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제7칙 아국안연(我國晏然)
8. 제7칙 아국안연(我國晏然)
  • 김호귀 교수
  • 승인 2020.02.24 17:47
  • 호수 15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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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득하지 못한 게 아닌 모를 뿐

깨침은 누가 가르쳐줄 수 없고
어디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냐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의 몫
선지식 가르침 통해 방법 알뿐

약산이 고사미에게 물었다. “듣자하니, 장안이 매우 어수선하다고 하던데.” 고사미가 말했다. “나라는 아주 조용합니다.” 약산이 흡족하여 물었다. “그대는 경전을 보고 터득했는가, 아니면 문답을 듣고 터득했는가.” 고사미가 말했다. “경전을 통해서도 아니고 또한 문답을 통해서도 아닙니다.” 약산이 물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경전을 보지 않거나 문답을 통하지 않으면 터득하지 못하는데, 어째서 그런지 알겠느냐.” 고사미가 말했다. “그들은 터득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그들 자신이 터득한 줄을 알지 못할 뿐입니다.”

고사미(高沙彌)의 행적은 미상인데, 약산유엄의 법을 잇고 초암에 살면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선풍을 가르쳤다고 한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자신에 대한 점검이다. 스스로 점검할 수도 있고 경전을 통하여 점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스승을 통하지 않는 점검은 천연외도일 뿐이다. 점검은 단순한 인가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인가는 반드시 전법으로 이어져야 한다. 전법이 없는 인가는 독각(獨覺)을 벗어나지 못한다. 때문에 달마는 산과 바다를 건너 먼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정법안장을 전수해 줄 제자를 찾기 위하여 노구를 이끌고 중국에 도래하였다. 전법의 예비조건은 깨침이다. 그러나 깨침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는다. 가르쳐 줄 수도 없다. 어디서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밖에서 빌려올 수도 없고, 돈을 주고 살 수도 없다.

깨침은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의 몫이다. 다만 선지식의 가르침을 통해서 그 방법을 알뿐이다. 그런데 깨침이라고 해서 물건을 얻는 것처럼 누구로부터 받거나 갑자기 하늘에서 뚝딱 떨어지는 것은 더욱더 아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통한 통쾌하고 강렬한 경험이다. 때문에 없던 것이 새롭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여기에 그렇게 완전하게 갖추어져 있음을 터득하는 경험이다. 고사미는 약산의 물음을 통하여 바로 그와 같은 도리에 대하여 적절하게 답변하고 있다.

아국(我國)은 저희 국가의 서울 정도의 뜻으로 당나라의 서울인 장안을 의미한다. 나아가서 자기의 마음을 가리킨다. 내용인 즉 다음과 같다. 약산이 고사미에게 물었다. ‘그대는 저 멀리서 애써 여기까지 나를 찾아온 것은 무엇인가. 그대 마음에 깨침의 보석이 밝게 빛나고 있는 줄은 모르고 여기까지 온 것은 괜한 망상이 아닌가.’ 그러자 고사미는 ‘제 마음은 일찍이 번뇌망상에 흔들린 적이 없습니다. 여전히 고요하기만 합니다.’ 그러자 약산은 고사미의 그와 같은 답변에 아주 흡족해 하였다. 그리고는 어떻게 언제 누구로부터 그 도리를 깨쳤는지 물었다. 고사미가 말했다. ‘경전의 설명과 선지식과의 문답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본래 구비하고 있는 도리를 다른 사람들이 아직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제가 여기까지 일부터 화상을 찾아온 것은 그것을 점검받으러 온 것입니다. 이미 인가를 받았으니 저는 굳이 계를 받으러 다른 곳으로 갈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부디 머물도록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고사미가 일찍이 숱한 경전의 가르침과 많은 선지식의 설법을 통하여 문답으로 일관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전의 진정한 가치와 선지식과의 문답의 묘용을 알아차린 것이다. 고사미에게 정작 경전은 부처님의 설법이고 선지식과 행한 문답은 그 작용에 대한 응수였다. 자신이 먼저 경전을 통하여 도리를 터득하고, 터득하여 알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야말로 자각이다. 때문에 해탈을 추구하면서도 해탈에 대한 지견이 없어서는 안 된다. 고사미는 계를 받으러 온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깨침에 대한 약산의 인가를 계로 간주한 것이었다. 이후로 고사미는 아무런 연고지도 없이 평생 동안 길을 오고가면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선법을 베푸는 것으로 삶을 마쳤다. 시자 한 명도 거느리지 않았다. 머무는 곳이 죄다 자기 마음의 고향이었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26 / 2020년 2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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