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인간의 한계
코로나19와 인간의 한계
  • 원영상 교수
  • 승인 2020.02.24 10:50
  • 호수 15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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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에서 익산으로 오는 열차 안에서 승객 한 사람이 열심히 떠든다. 다들 마스크를 쓰고 있어 이야기를 하지 않는 탓에 그 사람의 말만 크게 부각되었다. “예전에는”이라는 말이 간간이 들리는 것으로 보아 요사이 세태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는 것 같다. 심신이 피로한지 누구도 그를 말리지 않는다. 이웃나라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목숨이 사라지는 판에 침묵이라도 지켰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한 순간도 쉬지 않는다. 불안이 깊어지는 이 사태의 원인을 깊이 성찰하는 시간이 되면 좋지 않을까.

전 세계가 침묵을 지켰으면 좋겠다. 현대사회는 너무나 많은 말로 오염되었다. 말로써 상처받고, 말로써 서로 싸우며, 말로써 분열되고 있다. 지금 마스크를 쓰고 있는 이 상태, 맹자가 “그 사람의 눈빛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듯이, 진심이 담긴 선한 눈으로만 이야기 하는 그런 순간이면 좋겠다. 인류의 한계를 반성하는 시간이면 좋겠다. 우리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회광반조의 시간이 되고, 인류의 공업으로 대리고(代理苦)를 짊어지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애도하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열차 안은 흡사 영화 ‘설국열차’처럼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는 문명의 열차 같았다.

코로나19는 확실히 인간의 욕망이 낳은 재앙이다. 일차적 원인은 야생동물을 잡아먹는 식습관에서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인간은 오감을 즐기기 위해 지구상 모든 생물들을 이용한다. 특히 식탐을 위해서라면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 예전 어른들은 욕심을 절제하기 위해 위를 다 채우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매일매일 무엇을 먹을 것인가 궁리한다. 세치 혀를 어떻게 즐겁게 할 것인가에 살아가는 이유가 있는 듯이 게걸스럽게 먹는다. 율장에서 강조하는 오후 불식은 인간에게 먹는 것이 다가 아님을 뜻한다. 삶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의 정신을 어떻게 가꿀 것인지 살펴볼 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19는 문명의 이기(利器)가 연결된 통로를 통해 확산되고 있다. 인구가 밀집된 도시화는 그 확산을 더욱 빠르게 하고 있다. 인수공통전염병은 이제 인간의 삶을 헤집고 들어와 그 동선을 따라 활동하고 있다. 문명은 편리함을 위해 설계되었지만, 또 다른 위험요인도 된다. 수십만 년 동안 형성된 공동체를 파괴하고 재구성된 도시는 문명의 명암을 드리운 곳이다. 부자와 빈자, 사용자와 노동자, 갑과 을이 한 공간에 살고 있다. 문명의 하중은 아래로 갈수록 높다. 전염병은 하위계급 속에서 확산이 빠르다. 영양이 결핍된 하층으로 갈수록 저항력이 떨어진다. 노인들의 사망률도 높다. 계급과 바이러스의 감염과 치사율은 통계학적으로 상관관계가 깊다.

코로나19가 세계 전체로 대유행이 된다면 재앙이다. 나아가 또 다른 변종이 발생한다면 걷잡을 수 없다. 바이러스와 인간은 공진화한다. 바이러스 백신에 성공하면, 그 백신을 뛰어넘는 또 다른 변종이 생긴다. 선과 악이 함께 진화하는 것과 같다. 바이러스는 인간의 출현보다도 앞서 존재했다. 비록 인간이 뛰어난 영장류라고 할지는 몰라도 바이러스 또한 자신을 복제하는 기술을 통해 집단 지성을 발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만이 지구상의 주인은 아니다. 바이러스 또한 이 지구의 엄연한 주체다. 그들은 그들만의 삶의 방식이 있다. 그런데 인간 스스로 그들의 숙주가 되었다. 그들의 존재 목적을 알 수는 없다.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인 바이러스가 진화에 지체가 되었든 포기했든 간에 각자의 거리를 두고 공존해온 것은 사실이다. 지구의 입장에선 인간이야말로 맹독성 바이러스다. 탐욕으로 지구를 거덜 내고 있는 이 바이러스의 행진은 멈출 줄 모른다. 삼독심의 내성이 더욱 강해졌기 때문이다. “어찌할꼬 어찌할꼬 하지 않는 이는 나도 어찌할 도리가 없을 뿐”(‘수심결’)이라는 보조국사의 한탄의 목소리가 바이러스의 기세가 커질수록 가슴을 더욱 세차게 때린다.

원영상 원광대 정역원 연구교수 wonyosa@naver.com

 

[1526 / 2020년 2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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