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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붓다의 재난구제 활동

기자명 마성 스님

전염병 창궐 지역서 붓다께 방문을 요청했을 때

웨살리에 전염병으로 사망자들 속출
두려움에 떨며 부처님께 도움 요청
붓다, 8일간 걸어 ‘재난의 땅’ 도착
일주일간 제자들과 구호 활동 펼쳐

우리는 지금 국가적 위기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19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크나큰 국가적 재난 앞에 속수무책으로 바이러스가 소멸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붓다의 재난구제 활동에 대해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한때 세존께서는 500명의 비구들과 함께 라자가하의 가란타죽원에 계셨다. 마가다국의 아자따삿뚜 왕의 요청으로 그곳에서 여름 안거를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왓지국의 수도 웨살리에 전염병이 창궐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었다. 그 상황을 경에서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때 웨살리에 귀신이 일어나 죽는 사람이 헤아릴 수 없었고, 하루 동안에도 죽는 사람이 100여명이나 되었다. 그들은 귀신 나찰에 걸려 얼굴과 눈이 누렇게 되어 3~4일 만에 죽는 자도 있었다. 그래서 웨살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매우 두려워해 한 곳에 모여 의논하였다.”

경에 묘사된 것과 같은 상황이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 당시의 사람들은 전염병의 원인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귀신의 소행이라고 믿었다. 이처럼 절박한 상황에서 웨살리 주민들은 붓다께서 이곳을 방문해 주시면 귀신들이 무서워서 달아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세존께서 가는 곳마다 온갖 삿된 귀신이 침범하지 못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붓다께 이곳을 방문해 달라고 요청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런데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서 아자따삿뚜 왕의 요청으로 안거 중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특히 500명의 제자들과 함께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것은 적국의 왕이 승낙해 주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래도 그들은 붓다께 요청하기로 했다. 붓다께서는 자신들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래께서는 큰 자비로 중생을 가엾이 여겨 일체를 두루 살펴보아 제도하지 못한 이를 제도하신다. 또 일체중생을 버리지 않으시기를 마치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듯 하신다. 그러므로 만일 누가 청하면 곧 오실 것이다. 아자따삿뚜 왕도 만류하지 못할 것이다. 누가 저 아자따삿뚜 왕의 나라에 가서 세존께 ‘지금 우리 성은 큰 재앙을 받고 있나이다. 원컨대 세존께서는 가엾이 여겨 돌보아 주소서’라고 사뢸 수 있겠는가.”

그때 ‘최대(最大)’라는 장자가 그 일을 담당하겠다고 나섰다. 그 장자는 라자가하에 계시는 세존을 찾아뵙고 전후 사정을 말씀드렸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이미 아자따삿뚜 왕으로부터 90일간 공양을 받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어렵지만, 아자따삿뚜 왕이 허락한다면 갈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리고 그 장자에게 왕이 승낙할 수밖에 없는 묘책을 일러주었다. 그렇게 해서 드디어 붓다는 500명의 비구들과 함께 웨살리로 향했다. 웨살리는 라자가하에서 꼬박 여드레가 걸리는 먼 길이었다. 붓다는 제자들과 함께 갠지스 강을 건너서 뜨거운 모래바람을 맞으며 부지런히 발길을 재촉해 ‘재난의 땅’ 웨살리에 도착했다. 경에서는 “웨살리에 이르러 성문에 서서 게송을 암송했다. 그러자 나찰 귀신들은 제 자리에 있을 수 없어 제각기 달아났다. 그래서 다시는 웨살리에 들어오지 못했으므로 모든 병자들은 병이 낫게 되었다.”고 되어 있다.

그때의 상황을 상상해 보면, 웨살리는 말이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사람이 죽어가고 시체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붓다는 우선 제자들과 함께 발우에 물을 담아와 여기저기에 뿌리면서 거리를 깨끗하게 청소했다. 그런 다음에는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은 삼보에 귀의하라고 가르쳤다. 이레 동안 이렇게 행하자 전염병이 사라졌다. 그때 마침 비까지 내려 가뭄도 해갈되었다. 이렇게 해서 웨살리는 다시 평온을 되찾게 되었다.

붓다께서 최초로 웨살리(바이살리)를 방문한 것은 성도 후 15년이 지난 뒤였다. 비교적 늦게 이곳에서 교화를 펼쳤지만, 지금도 곳곳에 불탑과 제자들의 사리탑과 불교유적이 남아 있다. 사진은 고대 바이살리 유적 표지석. 사진 마성 스님.
붓다께서 최초로 웨살리(바이살리)를 방문한 것은 성도 후 15년이 지난 뒤였다. 비교적 늦게 이곳에서 교화를 펼쳤지만, 지금도 곳곳에 불탑과 제자들의 사리탑과 불교유적이 남아 있다. 사진은 고대 바이살리 유적 표지석. 사진 마성 스님.

이 이야기는 한역 ‘증일아함경’ 제32권 제11경에 나오는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이 경과 대응하는 니까야는 ‘쿳다까 니까야’에 나오는 유명한 ‘라따나 숫따(보배경)’이다. 한역 증일아함경에서는 이 사건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반면 니까야에서는 붓다의 위신력과 ‘보배경’ 독송공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테면 붓다와 비구들이 연민의 마음으로 발우에 담은 물을 뿌리며 삼중으로 된 웨살리 성벽 사이를 돌면서 밤의 삼경 내내 호주(護呪, paritta)인 ‘보배경’을 암송한 결과 전염병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연으로 지금도 테라와다 전통에서는 자연재해나 천재지변과 같은 재난이 생기면 ‘보배경’을 비롯한 호주를 암송한다.

홍사성이 그의 저서 ‘정법천하를 기다리며’(우리출판사, 2010)에서 언급했듯이, “여기서 부처님이 물을 뿌리는 주술적 의례를 행했느냐 안 했느냐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중요한 것은 재난을 당한 이웃을 구호하기 위해 현장으로 달려가 제자들과 함께 헌신적인 방역활동을 했다는 점이다. 부처님이 무려 일주일이나 제자들과 함께 구호활동을 펼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감동적이다.”

세상 사람들은 인간으로서는 불가항력적인 전염병, 가뭄, 기근과 같은 재앙이 생기면 제일 먼저 두려움을 느껴 어찌할 바를 모른다. 이때 붓다와 같이 연민의 마음을 일으켜 그들과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큰 위안이 된다. 엄격히 말해서 ‘보배경’을 암송한다고 해서 바이러스나 세균이 사라진다고 믿는 것은 비과학적이다. 그보다는 전염병과 같은 재난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슬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 준다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 세계적으로 재난 현장에 최고 지도자가 찾아가 위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생들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았던 붓다의 재난구제 활동은 참으로 감동적이다. 불교는 개인의 수행과 중생의 구제를 둘로 보지 않는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개인의 수행보다는 중생의 구제가 우선되어야 한다.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고, 그들에게 직접 봉사하거나, 물품을 제공하는 것과 같은 행위도 재난 극복에 도움이 될 것이다.
 

마성 스님 팔리문헌연구소장 ripl@daum.net

 

[1527호 / 2020년 3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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