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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수행 김나윤(대영심, 70)-상

기자명 법보

구산 스님께 대영심 법명받아
가족에 좋을것이란 맘에 기도
새벽예불은 의식 맑히는 수행
참회의 절, 늘 감사한 맘으로 

대영심, 70

24살 때 즈음으로 기억된다.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께서 절에 다니시는 모습을 보고 자란 나는 결혼 후 ‘나도 절에 가고 싶다’는 원을 갖게 되었다. 마침 이웃의 보살님께서 부산 사하구 당리동에 있는 관음사에 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나도 함께 가고 싶어요”하며 반가움에 말씀을 드렸다. 마침 다음 날이 음력 보름이니 같이 가자고 하는 보살님을 따라 관음사에 첫발을 딛게 된 것이 어느새 지금으로부터 45년 전의 이야기가 되고 보니, 세월의 흐름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불교 교리와 예절도 몰랐지만, 사찰을 향하는 발걸음은 마냥 설렜다. 그날을 시작으로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는 보살님을 따라 법회에 동참하며 사찰의식과 기도를 조금씩 배우고 익히는 시간이 소중했다. 송광사 말사인 관음사에 다닌 덕분에 송광사 보살계에 동참해 구산 큰스님으로부터 ‘대영심’이라는 법명도 받았다. 절에 다니는 것에 대해 처음에는 남편의 반대도 있었다. 하지만, 참 신기하게도 남편은 나와 한 번 내원정사 산책을 다녀온 이후 절에 가는 것에 대해 좋은 마음을 갖게 된 것 같았다. 물론 나도 당시 절에 가는 것은 막연한 기대감이었다. ‘절에 가면 나에게 우리 가족에게 좋을 것’이라는 믿음, 그 막연했던 출발을 지나 어느새 굳건한 신심이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새벽예불과 절을 통해서였다.

한 달에 두 차례 법회 동참과 더불어 매일 기도하고 수행할 방법이 있을까 찾던 중 당시 우연히 집 근처에 있는 수도사의 새벽예불에 동참하게 되었다. 한 번 참석하기 시작한 새벽예불은 기다렸다는 듯이 일과 수행이 되었다. 새벽 3시 알람을 맞춰놓고 일어나 사찰을 향했다. 스님께서 도량석을 하시면 나는 다기에 청수를 올렸다. 예불을 보기 위해 두 살짜리 아이를 업고 올라가 원주 보살님 방에 눕혀 놓기도 했다. 

새벽예불이 거듭될수록 의식이 더 맑아짐을 느낄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육식과 오신채를 끊고 채식도 시작했다. 채식은 쉽지 않았다. 가족을 위한 식단의 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 남편이 호통을 친 적도 있다. 김치도 내가 먹는 채식용 김치와 젓갈이 들어간 가족용 김치를 따로 담는 등 일은 두 배로 늘었다. 그런데 전혀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저런 갈등으로 가족에게, 주변 사람에게 미안한 일이 생길 때는 글로 써 두었다가 매월 음력 말일이면 그 메모를 꺼내 읽고 절을 하면서 참회했다. 참회의 절은 늘 감사함의 절로 회향 됐다. 살아가면서 미안한 일은 셀 수 없이 많이 생겼다. 미안한 일이 늘어나면 참회의 절도 더 많이 했고, 덕분에 고마운 일도 함께 늘어났다. 

그러던 중 기회가 닿아 집을 사서 옮기게 되었다. 계약금을 치르고 난 뒤 중도금과 잔금을 어렵게 모았다. 초삼일 새벽이었다. 돈을 자는 방 머리 위에 두고 새벽예불을 다녀왔을 때, 집 앞이 어지러웠다. 도둑이 들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하필 그날 남편은 당직이었다. 무서움과 두려움에 옆집 아주머니를 대동하고 집에 들어갔다. 세상에, 아이들은 곤히 잠을 자고 있었고 잔금 치를 돈도 무사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고 감사 기도를 수없이 되풀이했다. 이야말로 부처님의 은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 후 잔금을 모두 치르고 새집으로 무사히 이사할 수 있었다.

이사한 집에서는 마침 가까이에 보타원이라는 도량이 있었다. 음력 초하루와 보름 법회는 이전처럼 관음사에 지속해서 다녔고, 새벽예불은 보타원을 향했다. 그 시기, 형제 중 셋째인 남편이 시어머니를 모시게 됐다. 시어머니께서는 며느리가 새벽잠도 자지 않고 절에 다니는 모습이 못마땅해 하루는 내가 절에 가는 뒤를 쫓아 미행하신 적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남편에게 “어머니는 우리의 뿌리이신 분”이라 했고, 시어머니께도 “어머니,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하며 정성을 다했다. 다행히 시어머니께서 아이를 돌봐주신 덕분에 새벽예불에도 꾸준히 다닐 수 있었고, 또한 시어머니를 5년 동안 모시며 가족이 함께 지내는 감사함을 경험할 수 있었다.

 

[1526 / 2020년 2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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