는 손꼽을 정도다. 더구나 유네스코에 올라가 있는 불교무형문화재는 태고종의 ‘영산재’가 유일하다. 무형문화재의 경우 조계종단은 연등회, 삼화사 수륙재, 진관사 수륙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모두 종목 지정과 단체지정을 받고 있다. 2018년 심향사 ‘불복장장엄’과 2019년 봉은사 ‘생전예수재’가 지정 받았음은 불교무형문화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 

나는 동국대 학부시절 임돈희 교수님이 무형문화재에 조예가 깊은 줄은 몰랐다. 그러던 내가 무형문화재에 본격적으로 발을 담그게 된 것은 학문적 스승인 홍윤식 교수님과 ‘불교전통축제’ 발굴에 참여하면서부터다. 그리고 그 일환으로 2000년 초부터 영산재를 지내고 뒤풀이 형식의 마당놀이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많은 분들의 노력에 힘입어 2012년 천태종에서 ‘삼회향놀이’라는 명칭으로 충북문화재로 등재시켰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삼회향놀이’의 실마리가 된 ‘땅설법’에 대해서는 그 실체가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무형문화의 발굴은 쉽지 않은 것이다. 

모든 것은 시절인연이 닿아야한다 하였던가. 그러한 ‘땅설법’의 실체가 드러나는 계기가 이렇게 닿을 줄이야. 2017년 초여름 나는 사찰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재개발사업 측과 2년 가까이 다투고 있었다. 그 어려움을 함께 도와 준 이들은 한국불교보전연합회(전국사찰수호연합회) 스님들이었다. 먼지 뒤집어쓰고 있는 현장에서 원주청과 15년간 대치하고 있는 삼척의 다여 스님을 만났고, ‘땅설법’이라는 단어가 내 귀에 꽂히게 되었다. ‘궁하면 통한다’하였든가. 그렇게 잊혀져 사라질 위기에 있는 불교무형문화와의 만남은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였다. 

‘땅설법’은 천상설법에 대비되는 말로 불교의 교리나 문화 등을 일반 대중들이 알기 쉽게 법주(法主)가 고대시가, 신라향가, 고려가요, 몽고의 토올, 중국의 경극, 조선의 시조, 판소리, 창가, 무가와 한국과 동북 3성의 민요, 전통 민속 등을 곁들여 설한다. 말 그대로 야단법석인 것이다. ‘땅설법’의 정식 알림은 다여 스님이 2018년 10월 안정사에서 시연을 보인 후다. 이후 현재까지 4차례의 시연과 1회의 세미나를 가졌다. 한국불교민속학회가 자리를 마련한 세미나에서 ‘땅설법’은 삼국시대부터 전승되어 오던 강(講), 창(唱), 연(演)의 3대요소를 정확히 갖춘 대표적인 교수 지도법을 보전하고 있는 유일한 무형문화유산임이 밝혀졌다. 

그런데 이 땅설법에서 그림자놀이, 변상도 등이 시연되고 있음이 주목된다. 그림자놀이는 다여 스님에 의하여 ‘만석승일대기’로 이미 소개되어 학계에 큰 관심을 이끌어낸 바 있다. 오는 5월17일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정토3부경’과 ‘법화경’의 내용이 변상도와 함께 시연된다고 한다. 특히 1폭의 ‘안락국태자경’의 변상도(22장면)를 새로 12폭으로 압축·풀어 구성해 보인다하니 기대된다. ‘묘사된 들판은 실제의 들판보다 더 푸르러야 한다’고 페르난도페소아는 말하지 않았던가. 시연과 세미나를 열 때마다 ‘땅설법’은 우리에게 새로운 장르를 보여주고 있다. ‘안락국태자경’은 ‘월인석보’ 권8에도 실려 있는데 1폭의 불화에는 16세기 한글로 경의 내용이 깨알같이 쓰여 있다. 이 변상도는 몇 년 전 강소연 교수가 아요야마(청산)문고 소장본을 찾아 소개해 크게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문화적 자산에 대해 인식이 부족하고 그 자존감도 그리 크지 않다. 앞으로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좀 더 우리 문화, 불교문화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갖고 그 문화 창달과 전승에 더욱 노력을 해야 할 일이다.

효탄 스님 조계종 성보문화재위원 hyotan55@hanmail.net

 

[1526 / 2020년 2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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