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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4상(四相)이란- 상

기자명 현진 스님

아상·중생·수자·인상 순이었지만 번역과정서 바꿔

구라마집 번역과정서 순서변경
4상 나열이 수행순서 아니지만
유아론에 영향 큰 순서로 열거
본래 의미서 벗어난 측면 있어

“보살에게 아상이나 인상이나 중생상이나 수자상이 있다면 그는 이미 보살이 아니다”라는 ‘금강경’ 제3대승정종분의 구마라집역[羅什譯]에는 4상이 아・인・중생・수자(我・人・衆生・壽者)의 순서로 언급되어있는데, 우선 전래되어 온 4상의 한문식 해석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아상(我相)이란 모든 일에 있어서 ‘나입네~’라며 자신을 내세우는 생각으로 자만심과 흡사하며, 인상(人相)이란 그러한 나는 남과 다르다 여겨서 내 것 혹은 우리 것이란 울타리를 쳐놓고 그렇지 않은 것과 안과 밖으로 구분을 짓는 생각이며, 중생상(衆生相)이란 나건 남이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 깨달음을 이루지 못한 채 남아있는 존재일 뿐이란 자기비하적인 생각이며, 수자상(壽者相)이란 비록 중생으로 남아있더라도 최소한 목숨을 지닌 존재로서 영혼 혹은 인격의 주체를 갖추고 있다는 생각을 일컫는다.

그런데 원본인 범어본엔 4상이 아(ātman)・중생(sattva)・수자(jīva)・인(pudgala)의 순서로 되어있다. 구마라집 스님이 이를 한문으로 옮길 때 지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나입네~ 하는 생각은 아상이요, 그런 나와 남을 구분하는 것은 인상이며’라는 식의 해석방식이 고려되어 옮겨진 것이라곤 단정할 수 없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딱히 어떤 이유로 순서를 바꿔 서술한 것인지 명확히 알려진 것은 없다.

4상의 나열순서는 예불문의 오분향례 등에 적용된 것처럼, 나열된 것 가운데 앞에 것을 완료한 후에야 그 다음 것을 실행하는 방식은 아니다. 그렇지만 4상으로 언급된 네 가지는 ‘금강경’이 저작될 당시에 극복해야 될 유아론들 가운데 영향력이 큰 것 몇 가지를 선별해놓은 것이라 할 수 있기에, 수행의 순서는 아닐지라도 중요도의 측면에서 나열의 순서가 어느 정도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4상 가운데 아상과 중생상은 인도 전래의 생각들로서 ‘우리가 어떤 상태인지[衆生相]’와 ‘그런 우리가 어떤 희망이 있는지[我相]’를 담아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머지 수자상과 인상은 브라만교가 몰락한 후에 다양한 형태로 표출된 아상의 다른 모습들 중 대표적인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그래서 4상을 아・인・중생・수자의 순서로 나열하는 것은 본래의 의미와 어긋나는 점이 없잖아 있다.

아상은 ‘아뜨만이란 생각’으로 옮길 수 있는데, ‘고정불변의 실체로서 아뜨만이란 것이 존재한다는 생각’ 정도로 풀이된다. 불교 이전의 브라만교에선 고정불변의 실체로 아뜨만(ātman)을 상정하고 있는데,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아상을 갖지 말라는 것은 브라만교도처럼 아뜨만을 고정불변의 실체로 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그 무엇도 고정불변의 실체로 여길만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범어 ‘ātman’은 ‘나’ 또는 ‘자신’ 등으로 보통명사인 동시에 브라만교에서 고정불변의 실체를 가리키는 ‘아뜨만’이라는 고유명사이기도 하다. 인도의 사상과 철학 및 문학에서 아뜨만이 고유명사와 보통명사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쓰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런 아뜨만이 한문의 아(我)로 번역되는데, 아(我) 역시 중국의 불교문헌에서 인도처럼 보통명사와 고유명사를 넘나들며 쓰이고 있다. 아마도 아뜨마산즈냐(ātma­saṁjñā)가 아상(我相)으로 옮겨지며 그 처음에는 고유명사로서의 ‘아뜨만’이, 그리고 굳이 아뜨만을 들먹일 필요가 없을 정도로 불교의 전반이 중국화가 된 이후에는 보통명사로의 ‘나’ 또는 ‘자신’으로 사용된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중생상은 ‘중생이란 생각’으로 옮길 수 있는데, ‘존재하는 상태의 모든 것, 즉 태어나서 존재하는 상태에 이른 모든 것은 해탈하지 못한 불완전한 존재라는 생각’ 정도로 풀이된다. 중생(衆生)의 범어 싸뜨와(sattva)는 ‘존재하는(sat) 상태(­tva)’란 의미이다. 인도인들에겐 고대부터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들은 완벽한 브라흐만(brahman)의 상태에서 무엇인가 삐끗하여 발생된 일종의 결함체로 보는 사상이 있다. 태어났다는 그 자체가 벌써 결함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중생상이며, 그래서 그 결함을 극복하여 해탈의 상태로 나아가고자 수행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진 스님 봉선사 범어연구소장 sanskritsil@hotmail.com

 

[1526 / 2020년 2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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